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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외국인의 ‘원정 출산’ 어떻게 단속하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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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정부가 미국 시민권 취득을 목적으로 한 외국인의 원정 출산 단속에 착수했다. 미 국무부는 23일(현지시간) 관광·상업·질병 치료 목적으로 발급하는 비자의 심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원정 출산을 차단하는 새로운 비자 규정을 발표하고, 이를 24일부터 당장 시행한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단기 여행 비자인 B1, B2 비자를 발급받은 외국인 여성이 미국에서 출산함으로써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자동으로 부여되는 아이의 시민권 취득 차단에 나섰다.

그러나 한국인은 이 심사 대상에서 일단 제외됐다. 미국은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와 유럽의 39개 국가를 대상으로 비자 면제 프로그램(VWP)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이 프로그램을 적용받는 국가 국민은 이번 새로운 규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한국은 2008년 10월부터 미국의 VWP에 가입돼 있다. 한국인은 무비자로 미국을 방문할 수 있어 단기 방문 목적으로 미국을 찾을 때는 비자 면접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다만, 한국인 여성이 3개월간 미국 내 체류가 가능한 비자 면제프로그램이 아니라 그 이상의 기간 체류 등을 목적으로 정식으로 방문 비자 면접 절차를 밟으면 원정 출산 단속 대상이 될 수 있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비자 면제프로그램 적용을 받는 것도 아니다. 한국인은 전자여행허가제(ESTA)로 불리는 미국 정부가 운영하는 웹사이트를 통해 여행 허가를 받아 관광, 비즈니스, 경유 목적으로 미국을 방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ESTA 프로그램을 이용해 방문 허가를 받지 못한 한국인은 비자 면접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히 한국인 중에서 2011년 3월 이후 북한을 방문하거나 체류한 적이 있는 사람은 비자 면제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없다. 또 이란, 이라크, 리비아,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 예멘을 방문한 한국인도 마찬가지이다.

미 국무부가 마련한 새 규정에 따르면 비자 면제프로그램 적용 대상국이 아닌 외국인 여성이 B1, B2 비자 신청을 하면 각국에 주재하는 미 국무부의 영사가 원정 출산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할 때 비자 발급을 거부할 수 있도록 했다. 가임기의 여성이 모두 임신 테스트 결과 등을 제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 영사가 눈으로 여성의 신체 특징을 살펴보면서 미국 방문 목적 등을 물어 판별하게 된다. 워싱턴 포스트(WP)는 이날 여성의 신체 상태에 따라 미국 영사가 임신 여부를 묻는 말을 할 수 있다고 미정부 당국자가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임신한 여성도 치료 목적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고, 의료비를 댈 수 있는 충분한 자금이 있다는 점을 입증하면 미국 방문 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임신한 외국인 여성이 와병 중인 가족이나 친척을 방문하려 할 때도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국무부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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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무부의 고위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전화 콘퍼런스를 통해 외국인의 원정 출산을 차단하려는 이유로 ‘국가 안보’와 ‘공중 보건’을 꼽았다. 원정 출산으로 미국의 안보가 위협을 받을 수 있고, 미국인의 병원 이용 기회가 줄어들어 공중 보건을 해칠 수 있다는 게 국무부 측 주장이다. AP 통신은 외국인 여성이 의료비와 숙박비를 포함해 8만 달러를 내면 원정 출산을 할 수 있다는 광고가 나왔을 정도이고, 중국과 러시아 여성의 원정 출산이 많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이민연구소는 2012년에 3만 6000명의 임신부가 미국에서 원정 출산을 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보수적인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마이크 호웰 선임 고문은 연간 원정 출산이 3만 건가량으로 추산된다고 WP에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국무부가 시행하는 새 규정이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이민 규제’이고, 여성차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영사가 자의적으로 외국인 여성에게 미국 방문 기회를 박탈할 수 있고, 이를 외국인 이민 규제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WP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8년 ‘속지주의’에 따른 미국 시민권 취득 제도를 철폐하는 행정명령을 내리려 했었다. 미국이나 미국령에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이 자동으로 미국 국민이 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었다. 그러나 속지주의를 폐지하려면 헌법 개정이 이뤄져야 하므로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미국의 연간 B1, B2 비자 발급 건수는 약 580만 건가량이고, 이 중에서 수천 명이 원정 출산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미 국무부 당국자가 말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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