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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스트레스는 무대에서 푼다” 뮤지컬 배우 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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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뮤지컬, 클래식, 가요 등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카이. "선례와 장르를 넘어 그저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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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배우 카이의 올해 출연작은 네 편이다. ‘팬텀’의 팬텀, ‘엑스칼리버’의 아더, ‘벤허’의 벤허, 그리고 다음 달 16일 막을 올리는 ‘레베카’의 막심 드 윈터까지 대형 뮤지컬의 주연으로 한 해를 꽉 채웠다. 최소 3개월씩 공연되는 작품이니 올해 공백 없이 무대에 선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1년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로 정식 데뷔한 이래 매년 3~4편의 작품에 출연해왔다.

“무대에 갈증이 있었다. 다른 배우들은 앙상블ㆍ조연 등으로 시작했는데 나는 서른이 넘어 데뷔했다.” 21일 만난 카이는 “성장할 수 있는 계기는 무대 경험뿐인데 이젠 무대에 서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카이는 서울예고와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현재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래서 뮤지컬 무대 데뷔 때부터 서울대 성악과 출신의 배우로 조명을 받았다. 그 이력은 한편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이기도 했다.

“초창기에는 도련님 이미지의 조역을 주로 맡았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성악했던 기반을 버리라는 조언을 많이 해줬다. 그래야 뮤지컬 캐릭터의 다양성이 살아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카이는 그 이력을 그대로 가지고 가기로 했다. “성악은 단지 고급스러운 예술이 아니고, 좋은 발성의 기초라고 생각한다. 돈 주고도 구하기 힘든 무기였다.” 뮤지컬로 시작한 배우들에 비해 연기 경험이 없다는 점 등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극복했다.

성악가 출신이라는 점이 배우 카이에게 크게 문제 되지 않기 시작한 시점을 그는 ‘벤허’에 처음 출연한 2017년으로 본다. “나의 한계를 극복한 첫 배역이었다. 연기를 지독하게 배우고 노래의 스타일을 다듬어 완성도를 높였다. 내 앞에 있던 보이지 않던 벽이 뚫린 것 같았다.” 이후 맡은 배역의 색채가 다양해졌다. ‘더 라스트 키스’의 황태자, ‘프랑켄슈타인’의 앙리 뒤프레, ‘엑스칼리버’의 아더 등이다. 카이는 “벤허 전까지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표현하는 단편적 역할 제의가 많았는데 벤허 이후에는 거칠거나 감정 소모가 많은 입체적 캐릭터들을 맡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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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는 다음 달 16일부터 내년 3월까지 충무아트홀에서 뮤지컬 '레베카'에 출연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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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감정 표현은 그가 새로 찾은 돌파구다. “클래식을 할 때는 이만큼 능동적으로 감정을 표현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뮤지컬 경험을 쌓으면서 다양한 감정을 표출하게 됐다.” 자유를 얻게 되자 무대에서 많은 것이 해소됐다. “그 많은 공연을 어떻게 소화하냐고 묻는데 나는 일상생활에서 얻은 스트레스와 묵은 감정을 무대 위에서 푼다.”

‘진영’에 대한 고민도 이제 정리했다. “뮤지컬 쪽에서는 내 노래가 너무 클래시컬하다 하고 클래식 하는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대중적이라 생각한다”며 “그 사이가 아주 멀지만 나는 그 어디쯤 있는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카이는 그러면서 음대 재학 시절의 일화를 꺼냈다. 대학교 2학년 때 슈만의 가곡 ‘헌정’을 불렀는데 한 교수가 그에게 “왜 악보에 있는 대로 노래를 하지 않느냐. 클래식은 그런 게 아니다”라고 충고했다. 카이는 “내가 하고 싶은 건 노래에 마음을 있는 그대로 싣는 것이었는데, 틀을 따라야 하는 것이 내 생각과 맞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카이는 성악가와 뮤지컬 배우라는 틀 대신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보여줄 콘서트 ‘카이의 서울 클래식’을 24일 연다. 오후 8시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슈만의 ‘헌정’, 뮤지컬 음악들, 최근 낸 앨범 속 노래를 들려줄 예정이다. 그의 요즘 관심사는 한국 가수가 외국에서 부를 수 있는 노래들이다. 창작곡 ‘너의 아리랑’, 옛 가요인 ‘애모’와 ‘향수’ 등을 편곡해 앨범을 냈다. 그는 “한국의 정서가 녹아 있으면서도 세계로 나갈 수 있는 노래를 앞으로도 발전시키고 싶다”고 했다.

따라서 이번 콘서트는 그의 과거부터 미래를 그리는 여정이다. 콘서트는 방송국 합창단원이던 유치원 시절 녹음한 적이 있는 동요 ‘참새 두 마리’로 시작한다. 클래식 음악, 뮤지컬 무대, 대중가요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는 '노래하는 사람 카이'를 보여준다. “2008년 데뷔할 때 그렸던 모습을 200% 달성했다. 새로운 걸 찾아야 한다는 강박까지 생겼었는데 이제는 목표의식을 버렸다.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는 일, 음악을 대하는 일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려고 한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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