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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왜냐면] 기생충이 대한민국에 묻는다 / 김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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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은종 ㅣ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팀장

“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

아카데미상 4관왕까지, 봉준호 감독 열풍이 대단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다. 왜 세계 유수의 영화제가 <기생충>에 열광했는지, 그들이 중요하게 보았던 봉준호 감독의 문제의식이 무엇이었는지, 답을 찾을 차례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의 두 가족을 연결하기 위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매개체로 학벌주의를 활용한다. 영화는 기택(송강호)의 ‘계획이 다 있는’ 아들 기우(최우식)가 박 사장 딸의 과외를 맡게 되는 것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엔(N)수생이었던 기우의 고액 과외가 가능했던 것은 친구의 소개와 위조된 연세대 재학증명서 덕분이었다. 증명서를 내미는 기우에게 부잣집 사모님 연교(조여정)는 “서류 이런 건 필요 없고요”라고는 쿨한 듯 반응했지만, 이미 그녀의 눈은 재학증명서를 한 번 훑은 뒤였다. 동생 기정, 제시카(박소담) 또한 일리노이 유학파라고 속여 박 사장 아들의 미술 과외 선생이 된다. 처음 기우가 제시카를 연교에게 주선했을 때, 연교는 “음… 일리노이”라며 학교 이름을 한 번 읊조리고 뭔가 잠시 생각하는데, 여기에도 ‘봉테일’(봉준호+디테일) 감독의 의도가 녹아 있었을 것이다. 출신 학교로 자신이 증명되고, 학교 이름 하나로 실체는 묵인되는 그런 사회 속에서 봉준호 감독은 출신 학교로 인한 학벌주의가 얼마나 무섭게 일상을 파고드는지 비틀어 보여준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러한 학벌주의가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 데에 있다. 박 사장의 딸과 아들이 명문대 출신에게 고액 과외를 받으며 남다른 사교육을 하고 있을 때, 기우는 엔수생임에도 피자 상자를 접고, 와이파이를 찾아 헤매야 했다. 부모의 소득에 따라 자녀의 삶은 아주 달랐다. 이것이 기택 가족만의 이야기일까?

2015년 ‘한국의 세대 간 사회계층 이동성에 관한 연구’(최필선, 민인식)가 발표되었다. 2004년의 중3을 10년간 추적해서 조사한 결과는 놀라웠다. 부모의 학력과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자녀의 일반계고 진학 비율과 4년제 대학 진학률이 높아졌다. 마찬가지로 부모의 교육과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자녀의 수능 성적 1~2등급 비율도 높아졌고, 상위권 대학 진학 가능성도 커졌으며, 취업 후 자녀의 임금 또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력과 소득에 의해 나뉜 사회계층 차이가 자녀 교육에 대한 투자의 차이를 낳고, 다시 이것이 자녀의 진학과 임금의 격차로 이어지는 재생산의 경로가 드러난 것이다.

2017년 발표된 논문 ‘자녀의 학력이 부자간 소득계층 대물림에 미치는 영향’(이진영)에서도 교육이 부의 대물림 확률은 높이지만, 빈곤의 대물림 확률을 낮추는 데에는 기여하지 못해 결국 소득 이동성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는 2019년 김해영 의원이 “스카이(SKY) 대학생 부모의 고소득층(9·10분위) 비율이 무려 41%에 달한다”고 발표했던 내용과 맥이 닿아 있다.

언젠가부터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히 ‘노력이 아닌 부모의 조력’이 학업의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 것이다. 교육의 계층사다리 역할이 붕괴되고, 부모의 학력·학벌과 경제력에 따라 자녀의 미래가 대물림되며, 그래서 어떠한 성취나 결과가 개인의 노력인지 부모의 조력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진 현실에 우리는 직면해 있다. 영화 <기생충>은 이런 측면에서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불평등, 학벌지상주의를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영화는 이런 사회를 지속할 것인가 묻고 있다. ‘기생충처럼 사회를 좀먹는 학벌에 따른 카르텔이 신분과 계급을 결정하고,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반지하 인생으로 전락해 결국 누군가에게 기생하지 않으면 탈출구가 없는 사회를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누구나 부자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노력조차 없이 같은 출발선에 서야 한다고 말하고자 함도 아니다. 다만 부모의 학벌, 소득과 같은 배경이 아이의 학력과 소득을 결정짓는 신분 세습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이야말로 출신 학교로 인한 불합리한 차별을 막기 위해 출신 학교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특권 대물림 교육 지표조사 법제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언제까지 청년들이 ‘이생망’이라며 좌절하고 우골탑을 세운 부모조차 자신을 탓해야 하는지, 국회와 정부가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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