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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미국 도움 없어도 핵잠수함 만들 수 있을까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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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달 2일 북극성-3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에 성공하면서 핵추진 잠수함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북한이 건조중인 3000t급 신형 잠수함에 북극성-3형 SLBM 3∼4발을 탑재하면 미국의 공격을 피해 반격을 할 수 있는 제2격(second strike) 능력을 갖게 된다. 기존의 디젤 잠수함으로는 이를 저지하는데 한계가 있는 만큼 수중에서 오랜 기간 활동할 수 있는 핵추진잠수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해군도 지난달 1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핵추진잠수함 확보는 국가정책에 따라 결정될 사안”이라면서도 자체 검토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운용하고 있다고 밝혀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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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해군 장보고급 잠수함 박위함이 림팩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하와이 진주만에 입항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문제는 기술의 확보다. 미국이 기술이전을 하면 핵추진잠수함 건조가 용이하다. 하지만 미국은 기술이전에 선을 긋는 모양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미 해군 해상체계사령부의 제임스 캠벨 프로그램 분석관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핵추진잠수함은 핵기술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만큼 상당히 복잡한 사안이고 미국의 원자로 기술은 매우 높은 수준의 기밀”이라며 “미국은 한국이 동맹국이더라도 기술을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핵추진잠수함을 만들 수 있을까.

◆‘北 위협’ 거론하나 실제로는 ‘주변국 견제’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북한 위협을 그 이유로 든다. 북한이 3000t급 신형 잠수함에 SLBM을 탑재, 동해상으로 진출하면 탐지가 어렵다. 지상 목표를 향해 수중에서 기습적으로 SLBM을 발사하면 요격이 쉽지 않다. SLBM 탑재 잠수함이 전쟁의 판도를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 평가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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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 오하이오급 전략핵추진잠수함 플로리다함이 그리스 수다만에 입항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북한이 수십년 동안 잠수함을 자체 건조해왔으나 소음 감소 기술은 한국보다 뒤떨어져 있어 한국 해군에 쉽게 포착된다는 것이다. 소음이 큰 잠수함은 전략적 가치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해상초계기와 구축함 등 한국군의 잠수함 탐지 전력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잠수함 탐지에 핵추진잠수함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핵추진잠수함의 활동 범위를 주변국으로 확대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장보고급(1200t)과 손원일급(1800t) 잠수함 18척은 소음 수준이 매우 낮고, 전투능력도 재래식 잠수함 중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대(對)잠수함 기술이 발달하면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재래식 잠수함 보유국이 늘어나면서 이에 대응하는 기술도 빠르게 발달하고 있고, 확산 속도도 빨라지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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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 P-8A 해상초계기가 훈련을 위해 이륙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수십년 동안 쓰였던 P-3C 해상초계기를 대신할 신형 해상초계기가 잇따라 등장하면서 잠수함 탐지능력이 과거보다 크게 높아졌다. 미국은 P-3C를 대체할 P-8A를 실전배치했고, 일본은 자국산 P-1을 운용중이다. 유럽국가들도 C-295MPA, ATR-72MPA 등의 초계기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AW-159처럼 해상작전헬기에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를 장착해 수면 위로 올라온 잠수함 잠망경이나 배터리 충전용 스노클 등을 탐지하는 능력을 높이는 사례도 늘어나는 추세다. 함정에도 AESA 레이더를 비롯한 신형 탐지장비 탑재가 확산되고 있다. 림팩(RIMPAC:환태평양훈련)에 참가한 한국 해군 잠수함이 가상적함을 대거 격침했다는 이야기가 2000년대 중반 이후 나오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상황을 개선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더 깊은 바다로 잠수해 오랜 시간 항해할 수 있는 잠수함을 만드는 것이다. 공기불요추진장치(AIP)를 장착해도 사용에 제약이 따르는 만큼 장기간 잠항이 가능한 핵추진잠수함을 운용하면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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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해군 바라쿠다급 핵추진잠수함 쉬프랑함이 진수를 앞두고 조선소에서 대기하고 있다. 나발 조선소 제공


◆막대한 예산과 오랜 시간 걸릴 가능성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프랑스 바라쿠다급(5300t) 기술을 도입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바라쿠다급은 잠항심도 400m, 최고속도 25노트(시속 46㎞)로 60명의 승조원이 탑승하며 최대 70일간 작전이 가능하다. 농축률이 20% 미만인 핵연료를 사용해 한 한미 원자력 협정 위반 논란을 피할 수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프랑스 기술을 도입해도 핵추진잠수함 건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기술적 난이도가 높고 소요 비용 또한 막대하다.

인도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1980년대부터 핵추진잠수함 개발에 나선 인도는 독일에서 기술을 들여오고, 러시아에서 핵추진잠수함을 임대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2009년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개발한 첫 핵추진잠수함 아리한트함(6000t)을 진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리한트함이 실제로 전략초계임무를 수행한 시점은 9년이 지난 2018년이었다.

이는 러시아, 프랑스, 이스라엘 등에서 검증된 기술을 적용했는데도 문제가 잇따라 발생했기 때문이다. 2016년 10월 정박 도중 승조원이 실수로 해치를 개방한 채 출항했다가 바닷물이 함 내에 유입, 추진체계와 원자로 2차 냉각수가 손상됐다. 이를 수리하기 위해 10개월간 활동을 하지 못했으며, 수리 과정에서 상당수의 파이프가 교체됐다. 러시아가 제공한 설계도면과 실제 건조과정에서 많은 차이가 발생해 비용과 시간이 추가로 소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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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 LA급 핵추진잠수함 루이즈빌함이 인도와의 합동훈련을 위해 안다만해를 지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인도는 아리한트함 개발에 34억 달러(4조원)가 소요됐다고 밝혔지만, 수리와 성능개량 및 핵연료 보관시설과 방사능 측정시설 설치비 등을 감안하면 총건조비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바라쿠다급의 건조비는 1조6900억원으로 다른 핵추진잠수함에 비해 저렴하다. 하지만 바라쿠다급은 최근에야 1번함이 진수된 함정으로 기술적 검증을 거쳐야 한다. 프랑스 해군의 작전운용 경과를 지켜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반론이 나오는 대목이다.

독자적인 건조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보고급, 손원일급, 도산안창호급 잠수함 건조 경험에 원자로와 선체 제작 등 핵심 기술 일부를 외국에서 도입해 만들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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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 오하이오급 전략핵추진잠수함 메릴랜드함이 수리를 위해 모항으로 복귀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우리나라의 조선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잠수함 전투체계를 자체 제작하고 있고, 음파탐지기를 비롯한 주요 장비의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도산안창호급 잠수함 건조를 통해 잠수함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기술도 확보한 상태다. 인도보다 시행착오를 적게 겪으면서 건조할 기반은 있는 셈이다.

다만 잠수함 설계를 새롭게 해야 하는 점은 걸림돌로 지적된다. 재래식 잠수함 선체에 원자로를 설치한다고 핵추진잠수함이 되는 것은 아니다. 원자로와 어뢰발사관, 대기관리장치 등의 위치를 변경해야 하며 선체 구조도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음이 많이 발생해 적에게 탐지될 위험이 높아진다. 프랑스의 루비급(2600t) 핵추진잠수함은 아고스타급 재래식 잠수함을 기본으로 설계됐는데, 재래식 잠수함 선체구조가 일부 남아있어 소음 수준이 높아 추가 성능개량을 해야 했다.

핵추진잠수함 도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적 결정과 기술 수준, 예산 등의 문제다. 국제적인 환경이 복잡해지면서 해외에서의 기술도입은 변수가 적지 않다. 국제정치적 차원의 고려가 많아지고 있고, 핵심 기술이전에 대한 부정적 기조도 커지는 추세다. 도입 여부를 포함해 다양한 요소를 테이블에 올려 놓고 면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할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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