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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유통 앙숙' 신세계도 오고 갈등 빚던 넷째·막내도 찾았는데, 농심 신춘호는 왜 안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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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호 농심 회장, 신 명예회장과 수십년간 만나지 않을 만큼 갈등의 골 가장 깊었던 동생으로 알려져 / 의절한 뒤 선친 제사도 불참

세계일보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왼쪽 사진)과 동생 신춘호 농심 회장. 롯데·농심 제공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재계 1세대의 마지막 생존자인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빈소에는 고인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각계각층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장례식 셋째날인 지난 21일에도 GS그룹 명예회자인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비롯한 구광모 LG그룹 회장, 윤여철 현대자동차 부회장, 양진모 현대차 부사장, 금춘수 한화 대표, 김범석 쿠팡 대표, 강덕수 전 STX 회장 등이 빈소를 찾아 애도를 표했다.

유통업계 앙숙으로 꼽히는 신세계에서도 대거 빈소를 찾아 롯데 창립자의 명복을 빌었다. 이명희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은 권혁구 그룹 전략실장과 차정호 신세계 대표, 강희석 이마트 대표, 장재영 신세계인터내셔날 대표 등 10여명의 사장단과 동행해 40여분가량 빈소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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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이명희 신세계 회장(왼쪽)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지난 21일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빈소를 찾고 있다. 뉴스1


이처럼 재계를 대표하는 외빈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빈소를 찾았으나 정작 고인의 동생인 신춘호 농심 그룹 회장은 지난 22일 오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 콘서트홀에서 엄수된 영결식에서도 볼 수 없었다는 전언이다.

고인은 5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신춘호 회장, 신준호 푸르밀 회장, 신선호 일본 산사스 회장,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 등이 대표적인 형제들이다.

신 명예회장은 한국으로 돌아와 사업 초기에는 남동생들과 롯데를 함께 운영했으나 신선호 회장을 뺀 동생들은 모두 각자 사업체를 갖고 제갈길을 갔다. 갈등 끝에 롯데에서 분가해 사실상 고인을 등진 셈이다.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둘째 동생인 신춘호 회장과 넷째 동생인 신준호 회장의 행보는 대조를 보였다.

신준호 회장은 가장 마지막까지 형 곁을 지켜 주목을 받았다. 그는 2007년 롯데그룹에서 분할된 롯데우유 회장으로 취임했으나, 그룹 측은 ‘롯데’라는 브랜드 사용을 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 2년 후 사명을 지금의 푸르밀로 변경했다. 신준호 회장은 그 이후 고인과 교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춘호 회장은 신 명예회장과 수십년간 만나지 않을 만큼 갈등의 골이 가장 깊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롯데 이사로 재직하던 1960년대 고인의 만류에도 라면사 업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 아니었겠느냐는 분석도 있다.

신춘호 회장은 65년 롯데공업을 차려 자기 사업에 본격 나섰고 그 이후 고인과 사이는 더욱 멀어졌다. 78년 사명을 농심으로 바꾸며 ‘제2의 창업’을 선언, 롯데가에서 아예 발을 뺐다. 역시 롯데라는 상호명의 사용을 거부당해 의절한 신춘호 회장은 선친 제사에도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신춘회 회장은 아들인 신동원 농심 부회장과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을 보내 빈소를 지키게 했다.

신 명예회장과 법적 공방을 벌인 막내 여동생인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은 영결식에 오빠인 신준호 회장과 함께 무대에 올라 고인을 추모하며 헌화했다.

신 사장의 남편 김기병 회장은 롯데관광개발을 운영하고 있는데, 롯데그룹이 2007년 일본의 관광 대기업 JTB와 합작해 롯데JTB를 설립하면서 갈등이 빚어졌다는 후문이다. 당시 고인은 역시 롯데라는 브랜드명을 사용할 수 없도록 소송을 걸었는데, 지고 말았다. 다만 롯데관광개발은 이름에서 롯데만 쓰고 있을 뿐 그룹 로고까지 공유하지는 않고 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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