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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정의길 칼럼] 미국은 중동에서 밀려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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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쿠르드족 공격은 1979년 이란혁명 이후 미국의 중동정책인 이란 등 반미세력 봉쇄정책에 획을 그었다.

중동에서 이란의 영향력 확장, 터키-이란-아프간으로 이어지는 탈미 벨트 형성, 중국·러시아 등 경쟁국들의 진출 가속화가 진행되고 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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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시리아 쿠르드족 공격은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이후 미국의 중동정책에 획을 그었다. 40년 전 이란혁명을 지금 끄집어내는 것은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 등 현재 중동분쟁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이란혁명은 중동의 세력균형을, 미국의 중동정책을, 그리고 중동분쟁의 성격을 바꾸었다.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아랍 대 이스라엘이라는 중동분쟁이 1979년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 체결로 김이 빠질 때 미국의 최대 동맹국 이란에서 이슬람혁명이 일어났다. 미국의 중동정책은 이란으로 대표되는 반미세력 봉쇄 및 타도로 바뀌었다. 이는 이후 중동분쟁의 방아쇠가 됐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이 이란을 침공했고,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지원에 나섰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전쟁 때 국방장관으로 주역이던 도널드 럼스펠드가 특사로 파견된 1982년 전후로 미국은 이라크에 2억달러의 군수지원을 했다. 1988년 2월까지 진행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장기 정규전은 이란혁명만 공고히 하고 후세인 정권을 빚더미에 올려놓았다. 반혁명 전쟁의 총대를 멨던 후세인은 사우디와 쿠웨이트로부터 빚 독촉만 받자, 1990년 8월 쿠웨이트를 전격적으로 점령했다.

최대 석유수출국 사우디까지 위태롭자, 미국은 다국적 연합군을 조직해 1991년 2월 쿠웨이트를 탈환하는 걸프전을 주도했다. 분쟁의 씨앗이 여러개 더 심어졌다. 걸프전은 반미 이슬람주의 세력을 자극했고, 미군의 사우디 주둔에 격분한 오사마 빈라덴은 반미 투쟁에 나섰다. 걸프전 때 미국은 이라크 내의 쿠르드족과 시아파를 선동해 봉기시킨 뒤 모른척했다. 후세인은 화학무기로 쿠르드족을 몰살했다.

이란과 이라크의 이중 봉쇄가 미국 중동정책의 근간이 됐다. 빈라덴은 알카에다를 조직하고 2001년 9·11 테러를 감행했다. 미국은 알카에다보다도 후세인 정권 타도를 먼저 생각했다.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정보를 조작하면서까지 미국은 2003년 이라크 침공을 감행했다. 후세인 정권 타도는 미국 네오콘들이 꿈꾸었던 중동에서 친미 자유민주주의 질서 전파가 아니라, 거대한 세력공백을 낳았다.

후세인 정권은 반미였으나, 이슬람주의 세력과 이란을 견제하던 역할을 했다. 그런 후세인 정권이 몰락하자, 알카에다 등 이슬람주의 세력이 이라크에서 부활하고, 이란의 영향력이 커졌다. 이라크전쟁이 수렁에 빠진 2010년 12월 ‘아랍의 봄’으로 시리아에서는 2011년부터 내전이 발발했다. 미국과 사우디는 반미세력인 바샤르 아사드 정권 제거에 나서 반군을 지원했으나, 그 지원은 이슬람주의 세력인 이슬람국가(IS)의 탄생만 낳았다.

이슬람주의 세력을 막고 중동에서 세력균형의 추 구실을 하던 아사드 정권 약화가 초래한 상황이었다. 이슬람국가와 맞서 싸울 주력이 없었다. 이슬람국가가 더 위급한 적임을 뒤늦게 깨달은 미국은 시리아의 쿠르드족을 무장시킨 시리아민주군(SDF)을 조직해 이슬람국가를 격퇴했다.

시리아 쿠르드족의 득세는 쿠르드족이 흩어져 살고 있는 터키·이란·시리아·이라크 모두에게 위협이다. 이라크전쟁으로 성립된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가 2018년 말 주민투표를 통해 분리독립을 선언하자, 이라크 정부는 이란과 터키의 지원을 받고 자치정부를 침공해 영토의 40%를 점령했다. 최근 터키의 시리아 쿠르드족 공격의 서곡이었다.

이란혁명 이후 미국의 중동정책은 무슨 결과를 낳았나? 첫 목적이던 이란의 영향력 봉쇄는 실패했다. 이라크에서 시아파 정부가 들어서고, 시리아의 아사드 정부는 회생했고, 예멘 내전에서 시아파인 후티 반군은 사우디의 안보를 위협하고, 이란은 미국이 파기한 이란국제핵협정을 놓고 페르시아만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무엇보다도 중동에서 미국의 지정학적 입지가 위축됐다. 중동의 핵심지역인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시리아 및 이라크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증발하고 있다. 시리아 내전 과정에서 러시아는 중동으로 귀환했고, 미국을 밀어내고 시리아 내전의 중재역을 자임한다. 미국의 경고에 코웃음 치며 쿠르드족을 공격한 터키의 탈미화는 더 심각한 문제다. 터키-이란-아프가니스탄으로 이어지는 탈미 벨트는 중국과 러시아 등 미국의 경쟁국들의 중동 및 인근 지역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지금 미국은 중동에서 밀려나고 있다. 이것이 ‘이라크전쟁 이후 미국은 중동 수렁에서 벗어나 중국 부상 저지에 국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미국 조야 합의의 구현은 아닐 것이다.

한겨레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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