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3 (월)

[여행+] 문학과 하루밤, 겨울이 익어간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보성여관은 소설 태백산맥에서는 남도여관으로 등장한다. 실제로 숙박할 수 있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사진 제공 = 문화유산국민신탁]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거친 바람결에 시달리는 갈대숲에서는 마르고 억센 잎들이 서로 비벼대 서걱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바람이 심할수록 날카로워지고 음산해지는 그 소리는 깊은 병을 앓는 신음소리 같기도 했고, 한스러운 가슴앓이를 못 견뎌하는 여인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소설 태백산맥 3권 중)

밖을 나가기가 두려운 요즘이다. 침대에 몸을 의지해 소설을 꺼냈다가 칼바람이 그리워졌다. 겨울은 원래 손발이 시린 계절이다. 한 맺힌 소리가 귓가에 맴돌아 기차표를 끊고 말았다. 지금 제철인 꼬막 맛도 궁금했다. 10여 년 만에 다시 벌교를 찾았다.

문학기행 길잡이 태백산맥문학관

매일경제

태백산맥문학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정래 작가는 한국전쟁 즈음 벌교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그 경험이 축적돼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집필했다. 2008년 문을 연 태백산맥문학관은 산 중턱을 싹둑 자른 위치에 자리하는데, 남향이 아니라 북향이다. 분단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건축가 김원의 의지가 형상화된 것이다.

문학관 1층에는 작가가 '태백산맥'을 쓰면서 겪은 고초가 남아 있다. 정보기관에 의한 고소장이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는 증거로 남아 있다. 2층에는 며느리를 비롯해 필사한 '태백산맥' 원고가 쌓여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이달 29일까지 문학관은 휴관한다.

작가는 종종 독자들에게 질문을 받는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작가는 "그 둘 사이의 경계를 찾아보기 어려운 소설이 진짜 좋은 소설"이라고 웃으며 답한다. 진실과 허구의 경계 사이로 직접 발길을 옮겨봤다.

비극적 사랑의 장소 소화의 집

소화의 집은 태백산맥문학관 바로 옆 아담한 집 한 채로 2008년 복원됐다. 정참봉의 손자 정하섭과 무당 월녀의 딸 소화가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장소다. 이 둘은 요즘으로 치면 막장 드라마에서도 보기 어려운 관계다. 정참봉과 월녀가 통하여 소화를 낳았고, 소화라는 이름도 정참봉이 지어줬다. 정참봉의 손자 정하섭과 소화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서로에게 빠져든다. 운명의 장난 앞에 선 소화는 정하섭에게 이렇게 말한다. "다 신령님 뜻이구만요."

소화의 집 위쪽으로 현부자네 집이 자리한다. 그 당시로는 드물게 집 안에 목욕탕 시설이 있을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한옥을 기본 틀로 세웠으나 곳곳에 일본식이 가미된 형태다. 중도방죽 들녘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제석산 자락에 있다.

작가의 추억 담긴 김범우의 집

소설 속 김범우의 집은 초등학생 시절 작가가 놀러다녔던 친구의 집이다. 현부자네와 마찬가지로 높은 지대에서 홍교와 소화다리를 비롯해 벌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명당이다. 소설 속에서는 품격 있는 지주이자 김범우 아버지인 김사용의 집으로 그려지고 있다. 창호지가 떨어져 있고, 전깃줄이 늘어져 있어 관리에 아쉬움이 남지만 전통한옥 양식으로 사랑채, 겹안채, 창고자리, 장독대, 돌담 등이 당시 생활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분단 상흔 남긴 홍교와 소화다리

홍교는 벌교포구를 가로지르는 다리 중 가장 오래됐다. 세 칸의 무지개형 돌다리로 현존하는 홍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워 보물 304호로 지정됐다. 잠시 다리 아래로 내려가 돌길을 거닐고 갈대숲을 둘러보기에도 운치가 있다.

소화다리는 일제강점기였던 1931년 '소화 6년'에 지어져 지금도 소화다리라고 불린다. 소설 '태백산맥'의 시대 배경인 한국전쟁 때 좌우익이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눴던 슬픈 역사가 서려 있다.

소설에서는 이렇게 전했다. "워디긴 워디어라, 북국민핵교 마당에서 인민재판 끝내고 그 질로 소화다리로 끌고 갔구만이라. 사람덜이 벌떼맹키로 모였는디, 사람덜헌테 귀경시키대끼 줄줄이 세워놓고 쥑였당께요."

보성여관과 철교, 그리고 중도방죽

매일경제

철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임만수 대장을 비롯해 토벌대원이 기거한 남도여관은 '보성여관'에서 영감을 얻었다. 당시엔 5성급 호텔 수준으로 고급이었다. 2층 다다미방은 그 역사성을 증명한다. 2004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고, 2012년부터 문화유산국민신탁이 관리 운영한다. 전시장과 카페, 소극장을 갖추고 있고 1층 숙박동에서 묵을 수 있다. 주변에 소설 주요 배경인 금융조합, 술도가, 포목상 건물도 있어 같이 둘러보기 좋다. 금융조합은 해설사가 상주해 태백산맥 문학기행에 대한 조언을 얻을 수 있다. 술도가는 정비 중이다. 순천에서 벌교역 방향으로 난 철교에서는 주먹패가 오래 버티기 담력 대결을 펼쳤다. 염상구를 벌교 최강 주먹으로 군림하게 만든 대결 장소다. 그를 따라 철교 위를 거닐고 싶어졌으나 허가 없이 통행하면 최대 과태료 1000만원을 물린다는 표지 앞에서 멈췄다.

매일경제

중도방죽. [사진 제공 = 보성군]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철교에서 바다 쪽으로 방죽이 이어지는데, 중도방죽이라 한다. 중도는 일제강점기 이 지역 땅을 차지했던 일본인 나카시마(中島)의 한자에서 따왔다. 소설 속에서 중도방죽을 걷다가 입산한 '빨갱이 대장' 염상진의 아들 덕조가 누나 덕순에게 묻는다. "누나, 물오리도 순사고 빨갱이고 있으까?" 말없이 걷던 남매는 혹시 누군가 들을까봐 읍내 반대편으로 외친다. '항꾼에' 목 놓아 '아부우우지이이-'라고.

[벌교 = 권오균 여행+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