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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임동원의 이코노믹스] 한국 연간 가업상속 76건, 독일은 1만251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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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 상속세율 65% 세계 최고

상속세 감당 못해 기업 매각 속출

세법 개정에도 여전히 실효성 낮아

외국은 경쟁적으로 승계 지원나서



장수기업 가로막는 가업상속공제



중앙일보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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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65%에 달하는 상속세 부담과 까다로운 가업상속공제가 한국 기업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기업승계가 어려워진 창업주들이 한국M&A거래소(KMX) 또는 사모펀드에 줄줄이 회사를 내놓고 있다. 지난해 KMX에 매각을 의뢰한 730개 기업 가운데 상속하지 않고 매각해 현금으로 물려준다는 기업이 118개(16.2%)에 달했다. 또 지난해 중견기업 조사에서도 중견기업의 84.4%가 ‘기업승계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상속세 부담(69.5%)이 가장 컸다.

올해 들어 재계와 경제 전문가를 중심으로 과도한 상속 세제를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해와 내년까지 1%대 경제성장률이 전망되는 암울한 상황에서 상속세 부담이 가뜩이나 침체된 기업가정신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해 상속 세제 개선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다.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는 물론 중소기업중앙회도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의 현행 상속세는 사망자(피상속인) 유산을 기준으로 과세하고, 10~50%의 5단계 누진세율 구조다. 직계비속에 대한 상속세 최고세율(50%)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최고세율 25.3%의 2배에 달한다. 일본(55%) 다음으로 높다. 기업승계의 경우엔 최대주주 등의 주식을 할증 평가(30%)하고 있어 최대 65%의 상속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다.

정부는 원활한 기업승계를 모색하기 위해 ‘가업상속공제’를 운영해 왔다. 하지만 가업상속공제의 적용요건이 너무 엄격해 그 실적이 연평균 70여건에 그치고 있다. ‘빛 좋은 개살구’라 불리는 이유다. 적용대상을 ▶매출액 3000억원 이하 중소·중견기업으로 제한했고 ▶피상속인의 10년 이상 가업 영위 ▶상속인의 가업 종사·대표자 취임 및 가업·고용 유지 등 사후요건을 충족해야 해서다.

독일과 비교해보면 한국의 가업상속 세제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알 수 있다. 독일은 ‘상속기업의 존속’과 ‘일자리 유지’라는 사회적 이익의 실현에 가업상속공제를 활용하고 있다. 독일에선 연평균 1만2500건이 넘을 만큼 가업상속공제가 활성화되고 있다.

OECD 국가 상당수는 상속세 폐지

중앙일보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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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가업상속공제는 ‘부(富)의 대물림’이라는 오해 때문에 그 활성화를 위한 적용요건 완화 시도가 국회에서 거듭 저지되고 있다. 가업상속공제를 적용받은 경우 양도소득세 과세대상 재산은 과세 시점이 늦춰지는 ‘과세이연’이 허용되지만 비과세되지는 않아 조세형평에 부합할 수 있다. 더구나 가업상속공제를 적용받은 자산이라도 추후 부동산·주식 등 양도소득세 과세대상 자산을 양도하는 경우, 양도가액에서 공제할 취득가액은 상속 당시 가액이 아니라 피상속인의 취득가액으로 하고 있다.

비교 대상을 OECD 회원국으로 넓히면 한국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더 선명해진다. 36개 OECD 회원국 중 상속세를 부과하는 국가는 23개국이다. 그런데 상속세 부과 23개국 중에서도 14개국은 직계비속에게 상속세율을 낮춰주거나 아예 면제해주고 있다.

상속 과세를 통해 소득재분배와 경제적 기회 균등을 실현하는 것이 어렵다는 인식에 따라 자본 유출을 막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소득재분배 효과가 더 크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이유에서 OECD 국가 중 13개국은 아예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처음부터 도입하지 않았다. 상속세를 폐지한 국가들은 자본이득세로 대체했으며, 주로 사망자의 미실현된 자본이득을 상속인이 처분할 때 세금을 내도록 과세시점을 이연하고 있다.

해외 기업승계 세제 지원제도는 중소기업 이외의 기업까지도 대상이며, 대부분의 적용 요건이 한국보다 간소화돼 있다. 영국·아일랜드·스페인 등은 기업 규모별 제한이 없고, 사후관리 기간이 한국보다 짧다. 고용유지 요건을 보면 한국은 10년 이상으로 엄격하지만, 일본(5년)과 독일(5~7년)은 짧고 프랑스는 요건 자체가 없다.

특히 독일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피상속인의 10년 이상 가업 영위나 상속인의 가업 종사·대표자 취임 같은 요건은 없다. 사후고용유지 요건도 총급여 5년간 400% 또는 7년간 700%이고, 일자리 수 요건도 까다롭지 않다. 일본도 2019년 4월부터 ‘신사업승계제도’를 시행해 승계 후 5년간 80% 고용조건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에도 계속 유예되도록 하는 등 기업승계를 장려하고 있다.

기업 매각하면 안정적 고용 어려워

안타까운 것은 현행 상속 세제 하에서는 기업승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2019년 세법개정안에서 가업상속공제 사후관리 요건을 완화하고 최대주주할증 과세율을 일부 인하(일반기업 30%→20%)했지만, 근본적 개편이 아니기에 실질적으로 그 효과가 기대되지 않는다.

이대로 상속 세제에 변화가 없다면 기업은 승계 시 상속세 부담을 대비하기 위해 재투자보다는 기업자산을 매각하거나 배당을 늘릴 수밖에 없다. 기업을 매각하는 경우 안정적 고용유지가 어려워지고, 상속세 납부를 위해 배당을 증대시키는 경우 기업의 투자 여력이 축소될 것이므로 기업의 성장동력 및 국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된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기업승계가 단순한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기업의 존속 및 일자리 유지를 통해 국가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사실이다. 저성장 기조에 접어든 현재 경제 상황에서 기업가정신을 고취하고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기업승계의 장애물인 상속 세제를 개선해야 한다. 우선 국제적으로 높은 상속세율은 중소·중견기업의 활성화와 대기업으로의 성장이라는 선순환을 위해 인하돼야 마땅하다.

또 최대주주에 대한 주식 할증 과세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이미 주식에 포함돼 있어 실질과세원칙에 위배되므로 폐지하는 것이 타당하다. 다음으로 가업상속공제의 입법 목적이 기업의 존속 및 일자리 유지라면 공제대상 범위를 전체 기업으로 확대하고 적용요건을 완화하는 것이 규모 면에서 더 효과적이다.

다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인 일자리 및 소득 창출을 실현해야 하므로 기업승계를 할 때 대기업은 다른 적용 대상보다 고용유지 요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 효과 의문시되는 상속세 완화 방안

기획재정부는 ‘2019 세법개정안’에 가업상속공제 사후관리요건 완화 및 최대주주 할증평가율 인하 등 상속세 완화방안을 포함했다. 가업상속공제는 사후관리기간 단축(10년→7년), 업종 변경 허용범위 확대(소분류→중분류), 중견기업의 고용유지 의무 완화(근로자 수 120%→100%) 등 사후관리요건을 완화했고, 최대주주할증평가 관련 할증률을 일반기업은 20%, 중소기업은 0%로 조정했다.

가업상속공제 개정안은 일부 사후관리 기간과 고용유지의무를 완화했지만, 제도 활용을 확대하기 위해 근본적 개편이 필요한 적용대상과 사전 요건에 대한 개편은 포함하지 않아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용유지의무 요건도 근로자 수 기준이 아니라 신축적 운영이 가능한 총급여 기준으로 전환돼야 4차 산업혁명의 기업환경에 적합할 수 있다.

최대주주할증 과세 개정안 관련, 중소기업 할증평가 폐지는 그동안 계속 적용을 면제해왔으므로 실질적 효과가 없을 것이다. 일반기업 할증 과세율을 20%로 단일화한 것은 현행 최대주주할증평가 과세율 30%가 비상장법인 외에는 적용 대상 사례가 거의 없는 점을 고려할 때, 이 개정안으로 일반기업의 할증 과세 세 부담 완화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부자증세만을 추구하던 현 정부가 이제라도 조금이나마 방향을 선회한 점은 다행이지만, 이번 세법개정안은 기업의 계속성 유지 및 국제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여전히 부족하다.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 최대주주 할증평가 폐지 등 실질적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한양대에서 조세법으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기획재정부 조세법령개혁팀 사무관을 거쳐 조세 이론과 실무에 두루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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