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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사과 3개·굴비 2마리…1인가구 시대 달라진 '설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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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수산·청과물시장 매대 채운 ‘1인가구용 설 선물’
"구색보다 실리… 저가 소포장 상품이 더 잘 팔려"
온라인 쇼핑몰도 ‘1인가구 설선물’이 전체 55% 차지
전문가들 "좁은 공간 머무는 1인가구, 선물 크기도 축소시켜"

설 연휴를 앞둔 21일 오전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청과물코너. 상인 김정수(50)씨는 손님의 주문에 사과 1개, 자몽1개, 애플망고 1개를 담은 ‘1인가구용 선물세트’를 만들어 2만5000원에 팔았다. 명절용으로 잘 나가던 10만원대 과일 선물세트를 찾는 손님은 없었다. 김씨는 "낱개 포장된 과일들을 골라 5만원 이하로 소포장해 판매하는 선물세트가 요즘은 더 잘 나간다"며 "오늘도 2만5000원, 3만원짜리 선물세트만 두개씩 팔았다"고 했다.

명절 대목을 맞는 대형시장의 풍경이 달라졌다. 축산시장과 수산시장, 청과물시장에 고가(高價) 설 상품이 사라지고, 5만원 미만의 소포장 상품이 늘고 있다. 부담없는 가격대 물건으로 마음만 전해 구색보다는 실리를 찾는 것이다. 상인들은 "취업준비로 설에도 발이 묶인 자녀를 위해 ‘1인용 선물세트’를 만들어 달라거나, "부모님 드실만큼만 적은 양을 포장해달라"는 요청도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1인용 소포장 설 선물 등장

조선일보

21일 오전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4만원 대에 판매되고 있는 애플망고 설 선물 세트(좌)와 손님이 원하는 과일로 소포장한 설 선물세트(우)./민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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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가락시장의 한 청과물 상점 매대에는 사과 10개를 담아 5만원, 배 8개를 담아 4만5000원, 망고 9개를 담아 5만5000원에 판매하는 선물세트가 진열돼 있었다. 그러나 상점을 찾은 손님들은 "더 작은 사이즈로는 포장이 안되냐"고 물었다.

부모님과 함께 온 김유리(29)씨는 "큰 사이즈 과일선물이 여기저기서 들어오면 결국에는 다 먹지도 못하고, 그 크기에 맞춰 답례 선물을 해야하는 부담감이 있어 올해는 애초 작은 선물세트를 주문하러 왔다"고 했다. 김씨는 사과 3개와 배 3개를 포장해 3만원짜리 선물세트를 만들고 택배를 보내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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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성동구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구매한 1인용 한우선물세트(좌)와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20만원대 한우모듬선물세트(우)./민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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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물 시장도 ‘소포장’이 대세였다. 22일 오전 서울 마장동 축산시장에는 15만~20만원대 한우선물세트와 함께 주로 구이용 부위를 담은 4~5만원대 소포장 한우세트를 팔고 있었다. 상인 유기수(64)씨는 "찜이나 국거리용 보다 맛보기용으로 토시살·안창살 같은 특수부위를 조금씩 담아낸 상품들이 더 잘 팔린다"고 했다. 4종류의 특수부위를 담은 410g ‘투 플러스 한우세트’는 5만2000원에 팔려나갔다.

이를 지켜보던 손님 최준호(59)씨는 "경기가 안좋다보니 한우를 선물하고 싶어도 늘 가격이 부담이었다"며 "막상 시장에 나와보니 이렇게 작게도 선물포장을 해줘 소포장 선물세트만 3개를 구매했다"고 말했다.

10마리씩 한 두름으로 묶여 팔리는 굴비도 2~4마리씩 진공포장된 상품이 주를 이뤘다. 보리굴비와 참조기 한 두름의 가격은 크기별로 7만~10만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상인 임맹순(60)씨는 "엄마들이 시장을 찾아 ‘요즘 젊은 애들이 이 많은 걸 언제 다 먹겠느냐’면서 조금씩 사 설에 보내더라"라며 "2만~3만원짜리 굴비세트는 만들어놓으면 바로바로 팔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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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구매한 2만원 대 소포장 보리굴비(좌)와 일반적으로 판매되고 있는 7만원 대 굴비 세트(우)./민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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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몰 설 선물도 ‘소포장’이 주력상품
온라인 시장에서도 1인 가구를 겨냥한 설 상품의 판매량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이커머스 업체 티몬에 따르면, ‘설 대목’으로 분류되는 최근 2주(1월 1~15일)간 팔린 선물세트 가운데 3만원 이하 소포장 상품의 비중은 55%였다. 작년 대비 11%, 재작년 대비 22% 증가한 수치다. 이중 2만~3만원 사이의 설 상품이 전체의 27%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전문가들은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1인 가구의 증가는 거주공간 자체도 작아지는 것을 의미한다"며 "좁은 공간에 커다란 사과박스가 들어오면 저장공간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음식물처리도 까다롭기 때문에 대형선물세트 판매량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1인 가구 증가에 따라 이들이 주고 받는 선물의 크기가 줄어들고 선물 종류도 개인의 기호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며 "받는 사람도 부담이 큰 사과박스나 한우 세트의 사이즈는 줄어들고, 상품권·현금을 같이 보내 구색보다 합리성을 따지려는 추세"라고 말했다.

[박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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