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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조례를 찾아서]⑭“공부방 확대·학교 올림픽”…아이들 목소리 듣고 정책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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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어린이 친화도시 조례

경향신문

전국 처음으로 2013년부터 어린이·청소년의회를 운영 중인 서울 성북구의회 본회의장에서 지난달 12일 학생 의원들이 본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성북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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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례, 편의·안전시스템 구축 명시

2013년 어린이·청소년의회 구성

실제 정책으로 실현된 의견 많아

사업 제안 ‘학생참여 예산제’ 운영

교육·복지시설 간 통합 네트워크

돌봄서비스 중복·사각지대 최소화


“학교에서 성적을 공개적으로 발표하거나, 또 공개적으로 꾸짖는 등 학생들의 인권침해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청소년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므로 학생들의 인권침해 및 공개 꾸짖음을 금지하는 조례를 만들고자 합니다.”

최근 서울 성북구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성북청소년의회 본회의에서 한 학생 의원이 이 같은 취지로 조례 제정을 제안했다. 청소년의회에서 이날 가결된 이 조례는 효력을 가질 수는 없지만 향후 성북구나 성북구의회에서 정책을 구상하거나 심의하는데 참고 의견으로 활용된다. 성북구는 2013년부터 어린이·청소년의회를 구성했다. 의사결정 구조 사각지대에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의회 의사진행 과정을 직접 체험하고 지역 문제를 토론하며 민주시민으로서의 리더십과 참여 의식을 높이기 위해서다.

초등학교 5·6학년과 중·고등학생으로 나눠 어린이 의원은 55명, 청소년 의원은 41명으로 각각 임기는 1년이다. 그동안 이들 의원이 제안해 구정에 실제 반영된 정책도 적지 않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대학생 연계 진로·전공탐색, 청소년 동아리 페스티벌, 공부방 확대, 성북구 학교 올림픽 등이 그 예다.

성북구 오수이 교육지원 담당관은 “청소년의회를 운영하면서 그들(학생의원)에게서 어른보다 더 현명하고 현실적인 의견을 듣고 놀란 적이 많다”며 “일부 학부모들은 학생들의 이력관리용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정작 학생 의원들의 생각은 진지하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유엔 아동권리협약과 아동복지법에서 규정하는 어린이 권리를 보장하는 국내 최초 자치 조례인 서울 성북구 어린이 친화도시 조성에 관한 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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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어린이·청소년의회 구성은 ‘서울시 성북구 어린이 친화도시 조성에 관한 조례’에 바탕을 둔다. 2011년 12월31일 제정된 이 조례는 유엔아동권리협약과 아동복지법에서 규정하는 어린이의 권리를 보장하는 국내 최초의 자치 조례다.

조례에는 자치단체는 어린이 친화도시 조성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 시행해야 하고, 도로·교통·공원 및 녹지 조성사업 추진 시 어린이 보행편의와 안전성을 적극 반영하도록 정하고 있다. 또 각종 폭력과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도시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어린이 안전시스템을 구축하고, 어린이 건강증진에 힘써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성북구는 2013년 11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유엔 특별기구인 유니세프(UNICEF)로부터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았다. 유니세프의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위해서는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서 요구하는 표준화된 인증 로드맵에 따라 일련의 과정을 충족해야 한다. 인증에서 규정한 4대 권리는 생존, 보호, 발달, 참여다. 이 가운데 생존과 보호는 한국에선 어느 수준까지 충족돼 있다. 발달은 교육 기준으로 이 역시 별 어려움이 없다. 문제는 아동(청소년)이 직접 권리 보호 및 강화에 참여해 결정하는 ‘참여’였다. 성북구 어린이·청소년의회 구성은 당시 유니세프에서 긍정적인 아동 참여 프로그램으로 인정받았다.

인증 로고를 대외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외에 지자체가 얻는 지원은 없지만 임신-출산-양육-교육에 이르는 가족 정책과 연관돼 이 사업은 많은 국가가 고민하고 있는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2002년부터 아동친화도시 조성사업을 시작해 현재 250여개 도시가 참여하고 있는 프랑스가 그 예로 꼽힌다.

성북구가 ‘최초’인 아동친화 정책은 어린이·청소년의회 운영 외에도 적지 않다. 2013년 5월부터 아동·청소년교육·복지시설 간 통합 네트워크를 구축해 관내 여러 시설에 나뉘어 있는 아이돌봄 서비스의 중복과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는 통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사업은 정부의 아이돌봄 지원사업 모델로도 평가된다.

2016년부터는 ‘아동·청소년 복지 플래너’를 시행하고 있다. 돌봄·양육지원이 필요한 아동 및 부모에게 가정환경과 욕구에 맞는 교육과 복지혜택을 안내하는 정책이다. 특히 방문 상담을 통해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 가정의 아동·청소년을 돌봄체계 안으로 편입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또 학생들이 원하는 사업을 스스로 제안하고 토론에 참여하는 학생참여 예산제와 구정에 청소년들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구정참여단을 운영하고 있다.

어린이 전문보건소도 있다. 성장 단계별 맞춤형 건강교실, 임산부와 영·유아 건강관리, 주 양육자 건강관리, 성장 단계별 신체활동 놀이 프로그램 등 임신·출산·육아와 관련된 종합·체계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아동·청소년협의체에서는 매년 스스로 청소년축제를 기획한다.

◆전영훈 혁신산업팀장“교육·행정 연계 안돼 정책 수립 한계…한국 대표 청소년도시 만들고자 노력”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인증


경향신문

서울 성북구가 전국 최초로 학생의회를 구성하고 유엔 산하 기구인 유니세프로부터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는 과정의 업무를 담당했던 전영훈 혁신산업팀장(53·사진). 그는 지난 12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한국은 교육과 행정이 서로 독립적으로 진행되고 학교는 외톨이 형태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가 잘되는 선진 외국과 비교해 지방정부가 청소년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북구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청소년도시로 만들어보자는 목표로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인증에 도전하게 됐고, 유니세프에서 아동들의 4대 권리 가운데 ‘참여의 권리’를 가장 중요하게 강조해 어린이·청소년의회가 출범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참여의 권리’ 강조해 의회 출범

현재는 대표 선발된 학생 의원들

모든 교내서 자발적 구성·체험을


전 팀장은 “학생들의 의견이 의회를 통해 실제 행정에 접목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과 그들의 사고가 어른들이 우려하는 것보다 훨씬 성숙돼 있고, 순수하며 합리적인 바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도 보람 중 하나”라고 밝혔다. 그는 “일부 학생들은 어른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게 의정활동을 잘해낼 정도로 관심도가 높으며, 자신이 주인이 되는 과정을 체험하는 것에 만족하는 학생들도 많다”면서 “하지만 행정기관에서 주관하다보니 독립기관인 교육청과 협조가 잘 이뤄지고 있다고는 답하기 어려우며, 학교 측의 참여 의지 역시 높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전 팀장은 “현재의 학생의회는 각 학교에서 지원하거나 선발해 학생들의 대표 성격으로 운영하는 형태지만, 앞으로는 모든 학교에서 자발적으로 구성해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진행하는 과정을 경험하는 모습으로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의 학생회 조직을 의회 형태로 바꿔 운영하면 학생들에게 민주 주민이 되는 준비과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상호 선임기자 sh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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