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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김형규 기자의 한국 술도가]‘촌놈’ 노무현이 사랑했던 그 막걸리··· 4대째 100년 이어온 충북 단양 대강양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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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 대강양조장에서 만드는 막걸리들. 왼쪽부터 아로니아 막걸리, 검은콩 막걸리, 소백산 생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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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기분 좋다!” 대통령 퇴임식을 마치고 고향에 내려간 날,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시원하게 내뱉은 그 장면에 공감한 것은 분명 그의 지지자들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거운 짐 내려놓고 비로소 마음 쉴 곳에 도착한 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감탄사를 터뜨리지 않을까. 그럴 때 마시는 술은 얼마나 달고 시원할까. 그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주민들과 나눠 마신 술은 충북 단양 대강양조장에서 만든 대강막걸리다.

자타공인 ‘촌놈’인 노 전 대통령은 막걸리를 좋아했다. 그가 대강막걸리를 처음 맛본 건 2005년 봄이다. 농촌체험마을로 전국에 이름을 알린 단양군 가곡면 한드미마을을 방문했다가 식사자리에서 대강막걸리를 거푸 여섯 잔이나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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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양조장은 항아리에서 술을 발효·숙성시킨다. 항아리는 모두 80~90년 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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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구 대강양조장 대표(55)는 “이장이 찾아와서 ‘옆마을에 높은 분이 오시니 술을 잘 만들어달라’ 해서 군수나 도지사가 오는 줄 알았는데 저녁 뉴스에 대통령이 나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날 노 전 대통령은 떡메를 치고 팥씨를 뿌리고 두부를 만드는 등 여러 가지 체험을 했다. 고구마 순을 심으면서는 “어릴 때 어머니가 고구마 순을 심어 내다팔아 학비를 댔기 때문에 고구마 순만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은퇴하면 손주들이 찾아올 수 있는 농촌 시골에 가서 터 잡고 살면 어떨까 한다”며 처음으로 퇴임 후 계획을 비추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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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단양 한드미마을을 방문해 파종기로 씨 뿌리는 체험을 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로 돌아간 노 전 대통령은 대강막걸리를 정기적으로 주문해 마셨다. 경제5단체장, 3부요인, 헌법기관장 등 중요한 손님을 모시는 청와대 식사자리마다 대강막걸리가 올랐다. 미국프로풋볼리그(NFL) MVP로 금의환향한 하인스 워드가 청와대를 찾았을 때도 건배주는 대강막걸리였다. 퇴임 후에도 그 맛을 잊지 못했던 것 같다. 봉하마을 사저로도 두 차례에 걸쳐 대강막걸리가 30병씩 담긴 박스가 배달된 기록이 남아 있다.

조재구 대표는 자기 술을 사랑해준 대통령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퇴임식 날 봉하마을에 막걸리 2000병을 보냈다고 한다. 얼마 후 답례 선물로 인삼이 돌아왔다. 조 대표는 그걸로 술을 담갔다. 차마 먹을 수 없어 술을 담근 것인데,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간 뒤에는 그 술도 마시지 못하고 양조장 사무실에 고이 보관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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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구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선물받은 인삼으로 담근 인삼주. 노 전 대통령 내외의 이름이 적힌 카드가 함께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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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히 말해 대강막걸리는 맛이 특별히 뛰어난 술은 아니다. 전국 어디를 가도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지역 막걸리에 가깝다. 쌀로만 만드는 게 아니라 밀을 섞었으니 결코 고급이라 할 수 없고, 아스파탐 같은 합성감미료도 물론 들어간다.

노 전 대통령 생전엔 요즘처럼 좋은 재료만 골라 넣는 무첨가 수제막걸리가 유행하지도 않았다. 설령 그런 술이 있었다 한들 그가 좋아했을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특색 없어보이는 그 밋밋한 막걸리야말로 꾸밈없이 소탈하고 권위주의를 혐오했던 인간 노무현에게 가장 어울리는 술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음미하면 범상했던 술맛도 조금은 다르게 느껴진다. 술도 음식이고, 음식이란 건 결국 그 안에 담긴 추억과 사연으로 맛이 배가되는 것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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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양조장에 딸린 갤러리에는 오래된 기물과 자료가 그득해 막걸리박물관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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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반에 사용된 1000㎖ 용량의 유리 막걸리병. 유리병은 페트병이 등장하면서 금세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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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양조장의 시초는 1919년 충주에서 고(故) 김영태씨가 문을 연 수안보양조장이다. 외손자 조국환씨(83)가 교직을 나와 1969년 가업을 이었고, 1979년 단양으로 옮기며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1999년부터는 아들인 조재구 대표가 대기업을 그만두고 4대째 100년 가업을 잇고 있다. 아직도 80~90년 된 옹기 항아리 50여개에 술을 담근다. 대강(大崗)이란 이름은 지명(대강면)에서 왔다. 큰 언덕, 즉 단양을 둘러싼 부드러운 소백산 능선을 뜻한다.

대강양조장 한쪽에 딸린 갤러리는 ‘막걸리박물관’이나 다름없다. 쳇다리(술 거르는 체를 올려놓는 도구), 도봉(술항아리 안의 술을 휘저어 섞는 기구), 함퇴미(술밥을 술독에 넣을 때 사용하는 도구) 등 골동품 가게에서나 볼 법한 오래된 양조장 기물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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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쇼와) 6년이라는 글씨가 선명한 술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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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에 유통된 포스터. 막걸리를 ‘건강식품’이라고 표현한 게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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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쇼·쇼와 연호가 새겨진 사기 술병이나 1980년대 초반에 잠깐 쓰이다 페트병 등장과 함께 사라진 갈색 유리 막걸리병 등은 민속문화재라 부를 만하다. 막걸리를 ‘영양음료’라고 표현하는 1970년대 밀주금지 캠페인 영상도 흥미롭다.

갤러리 옆 체험·교육관에선 술 빚기, 술 짜기, 시음, 양조장 견학 등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대강양조장은 주력 제품인 소백산 생막걸리를 비롯해 특허받은 검은콩 막걸리, 직접 농사지어 빚는 아로니아 막걸리, 강냉이 막걸리 등을 판매한다. 가격은 750㎖ 기준 1200~2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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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제작돼 영화관에서 상영된 밀주방지 홍보 영상. 대강양조장 갤러리에 가면 디지털 복원한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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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술을 거를 때 쓰는 도구인 ‘용수’로 만든 전등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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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강양조장의 체험관과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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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술을 빚는 양조장이 2000곳이 넘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전통주인 막걸리와 청주·소주, 그리고 와인에 맥주까지 우리땅에서 난 신선한 재료로 특색 있는 술을 만드는 양조장들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이 전국 방방곡곡 흩어져 있는 매력적인 양조장을 직접 찾아가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맛좋은 술은 물론 그 술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람들, 술과 어울리는 지역 특산음식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맛난 술을 나누기 위한 제보와 조언도 언제나 환영합니다.


글·사진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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