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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난민보다 못한 이재민” 포항지진 2년, 아직 텐트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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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흔 아물지 않은 포항 흥해 가보니

주민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특별법 촉구 위해 국회 찾았지만

“의원들 자기 자랑만 실컷 하고 가”

중앙일보

경북 포항에서 규모 5.4 지진이 일어난 지 2년이 지났지만 200여 명의 이재민들은 대피소가 마련된 흥해실내체육관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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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5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서 규모 5.4 지진이 발생한 지 2년이 지났다. 당시 지진으로 포항에선 부상자 92명, 이재민 1800여 명이 발생하고 시설물 피해 2만7317건 등을 일으켜 총 피해액 3323억원을 기록했다.

지진 2년이 지난 지금도 여파는 이어지고 있다. 우선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재민들이다. 흥해실내체육관에 마련된 대피소에 이재민 92세대 208명이 머무르고 있다. 다른 50여 명은 컨테이너로 만든 임시 거주지에 산다. 아직도 이들은 지진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피해 보상은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사상 유례없는 ‘지진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되고 있지만, 최종 판결은 언제가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피해자 보상과 도시 재건, 책임자 처벌 등에 속도를 낼 수 있는 ‘포항 지진 특별법’의 제정도 한없이 길어지고 있다.

지진 2주년을 2주 앞둔 지난달 31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을 찾았다. 이재민들이 아직도 텐트 생활을 하고 있는 흥해실내체육관, 포항시가 임시 주거지로 제공한 컨테이너 단지, 이번 지진을 촉발한 원인으로 지목된 지열발전소에서 지진을 직접 겪은 시민들을 만났다. 그들은 입을 모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재민 텐트촌’으로 변한 체육관

중앙일보

경북 포항에서 규모 5.4 지진이 일어난 지 2년이 지났지만 200여 명의 이재민들은 대피소가 마련된 흥해실내체육관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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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해실내체육관은 지난 2년간 체육관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곳이다. 2년 전 지진이 발생한 후 줄곧 이재민들의 임시 대피소로 사용돼 오고 있어서다.

체육관 안팎엔 이재민들이 내걸어 둔 현수막이 빼곡했다. 현수막엔 ‘불통 포항시는 쇼하지 말고 소통하라’ ‘난민보다 못한 지진 이재민’ 등 이재민들의 애타는 마음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체육관 안은 텐트가 발 디딜 틈 없이 설치돼 있다. 모두 221개 동이다. 여전히 92세대 208명의 이재민이 남아 있다. 이날 오전 몇몇 이재민들이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전날 국회 앞 대규모 집회에 참여했던 일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재민 정모(80·여)씨는 “말만 번지르르한 국회의원들에게 따지기 위해 모든 일을 젖혀두고 국회로 갔다”며 “이번에도 몇몇 국회의원들이 나타나서 연설했지만 자기 자랑만 실컷 하고 가더라”고 답답해했다. 그날 국회 앞엔 3000여 명이 모였다.

컨테이너서 맞는 두 번째 겨울

체육관에서 약 1.5㎞ 떨어진 흥해읍 약성리에도 컨테이너 생활을 하는 이재민들이 있다. 주거용 컨테이너 33개 동이 있는 이른바 ‘희망보금자리 이주단지’다. 포항시는 집이 전파(全破)된 이재민 중 일부에게 컨테이너로 만든 임시 주거지를 제공했다.

관리인 이익재(64)씨는 “컨테이너 특성상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다. 두 번째 겨울을 맞는 이재민들도 요즘 가장 큰 걱정이 겨울 한파”라고 전했다.

한 컨테이너에서 TV 소리가 흘러나와 찾아가 보니 이문수(61·여)씨가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약 25㎡ 크기의 컨테이너 안은 주방 겸 거실과 안방, 화장실이 갖춰져 있었다. 이씨는 “전기장판을 틀어도 겨울엔 집안에서 입김이 나온다. 한여름엔 근처 도랑에서 풍기는 악취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이씨는 아직도 지진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그는 “집을 걸어 다니면 바닥이 울린다. 동생이 집에 찾아와 밤중에 거실에서 걸어 다니는데 바닥이 울려 소스라치며 일어난 적이 있다”고 했다. 또 “차량에서 운전자가 내리는 모습을 뻔히 보면서도 차 문을 닫는 소리가 나면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을 받는다”고 전했다.

주민들 "특별법 제정 약속 지켜라”

이재민들이 여전히 대피소와 임시 거주지에 머물고 있지만 보상 절차는 아직 걸음마조차 떼지 못했다. 지진 피해 주민들과 포항시가 가장 기대하는 것은 이른바 ‘포항지진 특별법’이지만, 법안은 발의된 지 7개월째 소식이 없다.

특별법은 국회 상임위에 발이 묶여 있다. 여야 정쟁으로 국회가 파행을 거듭하면서 특별법 제정도 미뤄지고 있다. 시민들이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려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도 성과가 없었다. 답답한 시민들은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회를 찾아가 항의 집회를 열기도 했다. 지난달 30일 국회 앞에 3000여 명이 모인 것도 이 때문이다. 지역 단체장들도 청와대와 정치권 지도부를 찾아가 특별법 제정을 수차례 호소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일부 시민은 유례없는 ‘지진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다. 소송인단이 총 1만2867명에 이른다.

공원식 포항 11·15 촉발 지진 범시민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정치권이 지진 2주년이 되는 올해 11월 15일까지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만큼 이를 꼭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 “100만원으로 아파트 어떻게 고쳐서 사냐” 주민 강력 반발

시 “특별법 제정돼야 지원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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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장관


지진으로 발생한 이재민 수는 한때 1797명에 달했다. 정부는 이재민 주거 지원 계획을 내놓고 LH 국민임대아파트 등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하지만 지금도 흥해체육관엔 92세대 208명의 이재민이 남아 있다. 이들이 떠나지 못한 이유는 뭘까.

이들은 모두 92년에 지어진 한미장관맨션(사진) 주민들이다. 지진 후 정밀안전점검에서 이 맨션이 소파(小破) 판정을 받으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시는 주택 피해를 소파·반파(半破)·전파(全破)로 나눴다. 재난지원금도 전파 900만원, 반파 450만원, 소파 100만원씩 분류해 5만 6515건, 643억원을 지급했다.

주거 지원은 전파·반파 피해 주민에만 한해 진행됐다. 소파 판정이 난 한미장관맨션 주민들은 재난지원금뿐이었다. 주민들은 “무너지기 직전인 아파트를 어떻게 100만원으로 고쳐서 사냐”고 반발했다.

시는 최근 대피소 운영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 이들에게 이주 의사를 물었다. 그 결과 31세대만 이주를 결정했다. 나머지는 “소파 판정을 뒤집거나 추가 지원금을 받을 때까지 나갈 수 없다”는 입장이다. 포항시는 “한미장관맨션 문제는 특별법이 마련돼야 지원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포항=김정석·백경서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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