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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혐한의 계보’ 펴낸 노윤선 박사 “일본이 외치는 ‘혐한’…감정적 반응 아닌 논리적 대응으로 맞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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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극우의 일탈 넘어선 상황

과거사 해결 안되면 계속될 것”

경향신문

<혐한의 계보> 저자 노윤선씨가 지난 6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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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혹은 한국인을 싫어하는 것, ‘혐한(嫌韓)’의 정의다. 감정의 차원에 머물렀던 혐한은 혐오 발언과 행동으로까지 확산하며 두 나라의 골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혐한의 계보>는 일본에서 한국을 미워하는 마음이 어디에서 시작해 확산됐는지 그 계보를 추적한다. 지난 6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저자 노윤선 고려대 교양교육원 강사는 국내에선 처음 ‘혐한’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책의 토대가 된 <일본 현대문화 속의 혐한 연구> 논문을 인쇄소에서 찍던 지난 7월4일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가 시작됐다. 책이 전하는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혐한’ 용어가 담론으로 구축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노씨 분석에 따르면 일본 일간지에 혐한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2년 3월4일자 마이니치신문 기사였다. “한·일 관계는 여전히 과거 문제 등을 둘러싸고 알력이 끊이지 않으며, 일본에서는 일부 혐한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 한국인이 과거에 대한 집착이 지나치게 크다고 생각하기 전에 한국인의 원한에 대한 배경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 당시 맥락은 무작정 한국을 비판하는 내용이 아니라 오히려 자국민의 반성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책에 따르면 일본 내 다른 종족에 대한 천시는 ‘피차별 부락민’의 형태로 1000년 전부터 존재해왔다. 오늘날 무엇이 한국을 문제적으로 만들었을까. “1991년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의 본격적인 증언이 나오면서 언론에 혐한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해요. 결국 혐한의 핵심에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있습니다.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혐한은 계속될 것이라는 의미기도 하죠.”

노씨는 2000년대 이후 혐한의 본격적 확산을 ‘불안형 내셔널리즘’으로 규정한다. 경제 침체로 내부 불만이 쌓여가다 2002년 한·일월드컵과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혐한의 변곡점’이 됐다. 그 과정에서 일본의 국내 혹은 국제 정치에서 혐한이 도구로 활용되고, 미디어 그리고 문화와도 결합하며 혐한은 급격히 확산한다. “바로 옆에 있고, 숫자도 많은 한국(인)은 혐오를 쏟기 가장 쉬운 타자”였기 때문이다.

책에선 한국에도 알려진 <반딧불이의 무덤> <요코 이야기> 등 베스트셀러를 세밀하게 분석한다. 역사와 정치사회를 넘어 문화 텍스트를 통해 혐오의 작동방식을 입체적으로 살펴보는 시도다. 이들 책은 태평양전쟁 당시 개인의 고통을 강조하면서 가해 책임을 희석시킨다는 비판을 받는다. “과거 정부 탓을 하면서 일반 시민들은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식 평화주의’입니다. 잘못을 나와 분리하면 비판 의식이 약해질 수밖에 없죠.” 아베 신조 총리의 “우리들의 아이와 손자, 그 뒤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죄를 계속할 숙명을 지워선 안된다”는 역사수정주의적 시각과도 일맥상통한다.

책의 마지막은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과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고조되는 혐한을 병치한다. 노씨가 인용한 브라이언 레빈의 ‘증오의 피라미드’ 모형(선입견-편견-차별-폭력-제노사이드)에 따르면, 이미 혐한은 4단계에 다다랐다. 미디어의 ‘혐한 장사’와 거리로 나선 넷우익, 직접적인 공격 행위를 일부 극우 집단의 일탈로만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다. “혐한을 들여다볼수록 막연한 반감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이제 감정적 반응이 아닌 논리적 대응으로 맞서야 합니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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