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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책과 미래] 환자는 죄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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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코로나19 감염증'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거리는 썰렁하고, 행사는 취소되며, 학교는 문을 닫았다. 다섯 해가량 한 달 한 차례 꾸준히 해 왔던 고전문학 강의도 주최 쪽 결정에 따라 처음으로 쉬었다. 주말에 대형 쇼핑센터에 들렀는데, 사람이 너무 없어 어색했다. 모처럼 여행을 하려고 들른 공항도 텅 비어 썰렁했다. 단단해 보였던 일상이 이토록 가볍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유행하는 병에 걸리지 않으려고 시민들 각자가 조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바이러스는 밀접 접촉자가 아닌 한 거의 감염되지 않는 데다 중국을 제외하면 치사율도 아주 낮다. 다수 전문가들이 사람 많은 곳에 갈 때 마스크를 쓰고 비누나 알코올로 자주 손을 씻으면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감염병이지만 독감보다 좀 더 주의하면 될 듯하다. 하지만 죽음의 안개가 뿌려진 것처럼, 우리 사회 전체가 과도하게 예민하다.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은가.

사회적 패닉을 일으킬 정도로 사람들을 몰아붙인 건 감염병이 아니라 어쩌면 쏟아지는 관심과 비난일지 모른다. 일상을 살았을 뿐인데, 병에 걸리는 순간 사생활이 낱낱이 공개된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었으며, 누구와 만났는지가 온 국민 앞에 빠짐없이 노출된다. 다니던 직장은 일을 멈추고, 들렀던 가게와 식당은 문을 닫고, 만났던 친인들은 격리된다. 큰 폐를 끼치는 일이니 두려운 게 당연하다.

더욱 무서운 것은 병에 걸리는 순간 집단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우한에 살거나 여행한 게 죄는 아니다. 식사하고 물건 사고 영화 보고 직장 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치르는 일상이기에 아무 잘못도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병에 걸리는 순간 환자는 자기 관리에 실패해 지역사회에 질병을 퍼뜨린 부주의하고 무책임한 죄인이 된다. 때때로 사회생활이 힘들 정도로 극도의 조리돌림을 당한다. 온라인에 넘쳐나는 혐오를 보라. 아마도 아프면 절대 안 될 것 같은 이 심리적 공포가 사회적 패닉의 진짜 원인일 것이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동녁)에서 조한진희는 말한다. "누구도 아픈 것 때문에 아프지 않길 바란다. 질병의 개인화는 아픈 몸에게 질병의 책임을 전가시켜 죄책감으로 고통받게 만든다." 아무도 아프다는 이유로 비난받아선 안 된다. 감염병 환자는 실패자가 아니다. 아플 기미가 있으면 먼저 배려되고 아프면 응원을 받아야 한다. 환자를 죄인으로 대하지 않는 성숙한 사회여야 감염병 패닉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병을 이긴 후 축하를 받으면서 당당히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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