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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금)

[우문현답] 값싸고 깨끗한 에너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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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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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월이면 세계 기업인들은 라스베이거스의 CES와 다보스의 세계경제포럼에 모여든다. 그해의 기술 트렌드와 세계 경제의 화두를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올해 CES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AI, 즉 '인공지능'의 상용화에 있었고, 다보스의 쟁점은 '기후변화' 등 지속가능 성장 문제였다.

인공지능과 기후변화는 둘 다 전기에너지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 인공지능은 천문학적 양의 데이터를 수집·연산·분석·학습하는 데에서 완성되고, 그 과정에서 값싸고 안정적인 다량의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경제적이고 정전 없는 전력 공급을 보장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인공지능 시대로 들어가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것이다. 반면 '기후변화'의 주범은 무분별한 화석연료 사용에 의한 탄소 배출에 있고 배출원 중 가장 큰 비중은 발전 부문이 차지한다. 최근 다보스에서 세계 10대들의 '기후변화 저항 행동'을 이끄는 스웨덴의 17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와 '기후변화는 사기'라고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간 격돌도 있었다.

한국은 양과 질에서 전기 품질이 세계 최상급이다. 그래서 글로벌 디지털 기업들이 한국에 데이터 센터를 설치하려 한다. 제조업 시대에 산업단지가 도처에 생겨나듯이, 데이터 기반 디지털 전환시대에는 대형 데이터 센터가 전국적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반면 1인당 탄소 배출량은 세계 4위란 오명을 쓰고 있고, 이미 한국은 온난화로 인해 겨울에 얼음이 얼지 않는 데 익숙해졌다. 우리는 2030년까지 2015년 대비 37% 탄소 감축을 세계에 약속했고 그 이행 상황 점검이 2023년부터 시작된다. 불합격이면 혹독한 경제 분야 제재를 받을 텐데 우리의 준비 상황은 걱정스럽다.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자율 전기차 시대를 감안하면 값싸고 안정적인 전기의 수요는 크게 늘어날 텐데, 한편으로는 전기에너지의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될 상충되는 상황이다. 더욱이 '값싸고 탄소 배출이 없는' 원자력 발전도 탈원전의 프레임 속에 갇혀 있고, 전력 공급을 사실상 독점하는 한전은 적자의 늪에 빠져 있다. 한전이 적자로 인해 기존 시설의 운영·유지에만 급급하다 보면, 혁신적인 투자를 계속해 전력시설의 안전과 수급의 안정을 도모해 나가지 못하고, 대형사고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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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 환경, 안전은 전기사업법에 규정된 전력 공급의 3원칙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목표 세 가지를 완벽하게 충족시키기는 어렵다. 국민은 하나도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나가야 한다. 그런 방향에서 몇 가지 제언을 한다.

첫째, 원전에 대한 정부 생각이 좀 유연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당장 탈원전의 기조를 바꾸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그 속도나 범위에서 보다 현실적인 인식이 필요할 것이다. 탄소 감축 목적뿐만 아니라 기투자 매몰비용, 원전 생태계 유지 등에 대한 현실적 배려가 필요하다.

둘째, 재생에너지는 특히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고 환경이나 갈등,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경제성 면에서 구조적 한계가 있다. 최근 정부 지원에 의존하던 신재생 에너지 사업자들이 보상 가격이 떨어지니 도산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는 현재는 경제성이 부족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석탄 등 화석연료를 대체해줘야 할 대상이고,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너무 낮다. 또 신재생에너지 사용 100% 기업들과만 거래하려는 구글, 애플 등 글로벌 디지털 기업들의 'RE100' 추세를 감안해서라도 그 비중이 계속 확대돼야 한다. 우리도 당분간 정부 지원을 줄이지 말고 사업자들이 시장에서 장기적 공급계약을 할 수 있게끔 해줘서 안정 기반을 만들어줘야 한다.

셋째, 스마트 에너지 등 에너지 효율화 산업에 대규모 투자 붐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 발전소 몇 개 건설하는 것보다 5~10%라도 에너지 소비를 감축할 수 있으면 이것보다 더 좋은 대안은 없다. IT와 배터리, 전기 품질이 세계적인 우리는 이들을 결합해 가정, 공장 및 건물에서 획기적으로 에너지 사용을 절감하고 나아가서는 스마트시티를 만들어 가는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또한 최근에 있었던 에너지저장장치, 즉 ESS의 잇단 화재에 대해서는 완전한 원인 규명과 해법을 찾아 손상된 신뢰를 회복해야 되겠다. 정부의 이 분야에 대한 선도적 투자는 민간부문의 투자도 유발할 수 있고 그 기술을 수출할 수 있어서 경기 유발 효과가 크다.

마지막으로 동북아 국가 간 전력망 연결이다. 독일이 탈원전을 하면서도 제조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프랑스 등 이웃 국가로부터 저렴하게 전기를 수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중국, 몽골, 러시아, 일본의 전력망을 연결하는 '동북아 슈퍼그리드' 추진에 다시 불을 지펴야 할 것이다. 특히 몽골의 매우 저렴하고 깨끗한 자연에너지는 경제성도 있고 친환경적이다. 또 우리가 생산한 잉여전력을 일본에 수출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주어진 여건 속에서 상충되는 여러 가지 목표를 맞추어 나가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에너지 믹스(mix) 즉 대안의 조합을 짜 맞춰 나갈 수밖에 없다. 그래야 디지털 전환시대에 우리산업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끔 경제적이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체계를 유지할 수 있고, 동시에 국제사회의 기후·환경 감시에 그나마라도 대응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전기 소비자들도 '싸고 깨끗한 전기'를 안정적으로 사용하려면 전기절약에 더 노력하고, 다소의 전기 요금 부담은 감수해야 한다. 에너지 문제는 식량 문제와 같이 어느 나라든지 국가를 지탱하는 기둥뿌리이고 보편적 복지의 근원이다. 그래서 더욱 현실적이고 균형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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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환익 한양대 특훈교수(前 KOTRA·한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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