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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우주오페라 판타지 대서사시 ‘덴마’…마침내, 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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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덴마’ 완결하는 양영순 작가】

기뻐하라, 그의 기나긴 떡밥이 회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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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끝이 보인다. 잦은 지각 마감과 1년 연재 중단에 불평하면서도 독자들이 한마음으로 두 손 모아 기도한 것은 작품의 완결을 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연재 기간만 10년을 꽉 채워 1400여회 만에 거대하고 길었던 스페이스 오페라 판타지 웹툰 <덴마>의 막이 곧 내린다. “믓시엘!”(<덴마>에 등장하는 태모신교의 용어로, 기독교 성서의 ‘아멘’과 같은 뜻)

양영순 작가는 연재 중단 작품이 적지 않다. <철견무적> <라미레코드> <플루타크 영웅전> 등의 연재 중단은 그의 ‘악명’을 드높였다. 그렇기에 <덴마>의 거대하고도 흡인력 높은 스토리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 열혈팬, ‘덴경대’들은 양 작가가 이 작품을 무사히 완결하기만을 간절히 소망했다(덴경대는 ‘덴마’와 작품 속 최강의 경호대인 ‘백경대’를 합친 말).

웹툰의 세계에서 <덴마>의 위치는 특별하다. 곽백수의 <가우스 전자>, 조석의 <마음의 소리>, 김양수의 <생활의 참견>, 신태훈·나승훈의 <놓지 마 정신줄> 등 네이버웹툰에서 1000회를 넘긴 네 작품 모두 매회가 독립적인 옴니버스 작품이었다. 이에 반해 <덴마>는 첫 에피소드부터 핵심적인 플롯과 설정들이 암시적으로 등장하는 ‘완결적인 판타지 드라마 형식’을 취하고 있다. 등장인물이 수백명에 이르는 거대한 스케일의 세계관, 매력적인 여러 주인공, 가족과 연인 간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 등은 <덴마>를 수차례에서 수십차례까지 ‘정주행’하는 마니아를 낳았다. 비교할 만한 작품으로 나관중의 대하소설 <삼국지>나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원작인 조지 마틴의 판타지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 정도를 꼽을 수 있을까. 위근우 문화평론가의 말처럼 <덴마>는 “우주의 이야기인 동시에 또한 이야기의 우주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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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서울 용산구 네이버웹툰 작업실에서 만난 양 작가는 처음엔 <덴마>가 이렇게 길어질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다고 했다. “애초엔 3~4년 정도면 마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처음부터 이야기를 철저히 설정했으면 연재 기간이 짧았겠죠. 하지만 이야기가 점점 확산해 어디로 갈지 저도 모를 정도로 흘러가는 거예요.” 이렇게 길게 연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플랫폼이 뒷받침된 덕분이기도 하단다. “예전 스포츠 신문 같은 연재처에선 독자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 연재를 그만두게 했어요. 하지만 네이버웹툰 김준구 대표는 처음부터 작가가 끝낼 때까지 연재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죠.”

애초에 양 작가는 소년만화 스타일로 작품을 구상했다. 주인공이 모험을 거듭하며 성장하는 서사. 하지만 한번 생명력을 얻은 이야기와 등장인물들은 스스로 진화하며 양 작가의 구상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이델, 고산, 지로, 롯, 가야 등 새로운 스타 주인공이 속속 탄생하는 통에 주인공 덴마의 분량은 점점 줄었고 독자들은 오히려 덴마가 등장하면 야유할 정도가 됐다. 연재 시작 전엔 <덴마>의 마지막 장면을 ‘다이크’ 에피소드의 결말에 나오는 다이크와 이델의 결투 장면으로 할 생각이었으나, 처리해야 할 이야기가 많아져 에필로그를 덧붙이게 됐다. “이두호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너희들 만화나 영화를 보다 보면 갑자기 죽는 캐릭터가 있는데, 왜 그러는 줄 아냐? 작가 말을 안 들어서 그래.’ 그 말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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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콴의 냉장고’와 ‘더 나이트’ 에피소드의 핵심 인물 ‘약쟁이’ 지로는 애초 주변 인물로 설정됐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주연으로 부상했다. “이 친구가 가만 보니까 제 모습 같은 거예요. 마약에서 벗어나겠다고 호언장담을 하고는 다시 약을 하는 모습이 마치 항상 마감을 못 지키는 제 모습 같더라고요. 이 친구를 꼭 마약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저는 정시 마감의 아이콘이 되겠다고 다짐한 거죠. 실제로 그렇게 되지는 못했지만요. 하하하.”

이런 그의 말들 속엔 ‘세계관 마스터’ 양 작가의 창작론이 녹아 있다. 즉, ‘일단 시작하라’. “저한테 ‘세계관을 어떻게 짜냐’는 질문을 하는 분이 많아요. 여기에 저는 ‘세계관의 방향만 있으면 일단 사소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게 좋다’고 답합니다. 세계관을 완벽하게 짠 뒤 시작하겠다고 하면 취재와 공부가 한도 끝도 없어서 시작조차 못 하게 될 거예요.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면 이야기 속에서 다음 이야기의 실마리가 잡히고 이야기의 형태가 만들어져요. 창작이란 자기가 생각하는 수준의 70~80% 정도의 결과물을 일단 내놓고 욕먹고 나아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재기간 10년…‘정주행’의 기록

등장인물만 수백명 ‘거대 세계관’

흡인력 높은 스토리 ‘열혈팬’ 양성

“주인공들, 모험 거듭하며 생명력

점차 확산하며 내 손에서 벗어나”


수많은 떡밥들, 사실 툭 던져둔 것

“창작이란 욕먹다 나아지는 과정”

잦은 지각·휴재…캐릭터 투영하고

논문급 ‘배댓’도 쏠쏠한 재미 더해


“웹툰 작가로 살아남기? 책에 해답”

끊임없는 독서, 다양한 시선 담아

‘가이린’ 등 진취적 여성상이 대표적

“31일 최종화…내년 봄에 새 작품

어서 조석보다 유명해져야죠. 하하”


그는 툭툭 던졌다가 몇년 뒤 슬쩍 수거해 전율을 안겼던 수많은 ‘떡밥’도 수거 계획을 다 짜고 던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도 해 놀라움을 안겼다. “떡밥은 이야기를 단단하게 보이는 ‘척’할 수 있게 해줘서 자주 사용해요. 언젠간 수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일단 던져두면, 나중에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앞뒤가 맞는 부분이 생기더라고요. 미리 다 계산해놓으면 너무 복잡해져서 진행이 안 됐을 거예요. 근데 이거 독자들한텐 약간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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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를 볼 때 댓글까지 보지 않고선 작품을 온전히 봤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댓글 읽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수십번은 정주행한 듯 보이는 독자들이 댓글에서 해설자로 등장해 복잡한 스토리를 정리해주고 앞으로 줄거리를 예상하고 온갖 기발한 ‘드립’을 치기 때문이다. “<덴마>의 베스트 댓글이 되려면 전문가 뺨치는 논문 수준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말이 과장만은 아닌 셈이다. 양 작가도 스토리를 짤 때 댓글을 참조하기도 하고, 실제로 독자의 댓글을 인용해 대사로 쓰기도 했다. “제가 ‘작가의 말’도 거의 안 남겨서 불통 작가라는 소리를 듣거든요. 이렇게 하면 팬들이 좋아해주시지 않을까 했어요.”

오랜 연재 기간만큼 사회의 변화도 작가와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인 것이 페미니즘. 마감 때문에 독서 시간을 따로 내기 힘든 양 작가는 작업 중에 오디오북을 듣는데, 최근 페미니즘 관련 서적이 많이 나오다 보니 자연스레 접하게 됐다고 했다. 주변에 ‘민폐’만 끼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상황을 바꿔내는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고, 이들이 작중 3대 세력의 수장이 되는 것 모두 이런 영향이다. 특히 강한 힘을 가진 여성 경호원 ‘가야’가 갑자기 죽어버리자, 채색 담당인 페미니스트 작가 홍승희씨 등 주변 여성 지인의 항의가 많았다고. 이에 양 작가는 가이린과 테이라는 여주인공의 스토리를 수정하게 됐다고 한다. “중심 캐릭터가 각성하고 성장하도록 하기 위해 다른 캐릭터를 희생시키는 게 맞는지 고민하게 된 거죠. <덴마>를 연재하면서 캐릭터에 다양한 시선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이런 지점에 예민하고 격하게 반응하는 남성 팬들이 많기는 해요. 하지만 이건 인권의 문제니까. 세상이 변하고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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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작가는 독서를 “내가 작가로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한다. “웹툰 작가가 되고 싶은 분들도 많이 그리기보단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그림 실력은 점점 늘지만, 읽고 생각하는 건 어느 시기를 지나면 하기도 힘들고 잘 바뀌지도 않거든요.” 만화 작업을 하고 운동하고 자는 생활만 반복해도 마감에 허덕이는 삶이지만, 만화 그리는 것은 점점 좋아진다고 한다. “예전엔 어떻게 빨리 원고 끝내고 술 마시고 놀까 생각만 했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고 몸에 힘이 빠져서 그런지 만화 그리는 게 가장 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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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덴마>는 언제 끝나는 것일까. “오는 31일에 최종화를 올릴 생각입니다. 이제 10회 정도 남았습니다.” 하지만 슬퍼할 필요는 없다. 그는 이미 차기작인 판타지 <달마건>(가제)을 내년 봄에 시작하는 쪽으로 네이버웹툰과 협의 중이다. “제 딸아이가 친구들한테 아빠가 웹툰 작가라고 하니까, 친구들이 조석 작가 사인을 받아달라고 한 거예요. 제가 사인을 대신 받아서 나눠주는데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어서 대표작을 그려 조석 작가보다 더 유명해져야겠다’고요. 사실 잘나가는 동료 작가에 대한 질투가 제 힘이에요. 하하하.”

자, 덴경대들은 이제 다시 손을 모을 때가 됐다. <덴마>의 창조주여, 더 재미있는 작품으로 돌아와 이번에도 꼭 완결까지 해주시길. 믓시엘!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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