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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이승홍의 맞울림] ‘치매가족책임제’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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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승홍 ㅣ 녹색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새해 시작과 함께 안타까운 소식이 하나 전해졌었다. 용인시에 사는 한 치매 노인이 자신을 돌봐주던 아들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한 채 시신과 함께 약 두달 동안 생활해온 것이 뒤늦게 발견된 것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황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고인은 지병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두 모자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치매 환자를 부양하는 일의 고됨이다. 질환이 비교적 가벼울 때는 부분적으로나마 자립된 생활을 할 수 있지만 말기에 이르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 활동까지 누군가가 해결해주어야 한다. 이때부터 돌봄은 고된 육체노동을 수반한다. 체중을 지탱하며 들었다 놓는 일을 매일 하다 보면 관절이 상하고, 하루도 쉬지를 못하니 각종 만성질환이 발병하거나 악화될 수 있다. 운 나쁘게도 치매에 행동 문제가 심하게 동반되는 경우 돌보는 사람은 심리적 스트레스도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환자는 치매로, 보호자는 우울증으로 함께 치료받는 경우가 많다.

치매를 진단받은 분들이 질환을 안고 살아가는 평균 유병 기간은 대략 10년으로 알려져 있다. 긴 시간의 돌봄을 환자의 가족 한두명이 도맡는 경우가 많다. 가족구성원 중 가사를 전담하거나 일정한 직업을 갖지 않은 사람이 주로 나서게 된다. 결국 가족 내 여성 내지 다른 노인의 몫일 확률이 높다. 돌봄을 누가 감당하느냐를 두고 가족 간의 갈등이 불거지기도 한다. 치매라는 질환이 가져오는 딱 그만큼의 슬픔을 넘어선 좀더 심각한 우울감이 가족을 덮치는 것은 ‘치매가족책임제’가 가져오는 불행이다.

가족구성원 중 한두 사람이라도 더 손을 보태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우리나라엔 그런 선택지가 없다. 간병휴직이라는 제도가 유명무실하기 때문이다. 고령화에 대한 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일본도 가족의 간병을 위해 일정 기간을 유급 휴직으로 보장하는 간병휴직을 확대하고자 노력 중이라고 한다. 자신의 몸이 아파도 진통제를 먹어가며 출근을 해야 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권 노동시간을 감당하는 우리는 가족이 심각한 질병에 걸리면 직장과 병원을 오가며 공중곡예를 하거나 결국 생계를 포기하는 ‘간병퇴직’을 고민해야 한다.

치매로 인한 부담을 공동체가 함께 나누어 져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는 이미 존재한다. 정부는 치매 진단과 치료를 위한 의료비용을 경감하고 전국 256개의 치매안심센터를 개소하는 등 변화의 첫걸음을 이제 간신히 시작했다. 하지만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은 여전히 가족 중심이며 국가의 빈자리는 크다.

주간보호센터나 요양원 등 가족을 대신해 치매환자나 노인을 돌보는 시설들은 대부분 민간에 의해 건립되고 있다. 이런 시설들이 수익사업으로 운영되니 기관마다 질적 편차가 클 수밖에 없다. 일부 시설들은 인력이나 돌봄의 전문성에 한계가 있어 행동 문제가 동반된 치매 환자들이 도리어 퇴소되기도 한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국공립 요양원의 경우 시설과 서비스 면에서 월등한 만족도를 보이지만 민간 요양원 2만여곳이 설립되는 동안 국립 요양원은 240여곳 수준으로 입소를 위해 3~9년을 대기해야 한다. 정부의 계획은 2022년까지 130곳을 더 개설한다는 수준이다.

약물치료의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까닭에 치매 환자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돌봄의 질이다. ‘내가 먼저 죽으면 환자는 어떻게 될지 걱정’이라고 한숨짓는 노인 보호자가 참 많다. 가족들의 짐을 덜어주는 것을 넘어, 가족에게 기대고 싶지 않거나 혹은 가족이 없어도 치매를 겪는 개인이 존엄한 망각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 때 ‘치매국가책임제’는 비로소 성립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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