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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와인 종주국 프랑스, '술 안마시는 달' 캠페인 슬그머니 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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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1월 한달 집중 금주 캠페인 계획 사실상 폐기

시민단체 "주류업계 로비에 굴복해 밀실 결정" 비판

연합뉴스

프랑스 파리의 한 바에서 21일(현지시간) 보졸레누보 와인 시음회가 열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 정부가 내년 1월에 대대적으로 진행하려던 '술 안 마시는 달' 캠페인을 사실상 철회했다.

이를 두고 포도주(와인) 생산업자들의 강력한 로비에 프랑스 정부가 굴복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아녜스 뷔쟁 프랑스 보건부장관은 21일(현지시간) 프랑스앵포 라디오에 출연해 내년 1월 계획했던 '술 안 마시는 달' 캠페인을 현재 논의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뷔쟁 장관은 "내년 2월 보건사회관계장관 회의 이후로 (술 안 마시는 달 캠페인) 관련 결정을 미루기로 했다"면서 1월에 하려던 계획은 폐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금주 캠페인 진행방식에 대해서도 "반드시 그런 형식으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부정적인 뜻을 드러냈다.

이는 알코올 소비 줄이기를 주요 과제로 추진해온 뷔쟁 장관의 기존 입장에서 상당히 후퇴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샹파뉴지방 와인조합의 막심 투바르 회장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최근 만났을 때 그가 1월 '술 안 마시는 달' 캠페인은 없을 거라고 말했다"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보건장관과 주류업계에서 내년 1월 집중 금주 캠페인의 '사실상 폐기' 설이 나오자 건강 관련 시민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알코올중독예방협회의 활동가 나탈리 라투르는 "이미 금주 캠페인에 관련 예산이 책정되고 인력이 투입됐는데 이를 폐기하는 '밀실 결정'이 이뤄졌다"면서 와인농가의 강력한 로비에 정부가 굴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랑스는 세계 최대 와인 생산국답게 술 소비량도 선진국 중에서 높은 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OECD 36개 회원국 중에 프랑스의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은 리투아니아 등에 이어 3위 수준이다. 프랑스에서 알코올 관련 문제로 사망하는 사람이 매년 4만1천명에 이른다는 집계도 있다.

와인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프랑스에서는 포도주는 술이 아닌 음식의 일부라는 인식이 강하다. 프랑스약물중독감시협회(OFDT)에 따르면 프랑스 주류 소비의 58%는 포도주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와인을 식사와 함께 즐겨온 프랑스인들 사이에서도 와인 역시 다른 술처럼 건강에 해로우므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강해지면서 논쟁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정부 부처 간에도 견해 차가 큰 편이다.

디디에 기욤 프랑스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 1월 방송에 출연해 "인생의 아름다움을 알려면 포도주 한 잔쯤 즐길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면서 청년층의 폭음 문제는 와인이 아닌 위스키와 보드카 등 독주 탓이라고 주장했다가 비판에 직면한 적이 있다.

마크롱 대통령도 과거 와인을 알코올중독 등 심각한 음주와 상관없는 술이라는 취지로 발언한 적이 있다.

그는 작년 2월 파리농업포럼 방문 시 주류광고 규제 강화를 요구하는 이들에게 "나도 매일 점심 저녁에 한두잔씩 와인을 마신다. 프랑스인들에게 휴식을 좀 주자"면서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이는 앞서 뷔쟁 보건장관이 방송에 출연해 "과학적으로 와인은 다른 술과 같은 알코올이며, 이제는 알코올이 건강에 나쁘다고 얘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대통령이 정면으로 반박한 것으로 해석됐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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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한 행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마이크 앞에서 발언하는 것을 아녜스 뷔쟁 보건장관(왼쪽)이 듣고 있다.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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