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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축산과 환경이 공존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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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지역 애물단지로 전락한 돼지농장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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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돼지열병을 앓는 접경 지역의 경기도 연천을 찾았다. 돼지도, 사람도, 마을도 심하게 앓고 있었다.

10월9일 한글날, 연천으로 들어서자 도로 곳곳에 설치된 분무기가 자동차를 세웠다. 전곡리 선사유적지는 연천을 대표하는 관광지. 쪽빛 하늘이 빛나는 절정의 가을 휴일이었지만 주차장은 한산했다. 초입에 설치된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으로 연천고려인삼축제를 취소했다’는 펼침막이 아픔을 전하고 있었다.

손님이 4분의 1로 줄었다



이곳 방문자센터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서성철씨는 “봄·가을 두어 달 장사로 1년을 먹고사는데 아프리카돼지열병 때문에 손님이 4분의 1로 줄었다”고 울상을 지었다. 인삼축제와 농특산물큰장터, 국화축제는 물론이고 마을 단위로 벌이는 체육대회까지, 연천군에서만 크고 작은 행사 60여 개가 취소됐다. “축제 구경을 겸해 연천을 찾던 단체손님은 모두 예약을 취소했고 개인 손님만 드문드문 찾는다”고 했다.

농촌 체험 프로그램과 숙소를 운영하는 푸르내마을의 사정은 더 심각했다. 양갑숙 사무국장은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 소식이 매스컴에 뜨면서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면서 “가을 성수기엔 하루 300~400명 손님을 받았는데, 불과 20일 사이에 초·중·고생 단체손님 등 2300여 명 예약이 취소됐다”고 하소연했다.

연천 지역 돼지를 100% 솎아낸다는 소식을 놓고는, 주민들 반응이 엇갈렸다. 양 사무국장은 “돼지 농가의 경제적 손실이 가장 클 텐데 그분들 심정은 오죽할까 걱정이 앞선다”고 진심으로 동정했다. 돼지농장이 지역 애물단지로 전락했다는 경고음도 높아지고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주민은 “차제에 돼지농장이 마을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평소 고약한 악취를 마을로 뿜어내고, 잊을 만하면 구제역이나 아프리카돼지열병 같은 질병을 일으켜 지역 관광산업을 파탄 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를 극복하더라도 기존 농장의 돼지 재입식을 제한해야 한다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었다.

양돈업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커진다. 한 농장주는 “내 농장의 방역과 청결은 내 돈을 써서 내가 지킨다는 생각을 이제 분명히 해야 한다”면서 “정부 지원에 기대면서 마을에 피해를 끼치는 지금 방식의 축산업은 지속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농업정책 민간 싱크탱크인 지에스앤제이(GSnJ)의 이정환 이사장은 “2001년 600만 마리 살처분을 겪은 영국 구제역 재앙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영국은 구제역 사태로 인한 농업생산 피해액이 9억파운드에 그친 반면, 관광 부문의 직접 손실액이 30억파운드로 그 3배가 넘는 것으로 추정했다. 살처분 보상금과 방역에 투입한 정부 예산도 24억파운드나 됐다. 영국은 우리의 농림축산식품부와 환경부를 통합해 환경식품농무부(DEFRA)를 출범시켰으며, 농축산업이 환경에 끼치는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더 크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이 이사장은 “이제는 축산도 고기를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환경·생태와 공존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면서 “영국과 네덜란드는 구제역을 겪은 뒤 돼지 사육 마릿수가 늘지 않도록 관리하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2001년 구제역 사태 때 700만 마리까지 줄어들었던 돼지 사육 수를 다시 1100만 마리 이상 넘어서도록 방치한 정책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아프리카돼지열병 위기를 너무 많은 돼지 사육으로 인한 우리 땅과 물의 환경 피해를 줄이는 기회로 삼을 것”을 주문했다.

연천=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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