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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위험 때문에 파병? 파병 때문에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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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칼럼] 너무나도 부적절한 호르무즈 파병 결정

문재인 정부가 장고 끝에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결정했다. 형식은 아덴만 일대에서 임무 중이던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호르무즈 해협을 사이에 끼고 있는 오만만과 아라비아/페르시아만 일대까지 확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필요할 경우 국제해양안보구상(IMSC)과의 협력을 전제로 하면서도 독자적 작전 수행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대단히 부적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형식은 '독자적 작전'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파병 요구를 수용한 성격이 짙다. 이는 미국과 대결 상태에 있는 이란 및 중동 내 친이란 세력의 반한 감정을 자극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정부여당은 청해부대 파병동의안이 작년에 국회에서 통과될 때 "유사시에 작전 범위를 확대한다는 법적 근거"가 있었다는 점을 들어 추가적인 국회 동의도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것 역시 꼼수로밖에 볼 수 없다.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작전은 이 지역을 실질적으로 관할하고 있는 이란을 상대로 한 것이기에 해적에 의한 유사시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파병을 통해 달성하려는 목표가 파병에 의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정부는 "우리 국민의 안전과 선박의 자유항행 보장"을 파병 사유로 밝혔다. 하지만 호르무즈 파병이 시급히 요구될 정도로 현지에서 우리 국민의 안전과 선박의 자유항행이 위협받은 사례 자체가 없었다. 이는 거꾸로 이번 파병 결정이 우리의 이익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레시안

▲ 청해부대 31진 왕건함이 지난해 12월 27일 부산 해군작전사령부에서 출항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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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상황 전개는 이란과 서방 국가들의 갈등은 이러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행히 미국과 이란이 확전을 자제하면서 당장 무력 충돌이 재발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하지만 핵 문제를 둘러싼 서방 국가들과 이란의 갈등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은 이란이 잘 준수하던 핵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해 강력한 제재를 부과했다. 이에 반발한 이란은 우라늄 농축 활동을 하나둘씩 늘려갔다. 그러자 영국, 프랑스, 독일은 이란의 협정 위반을 이유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할 뜻을 내비쳤다. 여기에는 이란 제재에 동참하지 않으면 경제 보복을 가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협박이 주효했다.

이란의 반발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자바드 자리프 외무장관이 "만약 유럽 국가들이 계속해서 부적절한 행동을 하거나 유엔 안보리에 이란을 회부하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겠다"고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서방 국가들은 이란의 NPT 탈퇴를 '금지선'으로 간주해왔다는 점에서 유엔 안보리 회부 및 이란의 NPT 탈퇴가 맞물릴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악화될 수 있다.

사태 악화 시 이란이 꺼내 들 수 있는 카드 가운데 하나가 바로 호르무즈 해협의 '선택적 봉쇄'이다. 이란 제재에 적극 동참하거나 이란을 겨냥한 미국의 군사 활동에 가담하는 나라들의 선박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이란 제재에 동참한 상황이고 호르무즈 해협 파병도 결정하고 말았다. "우리 국민의 안전과 선박의 항행 자유"를 위해 내린 결정이 자칫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는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더구나 이번 파병 결정은 실리는 물론이고 명분조차도 없는 것이다. 미국의 일방적인 이란 핵협정 탈퇴가 위기를 조장했고 드론을 동원한 솔레이마니 사령관 암살도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파병 결정은 마땅히 철회되어야 한다.

기자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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