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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질문자 5명 대통령과 '구면'···무작위라더니 사연 듣고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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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19일 MBC에서 진행된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말했다. 패널 선정 전권을 위임받았다는 MBC는 “세대·지역·성별 등 인구비율을 반영해 정했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대담 직전 생방송 된 MBC 라디오에선 “잠시 후 8시부터 100분 동안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 나선다”며 패널 선정은 “무작위”(프로그램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라고 했다. 탁현민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이 “무작위로 뽑으면 전체 국민과의 대화에 부합하나. 나라면 (기획)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다수의 언론이 ‘사전 시나리오 없이 지역·성별·연령을 반영해 무작위로 선정된 패널’이란 표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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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에서 열린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에 참석해 패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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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론 117분간 진행된 대담에서 발언권을 얻은 질문자는 두쌍의 부부 포함 총 19명이었는데, 이 중 5명이 문 대통령과 만난 적 있는 사람들이었다. 26%꼴이니 ‘무작위’라고 보기엔 무색한 수치다.

질문권을 얻기 위해 손을 든 수많은 패널 중 “외국에서 오신 분 같은데…”(배철수)라며 선정된 무함마드 사킵 부부는 2017년 문 대통령이 서울 홍은동 자택을 떠나 청와대로 향하기 전 사진을 같이 찍었다고 말했다. 부인 김아름씨는 “(당시 문 대통령이) 큰아들과 신랑과 함께 사진을 찍어주셨다. 그래서 오늘 두 번째로 뵙게 돼 영광”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직접 사킵 부부에게 다가가 사진이 담긴 액자를 선물 받았다. 사킵은 “문재인 대통령, 우리 다문화 가정이 함께 있습니다. 힘내세요”라고 했고, 문 대통령은 활짝 웃었다.

잠시 후 문 대통령과 구면이라는 질문자는 또 나타났다. 한국가죽산업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다는 고성일씨는 질문 서두에 “안녕하십니까. 7월 2일에 뵙고 또 뵙습니다”라고 했다.

또 이날 문 대통령과의 인연을 밝히진 않았으나, ‘구면’인 질문자는 2명 더 있었다. 여섯 번째로 질문권을 얻은 록그룹 ‘더크로스’의 보컬 김혁건씨와 열한번째로 질문한 개성공단 입주 기업 사장 이희건씨다. 김혁건씨는 지난 9월 20일 대통령 직속 통일 자문기구인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19기 자문위원으로 위촉돼 같은 달 30일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에게 직접 위촉장을 받은 인연이 있다. 이희건씨는 2012년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서울 장충동에서 가진 개성공단 입주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만난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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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더크로스의 메인보컬이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19기 김혁건 위원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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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위'로 보기 어려운 패널은 또 있었다. ‘남북관계’라는 키워드가 등장한 뒤 “작년에 대통령께서 평양에 가실 때 제가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제가 만든 치킨집에서 치맥 파티를 하고 오시라’고 글을 올렸다”고 한 최원호씨다. 그는 평양 치킨집 1호점 사장으로 각종 방송에도 여러번 나왔었다.

최씨는 20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자신이 뽑히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대통령과 대화를 한다고 해서 MBC 홈페이지에 내가 피해본 내용을 중심으로 사연을 올렸더니, 이후에 MBC 측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피해 내용을 설명한 뒤에 1차 선정이 됐다고 문자 메시지가 왔다. 지난 18일 오후에는 ‘최종 선정됐으니 19일 오후 5시까지 MBC로 오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가 다시 왔다”고 전했다. 이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섭외됐는지 모르겠는데, 난 그냥 사연 올리고 오라고 해서 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한편 19명 발언자 중 2030 남성을 대변하는 인물은 한명도 없었다는 점도 특이점이다. 페미니스트·성소수자·탈북민·다문화 가정 등 다양한 인물상이 나왔는데, 정작 문 대통령의 핵심 이탈 지지층만 빠진 셈이다. 2030 남성 이탈 현상은 사회자 배철수씨의 질문으로 갈음됐고, 문 대통령은 “아마 20대들도 실망감을 표현한 것이지 외면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답했다.

이 같은 정황은 감안하면 패널 선정 자체가 ‘무작위’였다고 보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MBC 홈페이지에 신청한 1만6000명 중에서 MBC가 자체 판단에 따라 선정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MBC 관계자는 20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패널을 무작위로 선정하지 않았다. 신청을 받은 후 전화면접을 통해 사연과 고충 등을 설명을 들은 뒤 선정했다. 무작위로 선정했다는 표현은 잘못 나갔다”고 해명했다. ‘왜 그렇게 홍보가 됐느냐’는 질의엔 “프로그램 준비팀에선 그렇게 말한 적 없다”고 했다.

윤성민·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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