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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속보]'안중근 동지' 최재형 선생 손자 별세···17일 서울에 분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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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독립운동 대부' 최재형의 손자

최 발렌틴 한국독립유공자후손협회장

4월 최재형 선생 순국 100주년 앞두고

경추골절 사경을 헤매다 14일 별세

"병원비 부족" 소식에 국민 성원 봇물

한 어르신 "가난해 목소리로라도 응원"

"조국은 당신을 기억합니다" "소액 죄송"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급히 러시아행

"정부, 유족과 유골 국내 송환 의향" 전달

유족 "모스크바 고려인 묘지에 안장"희망

최재형기념사업회에 17일 분향소 설치

중앙일보

안중근 의사와 최재형 선생.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최 선생은 1909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안 의사에게 권총을 마련해 주는 등 의거를 막후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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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선생의 손자 고 최 발렌틴 독립유공자후손협회장(82)과 문영숙 최재형 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지난해 3월 28일 러시아 연해주에 있는 최재형 선생 고택 앞에서 손을 꼽 잡고 있다. [사진 문영숙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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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1860~1920) 선생의 손자이자 유족 대표로서 그동안 활발하게 선양 활동을 해온 최 발렌틴(82·사진) 한국독립유공자후손협회 회장이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서 투병 중에 모스크바 시립병원(First city Pirogov hospital in Moscow)에서 14일 오후 3시쯤(현지시각) 별세했다고 최재형기념사업회(이사장 문영숙)가 15일 밝혔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거주해온 최 회장은 앞서 지난 1월 18일 딸이 사는 독일에 갔다가 스키장에서 사고를 당해 경추 1, 2번이 골절됐다. 독일 현지 병원에서 대수술을 받았고 지난 7일 모스크바 시립병원으로 옮겨졌다. 의식불명 상태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올해는 일본이 1920년 4월 연해주 우수리스크 일대의 독립운동가들을 대규모로 학살한 '4월 참변' 100주년이자, 당시 희생된 최재형 선생 순국 100주년의 해다. 이런 뜻깊은 해에 최 선생의 유족대표가 큰 사고를 당한 뒤 별세해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을 쓴 문영숙(작가) 이사장은 "지난해 최 회장은 대한민국 국적을 받았고 올해 최재형 선생 순국 100주년 추모식 행사와 '제1회 최재형 상'을 후손 대표로 직접 시상하기로 했는데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셔서 너무 슬프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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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가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할 때 사용한 브라우닝 권총과 같은 모델. 러시아 연해주에 세워진 '최재형 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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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함경북도 경원에서 태어난 최재형 선생은 가난 때문에 가족과 연해주로 이주한 뒤 자수성가한 '한인 디아스포라' 후예다. 안중근(1879~1910) 의사가 한반도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할 때 사용한 권총을 제공하고 의거를 막후에서 기획했다.

러시아에 이주한 가난한 한인들을 극진히 도와 현지에서 '페치카(벽난로) 최'로 불리며 존경받았다. 특히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초대 재무총장(장관)을 지냈고, 공로를 인정받아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최재형 선생 3남의 아들인 최 발렌틴 회장은 1938년 쿠이비세보(사마라)에서 태어났다. 1995년 한국독립유공자 후손협회를 설립할 때부터 회장을 맡아왔다. 이 협회에는 이범진·이동휘·김경천·허위·김규면 등 굴지의 독립운동가들의 후손 22명이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이에 앞서 최 회장의 아들 최 표트르(36·무직)는 "연금으로 생활해온 아버지의 치료비를 가족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눈앞이 캄캄하다"며 서울에 있는 최재형 기념사업회에 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수술비와 입원비, 항공 이송비로 이미 5만 유로(약 6500만원) 이상이 나왔고, 계속 발생할 재활치료비를 감당이 어렵다고 호소했었다.

이런 안타까운 소식이 지난 12일 중앙일보에 처음 보도(https://news.joins.com/article/23704323)되면서 각계에서 온정의 물결이 몰려들었다.

최재형 기념사업회에 따르면 롯데장학재단, 수산그룹 정석현 회장, 주식회사 동명, 신건설주식회사가 각각 1000만원씩을 후원했다. 3000원, 5000원, 1만원, 3만원, 5만원,10만원, 50만원, 100만원 단위로 수많은 국민이 정성을 보탰다.

5000원을 보낸 국민은 "힘내세요"라고 응원했다. 1만원을 낸 국민은 "나라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란 문자를 남겼다. 10만원을 송금한 국민은 "소액이라 죄송하다"고 했고, "조국은 당신을 기억합니다"라고 문자를 남긴 국민도 있었다. "15일 오전까지 185명(개인 및 단체 포함)이 5939만4000원의 정성을 모아 주셨다"고 최재형 기념사업회가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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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최재형을 기리는 기념비 제막식이 2019년 8월 12일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국가보훈처 정병천 과장, 오성환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 안민석 국회문화체육관광위원장, 소강석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 최재형 손자 최 발렌틴,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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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숙 이사장은 "한 어르신은 전화를 걸어 '내가 가난해 돈은 없지만, 안중근 의거를 돕고 목숨 걸고 독립운동을 한 최재형 선생께 빚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분의 손자가 쾌유하시기를 목소리로라도 응원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한다.

문 이사장은 "지난 14일 모스크바에 도착한 직후 '몇 시간 전에 최 회장이 끝내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애통했다. 수많은 국민이 보내주신 병원비를 가족에게 잘 전달하고 장례를 차질없이 치르도록 현지에서 정성껏 돕겠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최재형 선생의 공적과 최 회장의 활동상 등을 두루 평가해 최 회장의 유골을 국내로 봉환하겠다는 뜻을 전했지만 유족은 "모스크바 고려인 묘지에 안장하겠다"는 의향을 밝혔다고 문영숙 이사장이 현지에서 전했다. 유족은 정부의 뜻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직계 가족이 모두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현실을 감안해 모스크바 안장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 회장의 아들 표트르가 현재 무직이란 사실을 전해들은 박종범 영산그룹 사장(민주평통자문회의 유럽지역회의부의장)은 1만달러를 유족에게 쾌척하고 표트르씨를 직원으로 채용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문영숙 이사장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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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숙 최재형 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집필한 '독립운동가 최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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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발렌틴=1963년 모스크바 바우만공대 졸업. 기술학 박사. 30년간 전소경합금대학, 소련 항공산업성 계획부문에서 일했다. 특허·발명 등을 포함해 60편 이상의 학술 출판물을 냈다. 20년 이상 한인신문 '고려일보', , '고려신문', '러시아 한인', '원동' 등 매체의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일했다. 『최재형(최 표트르 세묘노비치)』, 『사진으로 본 러시아 한인의 항일 독립운동』 등 8권의 저서를 냈다. 1997~2003년 한국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국제위원회 위원, 1997년부터는 고려인독립유공자협회 회장으로 활동해왔다.

유족으로는 부인(68)과 아들·딸이 있다. 최재형 선생의 현손(玄孫·고손자)인 최 일리야(18)는 인천대(이사장 최용규) 장학생으로 초청돼 지난해 9월부터 인천대 어학원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한편, 최재형기념사업회는 최 선생의 공로를 평가해 17일부터 기념사업회 사무실(용산꿈나무종합타운 제1별관 B1층, 서울시 용산구 백범로 329 )에 분향소를 설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6월 러시아 하원 연설에서 "안중근·홍범도·최재형·이상설 선생 등 수많은 한국의 독립투사들이 이곳 러시아에 망명해 국권 회복을 도모했다"고 평가했다. 또 2017년 9월 문 대통령은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최재형·이상설·이위종·이동휘·김경천 등 독립유공자의 후손 등을 오찬에 초대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독립운동가의 후손분들께 대한민국이 예의를 다해 보훈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고, 최 회장은 "고국에서 큰 관심과 배려를 해주시니 참 기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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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선생의 현손(4대손)인 최 일리야(18, 인천대 어학연수중)가 지난해 9월 서울 효창공원에 있는 안중근 의사 가묘 앞에 섰다. 최재형 선생의 도움으로 1909년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한 안 의사는 이듬해 순국했으나 일제가 유해를 감췄다. "고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지키지 못해 초혼한 뒤 일단 가묘에 모셨다. 안 의사 가묘 옆은 삼의사(이봉창,윤봉길,백정기) 묘다.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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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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