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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유민호의 도보여행자(Wayfarer)] [10] 뉴욕 5번가를 마주한 만국기 할배와 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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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금시초문 노래와 여배우가 히트곡 1위, 아카데미 수상자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한물간 꼰대라 느끼는 순간이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치유책이 있다. 뉴욕 5번가 이스트 58 거리 '글래스 애플'이 답이다. 집에서 가까운 애플 매장이다. 지적 자극과 함께, 세상 흐름을 알기 위해 가끔씩 간다. 인기 앱(App) 하나만 제대로 이해해도 충분하다. 애플 매장은 뉴욕 관광객 방문지 1위 명소다. 자유의 여신상, 엠파이어 빌딩은 20세기 때 얘기다. 1년에 518만명이 몰린다. 애플 마니아, 글로벌 관광객으로 북새통이다. 첨단 IT 전당인 동시에 지구촌 인간 전시회란 점도 방문 이유다. '다양성=혼란과 창조'라 했던가. 백인백색 민족·인종·국민을 통해 '영감(靈感)'을 불러모을 수 있는 곳이 5번가 매장이다.

만국기 노점상 '수염 할배'를 처음 만난 것은 2013년 가을이다. 애플 매장 도로 건너편 인도다. 뉴욕은 세계 최대 만국기 도시다. 성조기와 함께, 전 세계 국기가 맨해튼의 이미지 중 하나다. 멜팅 포트 공간답게, 국가 지역별 기념 이벤트가 도심 어딘가에서 '항상' 열린다. 기념품 가게, 이벤트에 맞춰 특정국 국기만 파는 '메뚜기 행상'이 공급자다. 수염 할배는 조금 다르다. 뉴욕에서 '단 하나뿐인, 오직 국기만 파는' 1평짜리 야외 공간이다. 개점은 동부 유럽에서 이민 온 직후인 30여년 전이다. 애플에 갈 때마다 만나지만,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인기 국기가 뭔지 궁금했다. "유엔기가 1위, 성조기가 뒤를 잇는다. 축구 때문이겠지만, 남미 카리브해 국기도 인기다." 한·중·일 3국은 어떨까? "오성기 수요는 거의 없다. 중국인은 성조기를 좋아한다. 한국은 가끔, 일본은 거의 없다. 북한 국기를 찾는 손님도 있다." 국기를 대하는 손님들의 자세를 보면 그 나라 상황이 보인다고, 할배는 강조한다. 최근 뜨는 국기가 뭔지 물어봤다. "국기는 아니고, LGBTQ(성소수자) 상징 무지개 깃발이 인기다." 눈을 돌리자 애플 상징 '한입 벤 사과'가 무지갯빛 조명으로 번쩍거린다. 뉴욕 5번가 도로를 마주한, 만국기 할배와 글로벌 IT 최첨단 애플 매장. 무지개로 엮어진 아날로그·디지털의 공존 현장이다.

[유민호 퍼시픽21 아시아담당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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