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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금강산 南시설 싹 들어내라”… 남북경협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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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선임자 南 의존 정책 잘못” / 부친 김정일 사업까지 이례적 비판 / 대남·대미 메시지 모두 담겨 있는 듯 / 김연철 “우리 시설 많이 낡은 건 사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이었던 금강산관광 지구를 찾아 남측 시설들을 철거하라고 전격 지시했다. 북한 매체들은 23일 김 위원장이 금강산관광 사업을 ‘선임자의 잘못된 정책’으로 규정하고 금강산관광 지구의 독자 개발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등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고성항과 출입사무소, 해금강·금강산호텔 등 남측이 건설한 시설을 돌아봤다.

북한의 강경책은 지난해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합의된 금강산관광 재개를 남측이 이행하지 않는 데 대한 불만 표시라는 해석이 나온다. 남북 경협이 위기를 맞으면서 우리 정부와 금강산관광 사업자인 현대아산은 당혹감 속에 김 위원장 지시의 진의 파악과 대책 마련에 나섰다.

세계일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관광지구를 현지지도하고 금강산에 설치된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3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금강산관광지구 사진. 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하여 싹 들어내도록 하고 금강산의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봉사시설들을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손쉽게 관광지나 내어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하여 금강산이 10여년간 방치됐다”고 비판했다.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성과를 사실상 부정한 보기 드문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금강산관광은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김 국방위원장이 합의해 1998년 처음 시작됐다.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는 지난 16일 김 위원장의 백두산 방문에서 백마를 타며 언급한 ‘웅대한 작전’의 하나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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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방문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가운데)과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오른쪽)이 1998년 10월30일 밤 평양시내 백화원초대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엔 대남 정책을 총괄하는 장금철 통일전선부 부장과 대외 정책을 총괄하는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이례적으로 동행했다.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 지시에 대남·대미 메시지가 모두 담겼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제재로 일관하는 미국과 미국 눈치를 보는 남한에 대한 항의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정책간담회에서 “진짜 정책 전환인지, 아니면 다른 시그널(신호)인지 좀 더 분석해봐야 한다”면서 “남북관계에는 아직도 중요한 협력의 공간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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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관광지구 시찰하며 금강산관광지구의 남측 시설을 철거하라고 지시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보도한 23일 서울 종로구 현대아산 로비에 현대아산 문구가 보이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에 따르면 김 장관은 “금강산에 있는 우리 시설들은 이미 10년 정도 경과하는 과정에서 유지·관리를 하지 않아서 많이 낡은 것은 사실”이라며 “(북한 방침에는)사실 제재 때문만이라고 얘기할 수 없는 금강산 관광에 대한 부진도 있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 지시가 어느 정도 타당하고 우리 책임도 없지 않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남북관계 불확실성은 ‘상수’였다”며 “상황을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길’을 천명했던 북한의 본격적인 태도 변화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형석 대진대 교수(전 통일부 차관)는 “단순한 압박용 발언이 아니라 자신들의 구체적 개발계획을 공식 발표한 것”이라며 “선대의 업적 부정은 앞으로 한국이 지원하는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분석했다.

조병욱·김수미 기자 bright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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