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는 것부터 모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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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알게 됐다. 장애인은 일상이 '모험'일 수도 있겠다는 걸.
태어나서 깁스 한번 해본적이 없어서 휠체어를 처음 타봤다. 바퀴가 있으니까 자전거처럼 빠르게 달릴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 문을 열고 나온 순간부터 경사로에 주차한 차량 때문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 평소였다면 한발자국만 옆으로 이동하면 됐지만 고작 몇cm의 턱이 두려워 수백미터를 돌아와야만 했다.
수백미터를 돌아 평소처럼 아파트를 빠져나가려고 하자 또 다시 난관에 봉착했다. 경사로가 있었지만 "왜 만들어 놓은거지" 싶을 정도로 전혀 이용이 불가능한 경사로였다. 평소 3분도 안걸리던 거리가 여러 이유로 아파트를 빠져나가기까지 15분이 걸렸다.
◆ 휠체어 탑승 4일째, 온몸이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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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가 익숙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운동부족이라 특히 아픈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새해도 밝았으니 "운동 열심히 해야겠구나" 스스로 반성하며 휠체어를 세게 밀었더니 보도블럭에 걸려 넘어졌다. "유레카!"(알아냈다!) 운동 부족이 아닌 도로의 문제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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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경사로라고 하기에도 우스울 정도의 길에도 휠체어는 속수무책으로 밀려나갔다. 안밀려나기 위해 억지로 힘을 꽉 주다보니 손바닥에 멍이 들었다.
◆ 화장실 이용이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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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비장애인들의 화장실과는 다르게 불투명 유리로 돼 있어서 "내 모습이 밖에서 보이지는 않을까?", "밖에서 문 열림 버튼 누르면 큰일(?)을 보는 내 적나라한 모습이 공개되는건 아닐까?" 여러 생각이 들어서 마음 편하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었다.
화장실이 더럽고, 불투명 유리 때문에 창피한 것 까지는 백번양보 해서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모 구청 화장실과 주민센터 장애인 화장실은 아예 청소도구함으로 사용하면서 들어갈 수 조차 없게 막아놓기도 했다.
작년에 장애인 인권 관련 취재를 하다가 장애인단체 관계자가 했던 말이 있다. "장애인화장실 자체가 없는 주민센터가 많다. 아무리 더럽고 지저분해도 화장실이 있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휠체어 사용 장애인들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리현상 조차 해결하기도 어려운게 현실이었다.
◆ 내 몸이 '쇼핑 카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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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매대 위쪽에 놓인 상품은 손이 닿지를 않았다. 쇼핑하려는 상품마다 직원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서 '손에 닿는 곳'까지만 쇼핑이 가능했다.
무릎 위에 물건을 올리다 보니 상품들을 몇가지 들고 있을수도 없었다. 행여나 떨어뜨리면 줍기도 쉽지 않은데다가 다른 쇼핑객들과 부딪히지 않으려 더 예민해졌다.
◆ 계단은 '에베레스트' 산에 오르는 것 보다 더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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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식당, 옷 가게, 편의점, 동네병원, 약국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시설들까지 이용이 불가능했다.
조그마한 턱만 있어도 바퀴가 걸려 지나갈수도 없는데 계단은 정말 '에베레스트' 산 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다.
경사로는 사실 장애인들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도 아니다. 몇 년 전 돌아가셨던 친할머니는 무릎이 좋지 않아 계단이 있는 곳을 싫어하셨다.
계단을 조금만 걸으셔도 한참을 앉아서 쉬시다가 숨을 고른 후에야 움직이실 수 있었다. 그래도 경사로에서는 조금 느려도 무릎에 큰 부담이 가지는 않는다고 하셨다. 고령화사회인 지금 할머니·할아버지를 위해서라도 경사로 구간이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 "바빠 죽겠는데 씨XX이 버스를 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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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다수의 버스들은 정류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리프트를 내려도 닿지 않을 거리에서 승객들을 태웠다.
계속 탑승을 거절 당하다 보니 그냥 아무 버스라도 탑승하자라는 심정으로 저상버스가 보이면 손을 마구 흔들며 탑승 의사를 보였다. 30분 넘게 정류장에서 거절만 당하다 겨우 탑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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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들릴거라고 생각했는지 "씨XX이 밖을 왜 나와. 집에 박혀있지"라며 욕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울컥했다. "바쁘면 일찍 서두르시던가요" 라고 말할까 하다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싫어 못들은 척 했지만 한마디 할걸 후회 중이다.
◆ 즐거운 설 명절…그들은 고향에 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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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기뻐야 할 명절이 휠체어 사용 장애인은 여전히 고속버스를 탑승한 채 고향에 갈 수 없다.
지난해 10월부터 서울↔부산, 서울↔강릉, 서울↔전주, 서울↔당진 노선 4개 노선에 휠체어 탑승 설비를 장착한 고속버스 20대를 현장에 투입해 시범 운영 중에 있지만 광주는 노선에서 빠져있다.
기차 역시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적으로 10석 이하다. 그렇게라도 기차를 탑승해 고향에 갈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기차노선이 없는 곳이 고향인 장애인들은 버스도 기차로도 고향에 갈 수 없는 상황이다.
장애인 콜택시도 지역 간 이동에 제약이 있어 어떤 수단으로도 타지역 이동은 사실 쉽지가 않다.
에필로그(epilogue). 체험 5일차에는 비가 내렸다. 도저히 밖을 나갈 엄두가 안났다. 우산을 써도 바닥이 미끄러워서 평소처럼 타고 다니다간 미끄러져 정말 죽을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휠체어를 타며 느꼈다. 누군가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겐 아닐수도 있단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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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10890@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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