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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매경춘추] 기술강국과 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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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난해 우리나라의 가장 큰 이슈는 일본의 수출규제였다. 일본은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3대 핵심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의 수출을 규제하였고 국내 반도체 기업의 피해가 예상되었다. 특히 99.999%의 고순도 불화수소는 일본 기업을 제외한 대체 공급처 발굴이 곤란했다. 99.99%의 불화수소 생산능력을 갖춘 국내 기업은 존재했으나, 그 열 배나 되는 고순도 불화수소 정제 기술은 일본만이 가졌기 때문이다.

99.99%를 99.999%의 고순도 불화수소로 만드는 핵심기술은 무엇일까? 99.999% 고순도 불화수소는 10만개의 분자 중 한 개의 불순물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정제된 불화수소에 존재하는 미량의 불순물을 구분하여 제거하기 위해서는 매우 정밀한 측정이 기본이다. 다시 말해, 미량의 불순물 종류와 농도를 측정하여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이 중요하다. 따라서 10만개의 분자 중 한 개의 불순물을 측정할 수 없다면 99.999%의 고순도 불화수소의 생산은 불가능하다.

경영학의 아버지인 피터 드러커는 "측정할 수 없다면 개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산업에서도 제품의 핵심이 되는 성분을 측정하지 못하면 제품의 품질을 향상시킬 수 없다. 고순도 불화수소뿐만 아니다. 세계 최고의 제품을 생산하는 첨단 산업에서 활용되는 측정 기술은 지속적으로 고도화되고 있다.

측정 기술은 일정한 양을 기준으로 같은 종류의 다른 양의 크기를 재는 기술을 말한다. 여기서 기준이 되는 일정한 양을 표준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니 측정 결과의 일관성이 있어야 기술로서 의미가 있다.

같은 시편을 측정하더라도 측정장비마다 다른 측정결과를 보여준다면, 제품의 품질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측정과 표준은 긴밀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측정표준은 기준이므로 모든 측정결과는 이러한 측정표준에 근거를 두어 결과의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다시 말해,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측정표준을 통해 일관성이 담보된 측정기술이 확보되어야 한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대한민국의 기술 독립에 대한 국민적 합의의 계기가 되었다. 정부도 세계 최고 수준의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육성을 위해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성과를 낸다 한들, 국제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면 그 성과는 거품처럼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기술 강국, 기술 자립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표준을 세우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남승훈 출연硏 과학기술인協총연합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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