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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90일 권리 가진 북한 선원 6일 만에 강제 북송 정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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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당국, 탈북 어선 비밀 나포작전

국제 인권유린에 탈북자 권리 박탈

문 대통령에 허위 보고는 없었나

“국방장관의 SI 소스 공개는 심각”



탈북 선원 북한 추방 불법 논란



중앙일보

북한으로 추방된 탈북 주민 2명이 타고 온 오징어 잡이 어선이 지난 8일 동해상에서 북한에 인계되고 있다. 탈북 주민은 전날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강제 북송됐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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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한 북한 선원 2명을 강제 추방한 거의 모든 과정이 현행법 위반이다. 탈북 선원을 우리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에서부터 법에도 없는 강제 추방, 탈북자의 권리 박탈, 국제인권법 위반, 무죄 추정 원칙 위배, 사법권 포기, 특수비밀 소스 공개, 군 지휘계통 문란 등 어느 하나 걸리지 않는 게 없다. 그것도 모자라 국회와 언론에 허위 증언과 발표가 난무하고 우왕좌왕 태도를 보였다. 일반 국민이 보기엔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 법이 있기나 한 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탈북민들은 ‘나는 안전한가’ 우려와 함께 공포에 떨고 있다. 해외에선 한국의 인권 무시에 대한 비판이 높다.

사건 개요는 이렇다. 강제 북송된 북한 선원 2명이 오징어잡이 어선을 몰고 북한으로부터 도주한 뒤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왔다. 북한 통신감청으로 이를 추적하던 군 당국은 해군 특수부대를 투입해 지난 2일 배를 나포했다. 정부는 며칠 간의 짧은 합동신문을 거친 뒤 지난 7일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강제 추방했다. 이들이 판문점으로 이송될 땐 입에 재갈을 물리고 안대를 씌워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르게 했다. 판문점에서 안대를 벗기자 바로 코앞에 북한군이 서 있었고, 두 사람은 허탈감에 털썩 주저앉았다고 한다. 탈북 선원들은 귀순 의사를 밝혔는데도 강제 북송된 것이다. 그래서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비밀 나포 작전과 기밀 공개

국회와 국방부 등에 따르면 군 당국은 탈북 오징어 배 나포과정에서 특수정보(SI: Special Intelligence)를 활용해 내막을 파악했다. 탈북 오징어 배가 NLL을 넘어오자 해군은 처음엔 해상에서 북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퇴거 조치를 시도했다. 그런데도 어선이 돌아가지 않고 도망 다니자 해군은 특수부대(UDT)를 비밀리에 투입했다고 군 관계자가 전했다. 동해 1함대사령부에 파견된 UDT를 급파해 전격적으로 나포한 것이다. 오징어 배가 나포된 장소는 NLL 남쪽 20마일(약 37㎞) 해상이었다. 군 당국은 이런 과정을 공개하지 않았다. 하마터면 세상에 묻힐 뻔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첩보 소스가 SI라고 공개한 것은 심각하다. 정 장관은 지난 7일 국회 국방위에서 “북한 눈치를 본 것이냐. 북한 의사를 타진한 것이냐”라는 박맹우(자유한국당) 의원 질문에 “저희가 SI정보로 확인했다”고 답했다. SI는 통신감청·정찰위성·인간정보 등으로 수집한 1급에 가까운 2급 군사기밀로 특수 관리한다. 통신감청이 공개되면 북한은 곧바로 코드를 바꿔 첩보 수집이 장기간 제한된다. 보훈처장을 지낸 박승춘 국방정보본부장이 SI를 언론에 공개했다가 옷을 벗고 전역한 사례도 있다. 정보본부장을 지낸 모 예비역 중장은 “SI는 출처를 공개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했다.

불법적인 북한 추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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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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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선원을 북한으로 추방한 것은 현행법 위반이다. 헌법 3조에 따르면 북한 주민은 우리 국민이다. 이들이 한국에 오면 당연히 국민이 된다. 그런데도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지난 1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우리 국민이 위협에 노출될 개연성을 차단하기 위해 추방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두 선원이 16명의 동료 선원을 살해한 흉악범이라는 게 이유다.

그러나 ‘북한이탈주민법’ 어디에도 ‘추방’이라는 용어는 없다. 탈북 선원들을 국민으로 보지 않고 추방한 것은 대법원 판례(1996년)에도 위배된다. 당시 대법원은 탈북민을 강제 퇴거하려던 출입국관리국을 대상으로 제기된 소송에서 헌법 3조를 들어 북한 주민도 한국 국민이라고 확인했다.

다만 이 법은 ‘국제형사범죄자나 살인 등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자에 대해선 보호대상자로 결정하지 않을 수는 있다’(9조)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탈북자가 보호대상자로 지정되지 않으면 당사자가 90일 이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32조) 있다. 최소한 90일의 여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조항을 무시하고 탈북한 지 6일 만에 추방했다. 또한 범죄 등으로 보호대상으로 지정되지 않으면 국내에서 사법절차를 거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에 대한 사법권을 사실상 북한에 넘긴 것이다.



국제법 위반

북한으로 강제 송환은 유엔 ‘고문방지협약’ 위반이다. 한국은 이 협약에 1995년 가입했다. 협약 3조는 ‘어떠한 당사국도 고문받을 위험이 있는 나라로 추방·송환·인도해선 아니 된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고문이 만연한 독재국가다. 미국 인권전문가인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는 지난 7일 VOA와 인터뷰에서 “(탈북 선원의) 범죄 중대성과 별개로 적절한 (한국) 사법 절차와 보호 조치가 실종된 사건”이라며 “홍콩에서 수개월째 벌어지고 이유(범죄자 중국 송환)와 똑같다”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유엔이 이번 인권유린사건을 조사할 계획이다. 유엔 인권 업무를 총괄하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지난 14일 “두 사람이 송환 뒤 고문과 처형을 당할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을 것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과거 한국이 중국에 탈북 주민을 북송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는데 이제 우리가 어기게 됐다”고 말했다. 인권 정부를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로선 최대 수치다.

안보실 직권남용

정부 스스로 법을 어긴 강제 북송은 보통 일이 아니다. 누구의 지시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분명히 가려야 한다. 탈북자 처리는 국정원과 통일부 업무인데 청와대가 나선 건 문제다.

지난 1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천정배(대안신당) 의원이 “이번 탈북 주민 북송 처분을 누가 했나”라고 묻자 김연철 장관은 “콘트롤 타워는 안보실”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천 의원은 “청와대 안보실장은 대통령 참모일 뿐이지 행정처분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지적했다.

천 의원이 지적한 대로 탈북 선원은 법에도 없는 북한으로의 강제 추방되면서 국민으로서 한국에서 재판받을 수 있는 권리와 90일 이내 이의 신청할 권리가 박탈됐다. 이런 사실을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면 직권남용이다. 반대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법규를 왜곡 보고해 판단을 흐리게 했으면 그것도 문제다. 또는 제대로 보고받은 문 대통령이 추방 건의를 승인이나 묵인했다면 더 큰 일이다. 어떤 경우든 그냥 넘길 사안은 아니다.

탈북 선원을 북으로 추방한 것은 북한 주민을 우리 국민이라고 정한 헌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중대한 사건이다. 정부는 무죄 추정 원칙조차 무시하고 이들을 사법절차 없이 살인범으로 지목해 위험한 북한에서 재판을 받게 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대대장이 추방 상황을 김유근 안보실 1차장에게 보고한 것은 군 지휘계통 문란 행위다. 이조차 언론에 포착되지 않았으면 탈북 선원은 쥐도 새도 모르게 북송됐을 것이다. 그래서 국민은 분노하고 불안해하고 있다. 국회와 정부는 이번 사건에 대해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이런 사태를 야기하고 한·미동맹까지 어렵게 만들고 있는 무능한 안보실도 전면 쇄신할 필요가 있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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