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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법무부 전 당국자들, 법무장관 사퇴 촉구…“법치주의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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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의 고결함과 법치주의를 훼손시킨 죄, 사임으로 갚아야 마땅하다."

1100명이 넘는 미국 전직 검사들과 전직 법무부 관료들이 16일(현지 시각) 성명을 발표해 윌리엄 바 법무장관이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바 법무장관이 법무부 본업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인 명령을 더 중시해 법치주의가 망가졌다"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이날 전직 검사들과 법무부 관료들은 성명을 내놓고 "바 장관의 행동이 고결함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법무부 위상은 물론 법치주의 그 자체를 훼손시켰기 때문에 바 장관은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와 폴리티코는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법적 방패 노릇을 하던 바 장관은 최근 법무부의 독립성 문제에 얽혀 장관 생활 이후 최대 난관에 봉착했다. 법무부 독립성 문제란 미국 법무부가 검찰에 트럼프 대통령 최측근에게 구형(求刑)된 형량을 낮춰달라고 개입한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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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바 미국 법무부 장관.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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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지난 2016년 미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 ‘비공식 선거 참모’로 활동한 로저 스톤은 최근 트럼프 캠프가 러시아와 공모하고 결탁했다는 의혹인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 조사 과정에서 위증과 조사 방해, 목격자 매수 등 7가지 혐의로 기소됐다.

담당 수사 검사들이 스톤에게 징역 7~9년을 선고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한 다음 날인 11일 새벽, 바 장관의 참모들과 부(副)장관은 이날 오전 법원에 구형량을 낮춰달라는 서류를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오심(miscarriage)’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매우 끔찍하고 불공정한 처사"라고 성을 낸 직후였다. 측근의 오랜 징역살이를 못마땅해 하는 트럼프 대통령 의중을 읽고 바 장관이 직접 이 같은 지시를 내렸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사태가 커지자 바 장관은 뒤늦게 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근거해 결정을 내릴 것이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협박 당하거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의회든, 신문사 논설위원이든, 대통령이든"이라고 강조했지만, 이미 법무부의 위신은 바닥에 떨어진 후였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바 장관, 축하하오. 완전히 통제 불능이었던 사안을 책임지고 잘 맡아줘서"라는 글을 올려 문제를 키웠다.

CNN은 이날 바 장관 사임을 요구한 전직 검사와 관료들이 공화당 행정부와 민주당 행정부에서 모두 근무했던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특정 정파에 속한 정치 관료들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날 성명을 낸 전직 관료들은 바 장관 개인에 대한 사퇴 요구와 별도로 후배인 현직 관료들에게 간곡한 당부를 덧붙였다. 이들은 "바 장관이 스스로 물러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법무부의 현직 당국자들은 직무 선서를 수호하고 초당파적인 정의를 지키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현직 검사들은 문제가 되는 행동을 발견하면 바로 법무부 감찰관에게 보고하라"고 촉구했다.

그간 미국 역사에서 행정부는 당연히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법무부의 독립성을 존중해왔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 밑에서 법무장관을 맡았던 존 미첼이 ‘워터게이트 사건’에 개입했다가 처벌 받고 ‘미국 역사상 최악의 법무장관’ 낙인이 찍힌 다음부터 이는 더욱 깨뜨릴 수 없는 불문율(不文律)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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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워싱턴에서 열린 평화관리관 추모의 날 행사에서 윌리엄 바 미국 법무부 장관(오른쪽)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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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바 장관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범법 행위로 처벌을 앞둔 트럼프 측근들의 ‘법적인 방패’ 노릇을 자임했다. 지난해에는 주미(駐美) 러시아 대사와 접촉한 사실을 숨겼다가 트럼프 행정부 초기에 낙마한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한 검찰의 구형량을 '최대 징역 6개월'에서 '집행유예'로 낮췄다. 민주당 대선 경선에 뛰어든 조 바이든 부자(父子)와 우크라이나 에너지기업 간 관계에서 흠집이 될 만한 사안을 찾기 위해 관련국 법 집행 당국 수장들도 직접 만났다.

CNN은 이런 그를 ‘트럼프를 도와 법치(法治)를 훼손하는 자발적인 공범(共犯)’이라고 묘사했다.

야당인 미국 민주당은 사법부에 강한 입김을 불어넣는 트럼프 행정부와 바 장관을 날카로운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다. 당장 바 장관은 다음달 31일 하원 법사위 청문회 증언대에 오른다. 이 자리에서 바 장관은 이번 형사사법 절차 개입 의혹에 대해 증언할 예정이다.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 같은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들은 본격적으로 바 장관 퇴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대선 정국으로 접어들면서 바 장관 거취 문제를 주요 쟁점으로 다루겠다는 모양새다.

검사 출신인 클로버샤 상원의원은 이날 CNN 인터뷰에서 "옳은 일을 위해 열심히 일한 검사들이 구형을 할 때 빠지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바 장관이 물러난다면 기쁘겠지만, 실제로 물러나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하원에 이어 상원도 바 장관을 불러 트럼프 대통령이 스톤 사건 같은 법무부 결정에 어떻게 개입하려 했는지 조사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유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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