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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에 왜 칠레 민심은 폭발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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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빈부격차에 불만 쌓여… 피노체트 이후 첫 비상사태 선포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으로 촉발된 칠레 반정부 시위가 결국 비상사태 선포까지 불러왔다. 20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는 지난 주말 폭력 시위가 이어졌다. 산티아고에서만 지하철역 78곳이 불에 탔으며, 미국계 대형 마트 월마트 지점 100여 곳 등 수퍼마켓 수백 곳이 약탈당했다. 칠레 정부는 산티아고 등 최소 6개 도시에 대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수도 산티아고 시내에는 군인과 경찰 약 1만명이 배치됐으며, 야간 통금령이 내려졌다.

사상자도 늘고 있다. 19일 산티아고의 수퍼마켓 약탈 방화 과정에서 3명이 숨졌고, 20일엔 산티아고 교외의 한 의류 공장 방화로 5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경찰에 체포된 사람은 1500여 명에 달한다. 영국 BBC 방송은 "칠레는 1990년 피노체트의 군부독재가 끝난 이후 최악의 혼란 상황"이라며 "민주화 이후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산티아고 시내에 탱크가 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 6일 칠레 정부가 국제 유가 상승과 페소화 가치 하락을 이유로 출퇴근 시간 등 피크타임의 지하철 요금을 800페소(1328원)에서 830페소(1378원)로 올리면서 촉발됐다. 한국 기준으로 50원은 큰돈은 아니지만, 칠레 노동자 평균 임금이 약 807달러(94만원)이고 대도시 노동자의 임금 중 20%가 출퇴근 교통비에 쓰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작지 않은 부담이다.

이번 인상안이 빈곤층과 중산층의 생계비가 급상승하고 임금은 정체된 최악의 시기에 발표된 것이 화를 불렀다고 NYT는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전기요금 10% 인상안을 발표한 지 불과 몇 주 만에 교통비 인상안이 나왔다"고 전했다. 시위가 격화하자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은 19일 TV 생중계를 통해 지하철 요금 인상 계획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시위는 더 확산하는 모양새다.

외신들은 빈부 격차와 저임금, 고물가 등에 시름하던 칠레 민심이 이번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을 계기로 폭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칠레는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남미 국가로 알려져 있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기도 하다.

하지만 극심한 빈부 격차 등이 꾸준한 문제로 지적돼 왔다. OECD가 세계 39개국을 조사한 소득불평등 지수(0이 완전한 평등, 1이 완전한 불평등)에 따르면, 칠레가 0.46으로 남아공(0.62), 코스타리카(0.48)에 이어 셋째로 소득불평등이 심한 국가였다.

이번 사태 원인을 원자재 가격의 지속적인 인하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칠레 등 남미 국가의 국내총생산에서 원자재가 차지하는 비율은 78%에 달한다. NYT는 "최근 몇 년 동안 원자재 가격이 폭락하면서 남미 중산층의 삶이 위협받고 있다"고 전했다. 길레르모 홀즈만 발파라이소대 정치학과 교수는 NYT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는 경제에 대한 좌절, 수도·전기·교통 등 공공요금 인상, 범죄와 부패 만연 등 요소가 축적돼 발생한 것"이라며 "지하철 요금 인상이 임계점이었다"고 말했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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