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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금)

[매경데스크] 기생충과 BTS를 만든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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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1인치 정도 되는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은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기생충'으로 외국어영화상을 받으며 남긴 수상 소감이다.

봉 감독 말처럼 미국인들은 자막이 있는 외국 영화를 즐겨보지 않는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미국 내 전체 영화 매출에서 외국 영화 비중은 6.4%(2016년 기준)에 불과하다. 영화 10편 중 1편도 채 되지 않는다. 같은 해 한국 영화시장에서 외국 영화 비중은 46.8%에 달했다. 특히 미국 영화 점유율은 42.2%나 됐다. 국내 영화 팬들은 영화 2편 중 1편은 자막과 함께 즐긴 셈이다.

이런 현실에서 영화 '기생충'은 많은 것을 이뤘다.

지난해 5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시작으로 시드니, 로카르노, 밴쿠버 국제영화제 등 전 세계 영화제 150여 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한국 영화 최초로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고 미국 배우 조합인 SAG 시상식에서 작품상까지 받았다. 외국어영화로는 최초 수상이다.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 최고의 영화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국내에서는 일찌감치 1000만 영화 반열에 올랐고, 북미에서도 2815만달러의 수익을 냈다. 역대 한국 영화 가운데 1위다. 전 세계적으로는 1억3938만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기생충'은 이제 한국 영화 최초로 오스카상을 노리고 있다.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미술상, 국제영화상 등 6개 부문의 수상 후보작에 올라 있다.

봉 감독의 바람대로 미국인들이 자막 너머를 보게 된 것이다.

자막 대신 한국어로 된 노래를 즐기는 외국인들은 이미 많다. '21세기 비틀스'로 불리기까지 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한 아이돌 그룹 덕분이다. 이들은 걸어다니는 중견기업 수준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BTS의 인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10년(2014∼2023년)간 BTS의 총경제적 효과는 생산유발 효과 약 41조8600억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 약 14조3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BTS는 지난해 12월 31일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에서 열린 ABC의 신년맞이 행사에 참석했다. 운집한 팬들이 한국어 떼창을 하며 환호하는 모습이 전 세계 전파를 탔다.

대한민국 대중예술의 눈부신 성취는 여기까지 왔다.

물론 '기생충'과 BTS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문화는 뿌리 없이 어느 날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한 나라가 쌓아올린 다양한 산물들이 어우러진 열매이기 때문이다.

'기생충'과 BTS도 검열 폐지 등 규제 완화와 민주주의 발전, 글로벌 미디어 환경과 변화를 읽은 선견지명 등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봉 감독이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하면서 "기생충은 갑자기 튀어나온 영화가 아니다. 한국 영화의 역사는 길다. 기생충은 그 과정 중의 하나이고 역사의 연장선"이라고 말한 것처럼.

그렇다고 한국 영화와 K팝에 꽃길만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 시장은 여전히 비좁고 경쟁은 치열하기 때문이다.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문화 역시 해외에서 길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기생충'은 곧 TV 시리즈로 제작돼 미국 안방 극장을 찾게 된다.

드라마의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여러 형태로 변주가 가능한 이야기와 주제, 은유를 담고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인 만큼 기대가 큰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어느 도시를 배경으로 영화 '기생충'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국에 관심을 갖고,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을 방문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영미권 대중예술 분야에서 활약하는 한국인도 더 자주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다.

[이은아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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