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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4 (화)

이란 민간기 오인해 290명 사망···美, 718억 준 '격추의 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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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8일(현지시간) 이란에서 추락한 우크라이나 항공기의 잔해.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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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현지시간) 이란에서 추락한 우크라이나 민간항공기를 두고 미국이 격추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하는 배경엔 과거의 뼈아픈 경험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항공(UIA) 소속 PS752편은 8일 새벽 이란이 이웃 이라크에 있는 미군 기지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 공격을 벌인 뒤 추락했다.

이란은 “기체 결함으로 인해 엔진에 불이 붙었다”며 단순한 추락사고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서 9일 기자들에게 “다른 쪽(이란)의 누군가가 실수를 했을 수도 있다”며 “나는 (단순 추락이 아니라는) 의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도 “격추라는 증거가 있다”고 이란을 압박하고 나섰지만 캐나다는 이 사고에 직접적 지분이 있다. 전원 사망한 탑승객 중 63명이 캐나다 국적이었다. 미국인 승객은 없었다. 미국의 보잉사(社)가 제조한 737-800 여객기라는 점을 제외하고 미국이 직접적인 인명 또는 재산 피해를 본 것은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미국이 이번 사건이 격추라고 강조하고 나서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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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9일 "이란의 미사일 공격으로 사망하거나 부상 입은 미국인은 없다"고 밝힌 뒤 오하이오 유세장으로 향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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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1988년에 있다. 미국은 이란과의 관계에서 88년을 잊지 못한다. 당시 이란의 민간항공기를 미국 해군 이지스함이 이란의 전투기로 오인해 격추시켰기 때문이다. 지난 8일 우크라이나 항공기가 격추된 것이 맞다면, 이번 사고는 미국에게 있어서 미묘한 데자뷔다. 민간 항공기가 미사일 격추로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다는 점에서다. 단, 가해 주체와 피해 주체가 뒤바뀌었다는 점이 다르다.

88년 추락한 이란 항공기의 추억은 공교롭게도 이란이 먼저 소환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지난 6일 관련 트윗을 올리면서다. 우크라이나 항공기 추락 전 시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 “이란이 공격을 할 경우 이란 내 중요한 52곳의 장소를 타격하겠다”고 경고 트윗을 날린데 대한 반격으로 로하니 대통령은 “290을 기억하라”는 내용을 트윗했다. 52라는 숫자는 이란이 40년 전 억류했던 미국인 인질 숫자이고, 290은 88년 미국의 이란 항공기 격추로 사망한 이란 국민의 숫자다. 로하니 대통령은 이 트윗에 해시태그로 #IR655를 달았다. 당시 격추됐던 이란 항공기의 편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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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하니 대통령이 6일 트럼프를 향해 날린 반격 트윗. 미국이 이란 항공기를 실수로 격추시켜 290명이 희생됐음을 상기시키는 내용이다.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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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란은 미국에게 “민간 항공기인 줄 알면서도 격추시켰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미국은 “이란의 F-14 전투기로 오인했다”고 해명했지만 290명의 무고한 인명이 희생된 것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은 거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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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민간항공기를 실수로 격추시켜 290명의 희생자를 낸 미국 이지스함.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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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미국을 비난하면서 국제 무대를 적극 활용했다. 국제사법재판소(ICJ)에 미국을 제소했고, 유엔에서도 미국을 규탄했다. 국제적으로 망신을 준 셈이다. 당시 부통령이었던 조지 H W 부시는 관련 유엔 회의에 출석해 미국의 입장을 해명해야 했다. 그럼에도 유엔은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깊은 괴로움을 표하며 유가족에게 심심한 위로의 뜻을 전한다”는 요지의 결의를 채택했다. 미국의 앙숙 러시아(당시 소비에트연방)와 중국이 적극적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 나왔다.

이란은 실속까지 단단히 챙겼다. ICJ 제소를 철회하는 대신 유가족에게 보상금으로 6180만달러(현재 환율로 718억원)을 지급했다. 당시 화폐가치가 지금보다 더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거액이다. 당시 국제사회에선 ”미국이 이란에게 지원금을 준 셈”이라고 비꼬는 말도 나왔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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