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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포항지진 2년-하]“거주 가능” vs “못 산다”…여전한 정부·이재민 평행선,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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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정밀안전점검서 '소파' 판정받은 한미장관맨션

주민들은 "금 가고 비 새는 집" 포항시 판정에 반발

'포항지진 특별법' 제정 없인 지원 어렵다는 포항시

정작 여야는 특별법안 내용놓고 논쟁…상임위 계류

중앙일보

지난 1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는 221개의 텐트들. 2017년 11월 15일 규모 5.4의 지진이 일어난 지 2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92가구 208명의 이재민들이 텐트 생활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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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5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일대에서 규모 5.4 지진이 발생하면서 1000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재민이 가장 많을 때는 그 수가 1797명에 달했다. 이들은 흥해실내체육관 등에 마련된 임시 대피소로 향했다.

포항시와 국토교통부는 이재민 주거 지원 계획을 내놓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국민임대아파트와 주거형 컨테이너 등에 이재민의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전세자금 융자 지원도 했다. 하지만 지진이 일어난 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흥해실내체육관엔 92세대 208명의 이재민이 여전히 남아 있다. 정부의 여러 주거 대책에도 이들이 체육관을 떠나지 못한 이유는 뭘까.



“다 부서진 집에서 어떻게 살라고”…귀가 거부하는 주민들



체육관에 머무르고 있는 이재민은 모두 흥해읍 한미장관맨션 주민들이다. 한미장관맨션은 1992년에 지어진 아파트로, 지진 전까지 4개 동에 240세대가 살았다. 지진이 일어나자 지어진 지 25년이 넘는 이 아파트 곳곳에 금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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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한미장관맨션 외벽에 남겨진 지진 흔적. 포항시의 정밀안전점검 결과 한미장관맨션은 소파(小破) 판정을 받았지만 이곳 주민들은 부서진 집에서 살 수 없다며 돌아가길 거부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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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지진 후 정밀안전점검에서 한미장관맨션이 ‘소파(小破)’ 판정을 받으면서 불거졌다. 포항시는 지진 후 피해조사단을 구성해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따라 주택 피해를 소파·반파(半破)·전파(全破)로 나눠 판정했다. 재난지원금도 파손 정도에 따라 나눴다. 전파 900만원, 반파 450만원, 소파 100만원씩 총 5만6515건 643억원이 지급됐다.

주거 지원은 전파와 반파 피해 주민에 한해서만 진행됐다. 지진으로 3도 기울어진 흥해읍 대성아파트 194가구를 비롯한 총 805가구에 LH 국민임대아파트나 주거용 컨테이너를 제공하는 등의 방식으로다. 하지만 한미장관맨션 주민들의 손에 쥐어진 건 재난지원금뿐이었다. 주민들은 “무너지기 직전인 아파트를 100만원으로 어떻게 고쳐서 살라는 거냐. 전파 판정으로 바꾸기 전까진 체육관에서 나갈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이들이 오랜 체육관 텐트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다.

올해부터 2023년까지 총 사업비 2257억원을 투입하는 특별재생사업에도 한미장관맨션은 포함되지 않았다. 포항시는 공동주택 6곳 일대 120만㎡에 올해부터 도시 재생사업을 시작했다. 이들 부지엔 새 아파트뿐 아니라 다목적재난구호소, 체육시설, 작은 도서관 등도 함께 지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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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 내부에 한미장관맨션 지진 피해를 담은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포항=김정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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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장관맨션 주민들을 법적으로 지원할 방법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던 포항시는 최근 텐트 생활을 하고 있던 주민들에게 이주 의사를 물었다. 대피소 운영비, 체육관 활용 문제 등에다 일부 이재민의 건강이 나빠져 체육관 생활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전체 92가구 중 62가구가 신청 접수했고, 최종적으로 31가구가 오는 15일부터 차례대로 LH 국민임대아파트로 이주할 예정이다.

하지만 나머지 이재민들은 “소파 판정을 뒤집거나 추가 지원금을 받을 때까지 체육관에서 나갈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 소파 판정을 받았지만, 이재민 등록을 하지 않은 흥해읍 일부 주민들이 뒤늦게 주거 지원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갈등이 좀처럼 숙지지 않는 상황이다.



포항시 “근본적 문제 해결 위해 지진 특별법 제정이 필수”



포항시 측은 ‘포항지진 특별법’이 제정돼야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포항시 관계자는 “지금으로선 이들을 도울 법적 근거가 없다”며 “포항 지진이 지열발전소로 인한 촉발 지진으로 결론난 만큼 특별법을 제정해 남은 이재민들을 도와 달라”고 말했다.

주민들이 제정을 촉구하는 ‘포항지진 특별법’은 더불어민주당 홍의락, 자유한국당 김정재·송언석, 바른미래당 하태경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한 각각의 법안을 통칭하는 법안이다. 지난 4월 1일 김정재 의원이 2개 법안을 발의한 것을 시작으로 모두 5개 법안이 상정돼 현재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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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재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4월 8일 오전 포항시청 8층 브리핑룸에서 지진특별법 제정과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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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이들 법안은 ‘포항지진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안’·‘포항지진 진상조사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김정재 의원), ‘2017년 11월 15일 포항지진 및 여진의 피해구제 등을 위한 특별법안’(하태경 의원), ‘포항지진 및 강원산불 피해자 주거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안’(송언석 의원), ‘지열발전사업으로 촉발된 포항지진의 진상조사 및 피해구제 등을 위한 특별법안’(홍의락 의원) 등이다.

이들 법안은 공통적으로 피해자 보상과 도시 재건, 책임자 처벌 등을 담고 있지만, 구체적인 시행 방식에서는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김 의원 법안이 다른 법안들과 견줘 가장 적극적으로 피해 보상을 하는 내용이라면, 홍 의원의 법안은 진상규명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식이다. 송 의원은 법안을 통해 주택 복구비에 대한 국고 지원 부담률을 90%로 정한 점이 눈에 띄고, 하 의원은 공공기관을 피해 지역으로 이전하거나 피해 지역의 일부를 산업단지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김 의원 법안은 배상과 보상 심의를 하는 위원회와 진상조사를 하는 위원회를 각각 두는 것은 물론 트라우마센터 설치, 기념시설 건립, 포항지진 재단 설립 등도 의무화했다. 진상규명 역시 조사위가 고발한 사건의 수사와 재판을 다른 사건에 우선해 실시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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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포항11·15촉발지진 범시민대책위원회'가 연 집회에서 포항 시민들이 포항지진 특별법 조기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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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지진 특별법 규정 내용 두고 다시 정쟁 벌이는 국회



5개로 나뉘어 발의된 법안들을 하나로 단일화하는 것도 또 하나의 숙제다. 하지만 여야가 구체적 규정을 두고 뜻을 모으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는 지난 9월 25일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를 열어 포항지진 관련 특별법안을 심사했다. 이 자리에서 여당 의원들은 김 의원의 법안이 지나치게 넓은 범위를 포함하고 있다는 데 거부감을 드러냈다.

회의에 참석한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지열발전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는 정부의 공식 방침이 나왔는데 거기에 공무원 또는 관계자들이 고의냐 아니면 과실이면 중과실이냐 경과실이냐 이런 부분들이 진상규명 이후의 것”이라며 “김정재 의원님 안과 홍의락 의원님 안과는 많은 차이가 있어 보인다. 접점을 찾기가 꽤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견해차 탓에 포항 지진 2주년을 맞는 15일까지도 통일된 특별법안이 나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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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홍의락 의원이 지난 9월 2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포항지진특별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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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식 포항 11·15 촉발 지진 범시민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지진이 일어난 지 벌써 2년이 됐는데도 2000여 명의 이재민은 아직도 임대아파트 등 임시주택에 살고 있고, 이 가운데 300여 명은 차가운 체육관이나 이동식 컨테이너에서 하루하루 힘들게 생활하고 있다”며 “정치권이 지진 2주년이 되는 올해 11월 15일까지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만큼 이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항=백경서·김정석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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