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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매경춘추] 부국강병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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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정치·사회적 변혁의 급변기로 일컬어지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획기적인 산업 변화는 철기시대의 본격 도래에서 시작됐다.

춘추시대에 전쟁 무기로 사용되던 철기가 전국시대에는 생산도구의 중심이 된 것이다. 철제 농기구의 전국적인 보급과 함께 이 시기에 도입된 것이 소를 이용한 농사, 즉 우경이었다. 철기와 우경의 보급을 배경으로 제후국마다 생산력을 높이려는 경제정책을 시도했다.

상인의 역할도 중요시되며 사회적 인정과 자본 축적이 이루어지고 여불위(呂不韋) 같은 상인 출신이 재상으로 등용되기도 했다.

이 시대에 맹자와 같은 유가(儒家)들은 인간의 욕망을 교육과 교화로 통제하고 억압해 인(仁)과 덕(德)의 정치를 시행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쟁과 혼란, 경쟁과 변화의 시기에 제후들이 필요로 했던 것은 부국강병의 정치였기에 제후들의 현실적 관심과 거리가 먼 맹자의 정책은 어떤 제후에게도 채택되지 못했다.

한비자와 같은 법가(法家)들은 제후들이 해야 할 일은 나라를 부하게 하며 군대를 강화시키는 일, 즉 '부국강병(富國强兵)'이라고 주장했고 경제관은 자유경제주의였다. 인간이 부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근면 성실하게 노력해야 나라도 더불어 부강해진다고 믿었으며 나태한 삶은 빈궁하고, 노력하고 검약하는 사람은 부유하다는 원칙을 중요하게 여겼다.

뛰어난 리더보다는 공정한 시스템, 즉 합리적 법이 더욱 중요하다고 주장했고 '법불아귀(法不阿貴·법은 귀한 사람에게 아부하지 않는다)'를 중요시했다. 법은 군주와 신하, 백성 모두에게 똑같이 차등 없이 적용되고,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한, 올바른 정치를 달성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진시황은 이러한 한비자를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전략을 받아들였고 그 넓은 중국 대륙을 최초로 통일해 지금까지도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로 남았다.

인간은 누구나 바라고(欲) 희망하는(望) 욕망을 가진다. 모든 개개인이 자유롭게 자신의 욕망의 성취를 위해 노력하고 법은 차등 없이 공정하게 집행된다면 부국강병은 당연한 결과이지 않을까. 정치적 혼란이 사회갈등을 야기하고 4차 산업혁명이 모든 산업계를 변화시키고 있는 지금, 춘추전국시대 한비자의 '부국강병' 본질을 또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김해련 태경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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