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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사모펀드 규제 핀셋 제대로 집었나…구멍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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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대책 문제 없어..‘핀셋형 제도’로 보완

판매사가 운용사 관리?..고양이한테 생선 맡긴 꼴

운용보고서 교부 의무 생겼으나..빠져나갈 구멍도 만들어놔

“개인투자자 사모펀드 진입 자체를 막아야”

[이데일리 최정희 김윤지 기자] “2015년 사모펀드 제도 개편으로 규제가 지나치게 완화돼 (라임자산운용) 펀드의 환매 중단 사태가 발생한 것이란 일부 언론의 지적이 있었다. 여러 정책을 마련함에 있어 사고를 예단할 수는 없다. 일부 미흡한 점은 인정한다.”(김정각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정책관)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손실액이 최대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운용이나 판매과정에서 각종 불법행위가 드러나면서 이를 사전에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금융당국의 책임론이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14일 공동으로 발표한 ‘사모펀드 현황 평가 및 제도개선 방향’에서 최근의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를 ‘라임의 문제‘로 한정하고 일부 미비점이 발견됐다는 정도로 봤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보다 핀셋형으로 제도를 보완하겠다는 방침에 긍정적인 반응이지만,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제한적으로 보는 바람에 핀셋을 잘못 집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라임의 모·자·손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복층 구조의 펀드는 그대로 둔데다 판매사, 수탁사 등에 운용사의 관리, 감시 책임을 뒀다. 라임이 신한금융투자와 짜고 펀드 사기를 저지른 마당에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격이란 지적이다.

이데일리

‘사모펀드 현황 평가 및 제도개선 방향’을 발표하는 김정각 금융위원회 자본시장 정책관.(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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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잡한 모·자·손 펀드 구조는 안 막아

금융위는 라임 사태와 관련 비유동성 자산(50%이상)에 투자하면서도 개방형 구조로 펀드로 파는 행위를 금지하도록 했다. 2015년 규제 완화책 중에선 투자자들한테 운용보고서를 교부하는 방안을 부활했다. 그러나 미봉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라임 펀드의 가장 큰 특징은 혀를 내두를 정도의 복잡한 모자 구조다. 국내 사모사채와 메자닌 등에 주로 투자하는 플루토 FI D-1호, 테티스 2호 등 4개의 모펀드에 173개 자펀드가 중복해 투자하는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4616개 개인, 법인 계좌들은 자펀드를 통해 모펀드에 투자한다.

그로 인해 A자펀드에 설정된 자금이 모펀드를 거쳐 B자펀드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라임은 A펀드가 투자한 코스닥 CB의 손실을 메우기 위해 B펀드에 모아진 자금으로 메트로폴리탄의 사모사채를 매입하고 메트로폴리탄이 A펀드의 부실 CB를 매입하도록 하기도 했다. A펀드의 손실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금융위는 여러 개 펀드를 편입해 복잡한 복층, 순환 투자구조를 만드는 것은 펀드간 위험을 전이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으나 이를 금지하지는 않았다. 김 정책관은 “펀드의 복층 투자는 규모의 경제 효과와 해외 투자시 유리한 점이 있으나 수탁고를 과장할 수 있고 다단계로 팔아 운용보수를 과다하게 취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점”이라면서도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집단 순환출자를 규제하기 어렵듯이 규제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1개의 모펀드에 수십, 수 백 개의 자펀드가 얽혀 있는 구조를 어느 정도 금지할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아직 내려지지 않았단 설명이다. 다만 자펀드간 상호출자는 금지했으나 정작 라임에는 이 같이 상호출자는 없다.

◇ 판매사·수탁사·PBS한테 운용사 관리를?

금융위 대책 중 의아한 점은 판매사, 수탁사, PBS증권사 등에 사모운용사에 대한 관리, 감시 의무를 맡기고 이에 대한 책임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플루토 TF 1호 펀드가 TRS증권사인 신한금융투자와 라임이 짠 사기 펀드라는 점이 금감원 조사 결과 밝혀졌음에도 이들에게 운용사 관리를 맡겼단 점이 이해하기 어렵단 평가가 나온다.

사모펀드 재산을 수탁받은 신탁사가 운용사의 위법, 부당행위를 가장 신속하게 인지할 수 있다고 판단, 공모펀드와 동일하게 감시 의무를 부과했다. PBS부서와 판매사에게도 운용상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를 시정 요구토록 했다. 그러나 사모펀드는 공모펀드와 달리 정보가 제한적이다. 신탁사, 판매사, PBS증권사가 사모펀드의 운용정보를 어떻게 얻을 지에 대해선 개선책에 포함된 내용이 없다.



◇ 한 펀드에 85개 자산..투자자가 알아볼 수나 있나

투자자들에겐 분기별로 자산운용보고서를 받도록 허용했으나 이 역시 ‘폭 넓은 정보제공 방식’이 가능토록 해 얼마든지 회피할 수단을 만들어놨다. 구체적인 투자처가 제시되지 않고 A등급의 사모사채, 메자닌, 재간접펀드 등으로 뭉뚱그려질 경우 운용 정보에 대한 제공도 유명무실해진다. 하나의 펀드에 여러 개의 자산을 동시에 편입할 수 있도록 2015년 규제가 완화된 탓에 플루토FI D-1호에만 무려 85개의 자산이 있는데 이를 투자자들이 알아보고 판단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사모펀드에 대한 정보 제공을 확대하기보다 개인투자자의 접근 자체를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일반투자자의 최소투자액이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상향됐지만 지금 사모펀드 시장은 개인투자자들의 유입이 용이한 상황”이라며 “펀드 구조를 충분히 이해하고 손실도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의 전문투자자만 사모펀드를 할 수 있게끔 해야 하는데 그런 내용은 없다”고 덧붙였다. 전문투자자 요건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금융위는 오히려 전문투자자 요건을 금융투자상품 잔액 5억원 이상에서 5000만원 이상으로 크게 완화한 바 있다.

무분별한 총수익스와프(TRS) 레버리지 사용을 제한하는 방안을 내놨으나 이 역시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운용사와 PBS(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 계약을 맺은 증권사 및 PBS 부서에서만 TRS 계약을 맺고 레버리지를 쓸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도 이 관계자는 “TRS 관련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고 해도 이 같은 사태를 막기 어렵다”며 “비유동성자산 비율로 TRS 거래를 제한하는 등 구조적으로 재발을 막을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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