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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남성' 게임개발자는 왜 무릎 꿇고 머리까지 박고 '사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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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노아크 女 일러스트 '페미' 논란에 개발자 "머리박고 사죄" 불씨

게임계 "클로저스 사건 이후 조심"…전문가 "사회현상 게임서 표출"

뉴스1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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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2년 전 '클로저스 사태'로 촉발됐던 게임계 '페미논쟁'의 재연일까.

한 여성 일러스트의 '페미니스트 인증'이 불씨를 당겼다. 한쪽에서는 '남성혐오'라고 발끈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상검증'이라고 맞서며 이번에도 한치의 양보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논란의 불씨는 국산 인디게임 '크로노 아크'의 여성 스킬 일러스트가 '페미니스트'임이 밝혀지면서다. 해당 일러스트는 지난해 11월25일 본인의 트위터 계정에 프랑스 파리에서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137명을 추모하고 '페미사이드'(남편이나 동거남, 전 남자친구 등에 의한 여성살해)를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는 내용의 기사를 공유했다.

이후 이 여성이 지난 3일 "외주로 스킬일러스트 작업한 크로노 아크가 출시됐다. 대박나라"라는 글을 올렸고, 남성 유저들을 중심으로 크로노아크의 게임 '보이콧' 선언이 이어졌다. '남성혐오'를 기치로 내세우는 이가 참여한 게임을 소비할 수 없다는 의지였다.

이에 크로노 아크 게임 개발자 A씨는 즉각적인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는 바닥에 머리를 박고 절을 하는 사진을 올리면서 "제 미숙한 검토와 일러스트레이터 선정으로 인해 유저 여러분들께 상심을 드린 점 죄송하다. 해당 스킬 일러스트는 교체하겠다. 앞으로 스킬 일러스트, 그 외의 모든 것에 대해 이번 일을 계기로 철저한 검토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A씨의 사과는 또 다른 불씨가 됐다. 페미니스트 게이머 단체 '페이머즈'가 "게임계 사상검증"이라며 비판하고 나선 것.

페이머즈는 "크로노 아크에서 사상검증이 발생했다. 업계 여성 노동자는 또 다시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블랙 컨슈머들의 주장으로 직업적 불이익을 당했다"면서 "일러스트레이터가 개인 SNS에 올린 글은 사상검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노동자에게 업무와 무관한 특정 정치적 입장을 묻고 이를 고용과정에 적용하는 것은 명백한 노동권 침해 행위"라고 지적했다.

논란의 크기는 다르나 2년 전 '클로저스 사태'가 오버랩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018년 넥슨의 벨트스크롤 액션게임(MORPG) '클로저스'의 성우 김자연씨가 '메갈리아'의 소송 비용 모금을 위한 티셔츠 사진을 올린 것이 화근이 됐던 사태다.

'클로저스 사태'는 게임계를 넘어 전 사회적인 영향을 미쳤다. 페미니즘 논란, '남혐-여혐'의 극단 대치 상황도 이때부터 시작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게임업계의 입장에서는 어느 쪽의 손을 함부로 들어줄 수는 없는 상황이다. 남성 유저가 많은 게임이라면 남성의 입장을, 반대라면 여성의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눈치싸움'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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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클로저스 사태'를 촉발했던 성우 김자연씨의 티셔츠 인증 글. /뉴스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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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게임계 관계자는 "2년전 클로저스 사태 이후 '페미니즘'과 관련해서는 모두가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며 "다만 이번 논란의 경우 해당게임의 개발사가 영세하기 때문에 매출의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좀 더 과하게 대응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상검증'이라는 비판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개인의 사상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는 부분"이라면서도 "개인적 소신을 밝힘으로 인해 함께 작업하는 이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면 문제를 삼을 수밖에 없지 않나"고 말했다.

반대로 기업의 이윤이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발언권을 규제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팽팽히 맞선다. 김희경 전국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장은 "모바일 게임 등의 비중을 보면 이제는 여성 유저도 5대5 수준에 가깝게 올라온 것을 알 수 있다. 남성 유저가 많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이해할 수 없다"고 전제했다.

김 지회장은 "강하게 발언하는 남성 유저의 의견이 과다대표되는 것은 아닌지도 살펴봐야한다"면서 "설령 게임사의 입장에서 남성 유저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직업적 피해나 개인 인권의 침해로 이어져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남녀 혐오와 같은 극단적인 갈등 구조는 급격한 사회변화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단순 호불호가 아닌 '혐오'감정은 쉽사리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남자라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분노하고 배척하는 것"이라면서 "이같은 현상은 집단 동조로까지 이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여성들은 '남성 위주의 사회'에 반발하는 한편, 젊은 남성들은 '우리 세대는 아닌데'라며 오히려 역차별을 주장한다"면서 "상호 혐오가 아닌 상호 이해와 공존의 가치로 나아가기 위해선 정부, 기업 차원의 정책이나 문화 형성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starburyn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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