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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NIBRT<아일랜드 국립 바이오공정 교육연구소>, 기업의 100% 만족 위해 10년 준비해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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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조선]
2002년 美 화이자, 정부에 건의
기업 요구 반영해 2011년 설립
韓 보건복지부 " NIBRT 배워야"

조선일보

도미닉 캐롤란 NIBRT CEO를 9월 20일 서울 종로구의 아일랜드 기업진흥청 한국사무소에서 만났다. / 이민아 기자


"기업의 목소리를 빠짐없이 반영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모델의 교육기관을 만들다 보니 문을 열기까지 10년이나 걸렸어요."

아일랜드 국립 바이오공정 교육연구소(NIBRT)의 최고경영자(CEO) 도미닉 캐롤란이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아 이렇게 말했다. NIBRT는 2011년 아일랜드 정부가 5700만유로(약 740억원)를 투자해 설립한 아일랜드의 제약·바이오 전문인력양성 교육기관이다. 기초·응용 연구, 임상 시험, 인허가 등 제약·바이오 기업의 제품 개발에 필요한 과정을 가르친다. 산업 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NIBRT는 한국의 보건복지부가 5월 발표한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 전략’에서 제약·바이오 전문인력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의 모범 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보건복지부는 9월 4일 열린 바이오헬스산업 혁신전략 추진위원회 1차 회의에서도 "제약·바이오 전문인력양성을 위해 아일랜드 NIBRT 모델의 제약·바이오 교육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또 한번 언급했다.

NIBRT의 어떤 점이 한국 정부를 매료시킨 것일까. 우선 NIBRT 교육생들의 놀라운 취업률이 눈에 띈다. 지난해만 4300명이 NIBRT 과정을 이수했는데, 절반이 STEM (Science·Technology·Engineering·Mathmatics의 앞글자를 딴 말로, 각각 과학·기술·공학·수학을 의미) 전공의 미취업 대졸자였다. 이 중 80%가 아일랜드 내 제약·바이오 회사에 취직하는 데 성공했다. 4300명 중 나머지 절반은 현직 제약·바이오 회사 직원이었다. 국가가 직접 나서 기업의 직원 교육을 도운 것이다.

캐롤란 CEO는 "독립 조사기관에 NIBRT의 경제 효과에 대한 분석을 의뢰했다. 지난 10년간 해외에서 제약·바이오 관련으로 아일랜드에 투자된 100억유로(약 13조2000억원) 가운데 15%가 NIBRT 덕이었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미소 지었다. 일자리 창출과 차세대 먹을거리 찾기에 골몰하고 있는 한국 정부가 주목할 만한 대목이었다.

‘이코노미조선’은 캐롤란 CEO를 9월 20일 서울 종로구 아일랜드 기업진흥청 한국사무소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제약바이오협회(KPBMA) 등과 협의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한국 방문은 처음인데, 아일랜드와 한국이 문화·역사적으로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차분하고 온화한 어조로 NIBRT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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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M 전공 미취업 대졸자 교육해 취업률 80%

NIBRT를 만드는 데 영향을 준 사건이 있나.
"2002년 글로벌 제약회사 화이자가 더블린에 공장을 지으면서 아일랜드 정부에 던진 조언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당시 화이자는 ‘제약·바이오 산업을 육성하고 싶다면, 정부가 인력 교육기관에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화이자가 더블린에 지은 공장은 세계 최대 규모의 생물의약품(생물체로부터 추출한 물질을 원료로 만든 의약품) 공장이었다. 그러나 아일랜드 내에는 그렇게 큰 공장에서 일할 만한 역량 있는 전문 인력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미국에서 인력을 수급했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아일랜드 정부가 2006년 NIBRT의 전신을 발족했다. 당시에는 아직 시설을 짓는 중이었기 때문에 우선 유니버시티 칼리지 더블린(UCD)에서 교육했다. 이후 2011년에 각종 실험을 할 수 있는 NIBRT 전용 교육 시설이 만들어졌다."

NIBRT의 연구·교육 시설은 연면적이 6500㎡로, 축구 경기장 면적과 거의 비슷하다. NIBRT에는 강의 시설뿐 아니라 파일롯 플랜트(pilot plant·신제품 양산 전에 소규모로 시험생산하는 시설)까지 마련돼 있다. 기업에서 신약 개발이나 제품 개선 작업을 하고 싶을 때 이 시설을 빌려 쓰기도 한다.

NIBRT가 벤치마킹한 교육기관은.
"없다. 벤치마킹할 대상이 없었다. 그래서 화이자가 정부에 교육기관 설립을 제안한 이후에도 10년이나 걸린 것이다(웃음). 완전히 새로운 기관을 만들다 보니 정부도 몹시 조심스러웠다. 현장에서 진짜로 필요한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정부의 고민이 깊었던 것 같다."

당신은 NIBRT 설립 당시 기업에서 일했는데, 정부의 노력이 기억나나.
"기억하고 있다. 정부는 아일랜드 내에 있는 모든 제약·바이오 회사에 설문을 돌렸을 뿐 아니라 직접 찾아와 인터뷰했다. 이런 의견 수렴 과정은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우리가 어떤 역량을 가진 인력을 원하는지, 그리고 어떤 시설을 갖춰야 그런 인력을 육성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물었다. 지금 NIBRT가 성과를 내는 것은 당시 아일랜드 공무원들이 현장의 목소리에 집중해 철저히 연구하고 고민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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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BRT에는 실습을 동반하는 교육뿐 아니라 신제품 개발 실험을 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다. / NIB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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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특정 분야 인력 필요로 할 때 ‘맞춤형 재교육’도

NIBRT의 교육 대상은.
"교육생의 절반은 제약·바이오 회사 임직원이다. 직장인이 회사에 다니면서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한 2년짜리 과정도 있고, 1~3일 동안 집중적으로 배우는 단기 과정도 있다.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특정한 기술이나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 외에도 제약·바이오 회사가 NIBRT에 ‘우리 회사 직원을 위한 교육을 해달라’고 의뢰하면 맞춤형 교육 과정을 짜준다. 복제약 생산 시설을 새로 확충한 A 회사가 있다고 치자. 이 회사에는 아직 복제약 전문 인력이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경우 A 회사가 NIBRT에 복제약 생산 시설 운영 관련 교육을 의뢰하고, 비용을 지불하면 NIBRT는 A 회사만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든다. 기업 임직원의 교육 비용은 그 사람이 속한 회사에서 대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일정 비용을 지불하고라도 직원들이 교육받게 하는 쪽이 훨씬 이익이다."

나머지 절반은 누구인가.
"제약·바이오 산업으로 경력을 쌓고 싶은 미취업 대졸자다. 꼭 제약·바이오 전공이 아니더라도 STEM 전공자면 된다. 미취업 대졸자 교육생의 80%가 제약·바이오 기업에 취직했다. 아일랜드 내 5개 대학에는 제약·바이오 관련 박사 학위를 딸 때 학점의 20%는 NIBRT에서 들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작년까지 정부가 수업료 전액을 지원했던 ‘스프링 보드(spring board)’라는 프로그램도 있다. 작년에만 541명이 이 과정을 들었다. 올해부터는 이 프로그램도 교육생이 수업료의 10%를 부담하도록 바뀌었다. 올해 아일랜드 실업률이 4%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미취업자 대상이라고 해도 굳이 수업료 전액을 지원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웃음)."

NIBRT 출신들이 아일랜드 밖에서 취업하는 경우도 많나.
"교육생 중 외국인 비중이 15~20%다. 주로 미국·유럽에서 오는데, 교육받은 뒤에 본국으로 돌아가 취직하는 경우가 꽤 있다. 아일랜드 다음으로 미국에 있는 회사에 가장 많이 취직한다. 대형 제약·바이오 회사 가운데 미국 회사가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세계 각지에서 관심을 받을 것 같다.
"그렇다. NIBRT는 ‘글로벌 파트너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파트너가 되면 NIBRT의 교과 과정과 노하우를 활용해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된다. 현재 파트너는 △미국 토머스제퍼슨대 △GE헬스케어 △호주 시드니대 등 3곳이다. 토머스제퍼슨대에는 ‘제퍼슨 인스티튜트 포 바이오프로세싱(Jefferson Institute for Bioprocessing)’이라는 기관이 만들어졌다. 그 외 중국이나 터키, 캐나다 등지의 기관과도 초기 단계의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에 머물면서 제약·바이오 산업 관계자들을 많이 만났을 텐데.
"그렇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대학 쪽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의 제약·바이오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정부 투자도 많은 것 같다.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한국은 첨단 반도체 산업이 발달하다 보니 생산 공정 자동화, 클린룸(clean room·반도체 생산을 위해 먼지를 최소화한 청정 공간) 기술 등이 고도화돼 있다. 이런 기술력은 제약·바이오 산업의 발전으로 연결된다."

plus point

[Interview] 로케시 조시 NUI 골웨이 부학장·에드워드 맥도넬 CeADAR 센터장
"기업이 돈 벌 수 있게 돕는 게 우리의 목표"

조선일보

로케시 조시 부학장 애리조나주립대 교수, 바스대 생화학 박사(왼쪽)


에드워드 맥도넬 센터장 HP 유럽, 에든버러대 교수(오른쪽)
미국의 반도체 제조업체 엑스페리가 2008년 인수한 아일랜드 업체 포토네이션은 세계 최초로 카메라 적목 현상(플래시를 터뜨릴 때 눈동자가 빨갛게 나타나는 현상) 제거 기술을 개발했다. 올림푸스, 소니, 삼성 등 대부분의 카메라 브랜드가 2007년 이 기술을 자사 제품에 도입했다. 포토네이션의 기술 개발을 도운 곳이 NUI(아일랜드국립대학교) 골웨이다. NUI 골웨이는 아일랜드에 있는 4개 국립대 중 하나로 아일랜드 서쪽 소도시 골웨이에 있다. 아일랜드의 교육기관들은 산업계와 밀착해 기술 상업화에 힘쓴다. 대표적인 기관이 NUI 골웨이 산하 리서치그룹, 유니버시티 칼리지 더블린(UCD) 산하 응용 인공지능센터(CeADAR)다. 모두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연구를 진행한다. 리서치그룹의 수장인 로케시 조시 NUI 골웨이 부학장을 9월 23일 골웨이에서, 에드워드 맥도넬 CeADAR 센터장을 26일 더블린에서 따로 만난 뒤 하나의 인터뷰로 재가공했다.

어떤 일을 하나.

맥도넬 도이체방크, 피델리티 등 100개 이상 CeADAR 회원사들의 연구·개발을 돕는다. 우리는 대학 산하 기관이지만 학술 연구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기업들이 최신 기술로 돈을 벌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우선 목표다. 이를 위한 자금은 아일랜드 기업진흥청(EI)과 아일랜드 투자발전청(IDA)으로부터 받는다. 최근엔 EI로부터 향후 5년간 1200만유로(약 159억원) 지원 약속을 받았다.

조시 현재 리서치그룹 건물에만 30개 프로젝트 그룹·회사가 모여있다. 바이오 산업계가 직면한 여러 도전을 해결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기업 경영자뿐만 아니라 엔지니어, 과학자, 연구 인력, 의료인 모두가 협업하는 구조다. 또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EI, IDA와 긴밀하게 협력하는데, 매년 이들로부터 7500만유로(약 990억원) 정도의 지원을 받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맥도넬 최근 우리 센터는 유방암을 예측하기 위해 생체 지표를 분석하는 머신러닝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또 모든 국민이 쓸 수 있는 개인 건강 기록 데이터 기술도 개발 중이다.

조시 지금 리서치그룹에 있는 ‘코넛 오토모티브 리서치’라는 회사는 프랑스 자동차 부품 회사 ‘발레오’와 함께 차량용 인공지능(AI), 비전 센서 시스템 등을 개발하고 있다. 우리 대학의 연구 인력들이 기업과 함께 미래 기술을 연구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연구·개발할 기술을 어떻게 결정하나.

맥도넬 1년에 두 차례 회원사 대상 설문을 한다. 회원사들에 필요한 기술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다. 보통 35~40개 정도의 답이 돌아온다. 이것을 다시 회원사 대상 투표에 부친다. 득표수가 높은 상위권 기술 몇 가지를 꼽아 연구에 돌입한다. 기업은 우리가 연구한 기술을 적용해 제품을 만들 수도, 필요한 교육에 사용할 수도 있다. 보통 6개월 정도 시험해 보고, 이후는 각자 판단에 맡긴다. 상품화에 성공하면 기업도 약간의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한다.

조시 아일랜드는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모두가 협업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요 축인 교육기관의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아니면 사람들은 흥미를 잃을 것이다. 기업이 함께 일할 마음이 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래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도미닉 캐롤란(Dominic Carolan)은 누구?

아일랜드의 제약·바이오 산업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기관인 NIBRT의 최고경영자(CEO)다. 30년간 제약·바이오 제조 분야 경력을 쌓았다. 그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더블린(UCD)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1980년부터 독일·미국 등 글로벌 제약회사에서 생산 관리를 담당했다. 글로벌 제약회사의 아일랜드 현지 시설 운영과 인력 채용 등이 주 업무였다. 2000년에는 희귀병 치료약을 개발하는 미국의 제약사 ‘젠자임(現 젠자임 사노피)’ 부사장을 맡았다. 8년 후 수석 부사장으로 승진해 아일랜드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 전역의 젠자임 생산을 관리했다. 2008~2010년에는 아일랜드 제약·바이오 기업 이익단체인 ‘바이오파마켐 아일랜드’ 회장을 겸임했다. 2014년 NIBRT의 4대(代) CEO로 취임했다.

[이민아 이코노미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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