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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9 (월)

실낱 같은 희망마저 잃은 文…김정은 초청 물거품에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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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조선중앙통신 통해 '文대통령 친서' 비난…김정은 초청 '공개 거절'

"판문점·평양·백두산 약속 하나도…형식 뿐인 수뇌상봉 하지 않겠다"

靑 "쉽지 않은 기회 매우 아쉬워…남북 정상 만남 필요 입장은 불변"

전문가 "단순한 불참 통보 아냐…北, '새로운 길' 가기로 결심 굳힌듯"

뉴시스

【부산=뉴시스】박영태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부산에서 열린 현장국무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19.11.12. since1999@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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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태규 기자 = 안방에서 개최하는 국제 외교 무대를 통해 식어버린 남북 관계를 되돌리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에 제동이 걸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부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초청해 분위기 반전을 모색하겠다는 실낱 같은 희망마저 사라지게 됐다.

지난해 연말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추진했다가 무산된 데 이어 관계 회복을 위한 시도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1일 '모든 일에는 때와 장소가 있는 법'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이번 부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초청하는 친서를 보내왔지만 현재의 남북관계를 고려할 때 참석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판문점과 평양, 백두산에서 한 약속이 하나도 실현된 것이 없는 지금의 시점에 형식뿐인 북남 수뇌상봉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더욱이 북남 관계의 현 위기가 어디에서 왔는가를 똑바로 알고 통탄해도 늦은 때에 그만큼 미국에 기대다가 낭패를 본 것도 모자라 이제는 주소와 번지도 틀린 다자협력의 마당에서 북남 관계를 논의하자고 하니 의아할 따름이다"라고 꼬집었다.

문 대통령에게는 남북 관계가 경색된 근본적인 원인과 그로 인한 현재의 상황 인식이 부족하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김 위원장의 부산 방문을 원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신은 "흐려질 대로 흐려진 남조선의 공기", "이 순간조차 통일부 장관이라는 사람은 북남 관계를 들고 미국에 구걸행각에 올라" 등 남측을 향한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특히 "모처럼 찾아왔던 화해와 협력의 훈풍을 흔적도 없이 날려보내고 있는데도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있는 남조선 당국이 종이 한 장의 초청으로 조성된 험악한 상태를 손바닥 뒤집듯이 가볍게 바꿀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보다 더한 오산은 없을 것이라는 게 우리의 생각"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오랫동안 공을 기울여왔던 김 위원장의 초청 구상이 무산되자 짙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서면 브리핑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이 문 대통령과 함께 평화번영을 위해 아세안 10개국 정상과 자리를 같이하는 쉽지 않은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게 된 데 대해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뉴시스

【판문점=뉴시스】전신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판문점 인근에서 공동 식수를 마친 후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2018.04.27. photo1006@newsis.com


그러면서도 “정부는 남북 정상이 모든 가능한 계기에 자주 만나서 남북 사이의 협력과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해 국제사회의 이해와 지지를 받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이러한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친서에 김 위원장이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한다면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남북간 공동노력이 국제사회의 지지 확산으로 이어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내용을 담았다고 고 대변인은 설명했다.

통신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지난 5일 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내 부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공식 초청했다. 당시는 문 대통령이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3 정상회의 참석을 마치고 태국에서 귀국했던 시점이다.

친서를 전달한 이후에도 김 위원장의 참석이 어려울 경우 특사단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몇 차례 보내왔다는 게 북한의 주장이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모친상 때 김 위원장 명의의 조의문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메시지 교환이 이뤄졌다. 조의문과 그에 대한 답신을 보내는 계기에 접촉했다는 것이다.

당시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이 판문점에서 김 위원장의 조의문을 접수해 부산의 모친 빈소를 지키고 있던 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노영민 비서실장이 지난 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조만간 조의문에 대한 답신을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던 점과 북한의 주장을 종합하면 지난 5일 모친상 조의문에 대한 답신을 보내면서 김 위원장의 초청 친서를 함께 보낸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초청하자는 아이디어는 1년 전 싱가포르 한·아세안 정상회의 당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처음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아세안 정상들 사이에서 조성된 공감대를 토대로 초청 계획을 구체화 시켰다.

당시 문 대통령은 “한반도 정세가 평화를 향해 더 나아가는 분위기 속에서 적극 검토하겠다"며 "이를 위해 아세안 국가들과 사전에 긴밀히 협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위원장의 초청 아이디어가 처음 나왔던 당시는 9·19 평양 공동선언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 ‘조건부 대북제재 완화론’을 펼치다가 미국의 강한 반대를 경험했던 시기였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가운데 하나인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순방 때 공론화를 시도했다가 국제사회의 냉랭한 인식을 확인했던 직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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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뉴시스】전신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집 앞에서 판문점 선언을 하고 있다. 2018.04.27. photo1006@newsis.com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한 문 대통령의 구상에 제동이 걸리자 남북 간 대화 동력을 꾸준히 유지하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김 위원장의 초청 구상을 발전시켜 왔다. 아세안 국가 정상들의 공통된 인식을 한반도 평화정착 과정에서의 레버리지로 삼겠다는 뜻이 깔려 있었다. 이는 곧 한반도 평화를 동북아 평화번영으로 넓혀나가겠다는 '신 남방정책'과도 맞아 떨어졌다.

하지만 모든 구상의 대전제로 여겼던 북미 비핵화 협상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자 김 위원장의 초청 성사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조금씩 확산됐다. 지난 2월 ‘하노이 노딜’ 이후로 북미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남북 관계마저 힘을 받지 못한 탓이었다.

남북 관계 발전을 통해 북미 관계를 견인한다는 평소 문 대통령의 '두 바퀴 평화론'과는 정반대로 북미 비핵화 대화의 교착 상황이 남북 관계 발전을 가로막는 역설적인 상황이 됐다.

최근 북미 간에 3차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발언들을 공개적으로 주고받으면서 멈췄던 비핵화 협상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아직은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북한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지 않으면 3차 정상회담을 할 수 없다며 선결 조건을 강하게 내세우면서 접점을 찾지 못하는 양상이다.

김 위원장이 최근 백두산에 올라 중대 결심을 굳혔다는 대목과 올해 신년사에 밝힌 '새로운 길'을 종합해 볼 때 더는 미국과 비핵화 협상에 연연하지 않고 중국, 러시아 등과의 국제사회 틀 속에서 경제 발전을 도모할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또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 선언을 통해 두 차례 합의하고도 금강산 관광 재개를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문 대통령에게 실망한 것이 냉랭해진 남북 관계의 근본적 배경이 됐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시선이 문 대통령의 친서를 먼저 공개한 북한의 이번 보도에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겉으로는 정중하고 수위를 조절한 듯한 거절로 보이지만 단순한 불참 통보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친서 등 다른 방법도 많은데 굳이 조선중앙통신으로 때린 것은 북한이 보기에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우리에게 가진 불만과 실망감을 담아 이야기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통일부 장관, 보수세력, 신남방 정책 등 최근 남측을 겨냥한 북한의 몇몇 발언과 행동으로 봤을 때 북한이 이제는 '새로운 길'을 가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 같다"고 우려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kyustar@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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