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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대리기사 근로자 인정 판결 의미…단체교섭 교두보 마련(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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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속관계 대리기사, 대등한 위치서 노무 제공조건 교섭해야"

특수고용직 근로자 인정 판결 잇달아…택배 기사도 근로자 인정

연합뉴스

대리운전
[연합뉴스TV 제공]



(부산·서울=연합뉴스) 차근호 이영재 기자 = "대리운전 기사들이 단체교섭을 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고, 노사가 대등한 입장에서 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대리운전 기사를 노동조합법상 노동 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근로자'로 인정하는 첫 하급심 판결이 나자 최병로 부산대리운전산업노조 위원장은 19일 이렇게 말했다.

노조는 이번 판결이 전국 대리운전 업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그동안 대리 기사는 택배기사, 보험 설계사 골프장 캐디 등과 함께 특수고용직) 종사자로 분류돼 근로자로서 노동관계법의 보호를 받기 어려웠다.

실제로 최 대표가 2012년 부산시에 노동조합 설립 신고증을 발급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시는 대리운전 기사를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며 설립 신고증 교부를 거부하기도 했다.

결국 행정소송까지 제기했지만, 당시 패소했다.

최 대표는 "그때는 노동 유연화에 대한 것이 정부의 이슈여서 노동자의 권리가 많이 외면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노조도 그동안 많은 준비를 하면서 부산시도 지난해 12월 이들에게 노조 신고증을 결국 교부했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민사 1부도 처음으로 대리기사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볼 수 있다며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대리운전 기사들의 의무사항을 정하면서 업체에만 수수료 변경 권한이 있고, 대리기사들은 이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전혀 없다"면서 "경제적 조직적 종속 관계에 있고, 경제적 약자의 지위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기사들에게 일정한 경우 집단으로 단결함으로써 대응한 위치에서 노무 제공조건을 교섭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헌법 취지에 부합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모든 대리운전 기사가 근로자로 인정받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최 위원장은 "대리운전 기사들이 하나의 회사에서 일하는 '전속성'이 있고, 회사가 '관리·감독권'을 행사한 사실이 있어야 노동자로 인정되며 여러 군데 대리업체에 일하는 경우 전속성 등 관련 법리상 근로자로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최근 특수고용직 종사자를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하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박성규 부장판사)가 CJ대한통운 대리점들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교섭 요구 사실 공고에 시정을 명령한 재심 결정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대리점들은 택배 기사들의 노조인 전국택배연대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받아들이라는 중노위의 결정에 불응하며 택배 기사가 개인 사업자로,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약간 이질적인 요소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택배 기사들을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노조법상 근로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와는 개념이 약간 다르다. 이는 노동자의 단결권 등의 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노조법과 노동자에 대한 국가의 보호가 목적인 근로기준법의 차이에서 나온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려면 사용자가 특정돼야 하는 등 상대적으로 조건이 까다롭지만, 노조법상 근로자는 업무상 지휘·감독을 받는 등의 조건이 확인되면 폭넓게 인정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노동계는 특수고용직을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하는 법원 판결을 환영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은 택배 기사를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한 판결에 대해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결과"라며 대리점주들이 성실하게 교섭에 응할 것을 촉구했다.

특수고용직의 노동 삼권 보장 문제는 결사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와도 관련된다.

노동계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조법 개정안에 특수고용직의 노동 삼권 보장 방안이 빠져 있다며 ILO 핵심협약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는 작년 11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공익위원 권고안에서 특수고용직에 대해 "노동권을 결사의 자유 원칙에 부합하도록 보호하기 위한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지난 5월 기자회견 하는 울산 대리운전노조
[전국대리운전노조 울산지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편, 민주노총 산하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부산지부는 23일부터 사흘간 파업에 들어간다.

노조에 따르면 부산지역 7천여명의 기사 가운데 1천200여명이 노조원이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부산지부는 앞서 판결에서 근로자로 인정받은 부산 대리운전노조와는 다른 단체다.

부산대리운전노조는 상급 단체 없는 단일 노조로 조합원은 8명이다.

rea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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