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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ESC] 사주카페에서 뜨끈해진 눈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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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통의 해 봤습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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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모른다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그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우리는 이유를 알아내려 합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은 이유를 만들어 내기라도 합니다. 가뭄이 드는 이유를 몰랐던 옛날 사람들이 하늘이 노해 벌을 받는 것이라 여겨 공양을 바치고 기우제를 드린 것처럼 말입니다. 비단 과거의 얘기만이 아닙니다. 요즘에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을 겪는 사람 중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이 처한 상황의 원인을 비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알아내고자 합니다. 예를 들면 사주팔자를 봐서라도 말이죠.

사실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태어난 시기 등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는 것은 낭만적인 얘기이기는 하나, 신뢰가 가는 소리는 아닙니다. 당연히 평생 한 번도 사주팔자를 봐본 적이 없습니다. 인생 상담, 사주팔자 등의 문구가 쓰인 상담소를 지나칠 때마다 ‘저 안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들어가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만 들었을 뿐, 들어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한번 들어가 봤습니다. 한 평이나 될까 말까 한 좁은 공간에 작은 테이블 두 개와 의자가 넷 놓여 있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그중 한 테이블에 앉아있던 생활한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 말했습니다. “어떻게 오셨나요?” 하고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는 평범한 차림의 중년 여성이 말했습니다. “사주팔자를 보러왔습니다.” 제가 답하자 중년 여성은 남성 쪽을 가리키며 “그럼 저쪽으로” 하고 말했습니다. 여성의 테이블 위엔 타로카드가 있는 거로 보아 타로점을 보는 듯했습니다.

이름과 생년월일 등의 정보를 알려주자 남성은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계산을 했습니다. 열중하는 그 모습이 흡사 복잡한 수식을 푸는 물리학자처럼 보여 어떤 과학적인 이론과 체계를 바탕으로 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고, 이윽고 메모가 한장을 넘어섰을 땐 없던 믿음이 조금 생길 정도였습니다.

“힘드시지요?” 남성이 물었습니다. 난데없는 공격이었습니다. “인내심은 있는데 인정심은 부족해 노력은 하지만 주변에 사람이 없습니다. 홀로 벼랑길을 걷는 모습이라 울고 싶은데도 울어봤자 소용이 없으니 그저 버티고만 있는 것 같네요.”

훅-하고 눈시울이 뜨끈해졌습니다. 사실 머리로는 ‘이 나이 먹고 안 그런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어찌 됐든 남의 입으로 나의 고달픔을 인정받으니 아무렴 어떠냐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와 닿았던 것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듯 바라봐주는 그의 눈빛이었습니다. 잠시 뜸을 들인 뒤 그는 입을 열었습니다. “질투심이 강한 것이 안 좋은 점이면서도 그렇기에 자력갱생하실 수 있을 테니 지금의 곤란에 너무 얽매이실 필요가 없습니다.”

아, 이래서구나. 사람들이 돈을 내고 점을 보는 이유는 정말 내 인생이 범주화되어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 중 하나라고 믿어서가 아니라, 내 이야기를 전심전력으로 들어주고 같이 고민해주며 교감을 할 상대가 필요해서구나. 그 상대가 들려주는 위로가 살아갈 힘과 지침이 되는 사람도 있겠구나. 거리에서 드문드문 만나는 사주 카페가 어쩌면 보급형 정신과 상담실일 수도 있겠구나. 한 시간가량 얘기를 듣고 난 뒤 자리에서 일어나며 생각했습니다.

“타로는 안 보세요?” 옆에 앉아있던 여성이 물었습니다. “결과가 다른가요?”라고 제가 묻자 “아무래도 장르가 다르니까”라고 여성은 답했습니다. 시간이 없어 거절하고 나왔지만, 다시 찾지 않을 거란 장담은 할 수 없었습니다. 장르가 다르다니 궁금해서요.

글·그림 김보통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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