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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리뷰]심장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묻다…모노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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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묻는 1인극이다. 사진 우란문화재단·프로젝트그룹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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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명사]: ①혈액을 몸 전체로 보내는 근육기관. ②사람의 마음(감정).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심장이라는 문제적 장기에 관한 이야기다. 심장은 사람이 죽을 때까지 하루 10만번 뛰는 육체적 실존이면서 사람의 희로애락을 드러내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연극에선 심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살아온 세월을 걸러내고, 기록하고, 보관하는 육체의 블랙박스.”

프랑스 작가 마일리스 드 케랑갈의 동명 소설을 1인극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한국에선 초연이다. 불의의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게 된 열아홉살 청년 시몽 랭브르의 심장 이식 과정을 둘러싼 24시간의 기록을 그린다. 장기기증을 소재로 하지만 상투적인 드라마는 아니다. 내가 창작자였다면 이런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매력적인 방식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해 묻는다.

새벽 5시50분. 혹한의 겨울, 한 젊은 청년이 파도에 도전하는 시간이다. 파도타기를 즐기는 시몽은 친구들과 바닷가를 향하고, 보드 위에서 파도와 일체감을 느끼며 생을 온몸으로 감각한다. 하지만 귀갓길에 교통사고로 전면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치면서 코마 상태에 빠진다. 의학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은 그의 몸은 새로운 장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옮겨지게 된다. 극에선 이 청년의 몸과 기억, 그의 심장을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확장되고, 수축되고, 피를 실어 나르기 위해 매시간 애쓰고 다급해하는 심장과도 같은 생의 순간들”이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생각해보게 하는 서늘한 연극이다. 심장은 언어와 감정의 사이에 있는 그 무엇이다. 시몽의 몸은 의학적으로 선고된 죽음과는 별개로 여전히 박동한다. 하지만 엑스레이 영상을 통해 보여지는 육체는 죽음을 드러낸다. 극에선 인정할 수 없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죽음의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의 역할과 생각을 깊이 있게 담아낸다. 심전도기에 표시되는 그래프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삶과 죽음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모노극의 배우 손상규, 윤나무가 젊은 청년의 심장 주변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때로는 격정적으로, 때로는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안광을 발하며 각 인물들로 변신하는 배우의 연기를 숨죽이고 보게 된다. 단 한 사람을 통해 듣는 이야기라 더 온전하게 삶의 문제에 집중하게 된다.

연극 프로그램북에 배우와 제작진은 저마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을 적었다. 무대의 여운을 연극 바깥으로 잇는다. “발견하는 순간” “목표점에 도달했을 때” “뜨거운 물로 샤워할 때” “집에서 빨래 냄새가 날 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새근새근 자고 있는 내 가족의 얼굴을 빤히 바라볼 때” “동료들과 정성스럽게 빚은 공연을 가지고 관객을 만났을 때” “꿈꿀 때”. 우란문화재단 12월13~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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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의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게 된 열아홉살 청년 시몽 랭브르의 심장 이식 과정을 둘러싼 24시간의 기록을 그린다. 사진 우란문화재단·프로젝트그룹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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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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