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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파리바게뜨 보며 걸었던 기대 도로공사 보며 무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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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집권 초 파리바게뜨 불법파견에 신속 대응했던 정부

판결까지 나온 현대기아차·도로공사 직접고용 외면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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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불법파견의 피해자들이 있다. 한국지엠(GM) 사내하청 노동자는 8월25일부터 한국지엠 본사 앞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요금소) 수납원들은 경북 김천 도로공사 본사 점거농성을 9월9일부터 이어가는 중이다. 김수억 전국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장은 9월13일까지 47일 동안 단식농성을 하다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이 노조 조합원 13명은 서울노동청 점거농성을 하다 10월2일 경찰에 연행됐다. 이들은 모두 불법파견의 시정과 직접고용을 요구한다. 대법원이나 하급심에서 이들이 근무하는 공정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이미 받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농성은 계속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첫 고용노동부 장관인 김영주 전 장관은 2년 전,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불법파견 판정과 직접고용 시정지시 이후 쏟아지는 경영계의 비난에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정면돌파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기업·공공부문의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에 대해 원청기업이 공동 사용자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며 “불법파견이나 위장도급 판정시 즉시 직접고용(고용의제) 제도화”를 약속했다.

문 대통령 ‘노동 존중’ 약속은 어디로



집권 3년차인 지금,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공공기관에서, 게다가 대법원 판결까지 나온 도로공사 톨게이트 수납원 모두를 직접고용하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들에 대해 “없어지는 직업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느냐”고 말해 분노를 샀다. 법원이 ‘불법파견’ 판단 기준을 판결로 지속해서 넓혀가는 사이, 고용부는 직접고용 시정지시에서, 검찰은 수사·기소에서 법원 판결에도 못 미치는 모습을 보인다.

근로기준법 제9조 “누구든지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장사’를 하지 못하게 금지하는 조항이다. 그러나 이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다. 파견법은 실제 근로계약을 하고 임금을 받는 사용자(파견사업주)가 아닌, 다른 사용자(사용사업주)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한다. 대신, 파견 허용 업종을 제한하고 파견 허용 직종이 아닌 업무(대표적으로 제조업)에 노동자를 파견받아 쓰거나, 파견 허가를 받지 않은 업체에서 노동자를 파견받거나, 파견노동자를 2년 이상 사용하는 경우 불법으로 본다. 불법파견이 되면, 사용사업주에게 직접고용 의무가 생기고 형사처벌도 받는다.

소극적으로 변한 고용부



기업들은 인건비 절감 등을 목적으로 파견노동자를 쓰면서도, 명목상 자신들의 일부 공정을 하청업체에 외주화하는 도급계약으로 위장한 ‘위장도급’ 계약을 맺기 시작했다. 자동차 생산공장에서 왼쪽 바퀴는 정규직이, 오른쪽 바퀴는 하청노동자가 조립하는 것이 대표적 예다. 이는 2000년대 초반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를 중심으로 제기되기 시작해 ‘사회문제화’됐다. 경영계는 파견과 도급을 구분하기 어려운데도 불법파견 사용자를 처벌하는 조항이 위헌이라는 주장을 했지만, 2013년 헌법재판소는 “근로자 파견, 도급과 같은 간접고용은 개별 사용자에게는 단기적으로 노무관리의 편의성 증진과 인건비 절감 효과를 주지만 (중략) 개별 근로자에게는 정규직 근로자와 같은 일을 하면서도 그보다 낮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받고 신분이 불안정한 등 여러 가지 불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며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법원 역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낸 대부분의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노동자들 손을 들어주며 불법파견의 법률상 해석 범위를 넓히고 있다.

불법파견 노동자들의 투쟁과 법원의 전향적 판단에 의거해, 문재인 정부는 정권 초기만 해도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이는 것처럼 보였다.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불법파견 사건이 대표적이다. 파리바게뜨 가맹점에서 일하던 제빵기사는 가맹점도, 가맹본부(파리바게뜨·법인명 파리크라상)도 아닌 제3의 용역업체에 고용됐지만, 실질적인 지휘·감독은 파리바게뜨가 했다. 2017년 6월27일 <한겨레>가 불법파견 의혹을 처음 보도한 뒤, 7월11일 고용노동부는 대규모 근로감독에 착수해 9월21일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한 뒤 제빵기사 5378명을 직접고용하라고 시정지시했다. 문제 제기부터 고용부의 시정지시까지는 단 석 달, 문제의 노-사-가맹점주 합의로 ‘해결’까지 걸린 시간은 6개월 남짓이었다.

파리바게뜨뿐 아니라, 아사히글라스(178명)·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325명) 등 제조업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해 직접고용 시정지시를 내렸다. 이는 경영계에 강력한 ‘경고사인’이 됐다. 제조업이 주력인 대기업 지주회사 관계자는 “당시만 해도 정부 정책에 따라 사내하도급 운영 자체가 안 될 것으로 예상했다. 고용부의 대규모 근로감독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판단이 들어 공정 전반을 개선했다. 그런데 정부 기조가 오래가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정부가 어떻게 달라졌다는 것일까? 현대·기아자동차의 대부분 사내하청 공정은 법원에서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대법원·하급심 판결이 10차례 넘게 나왔다. 가장 최근인 10월11일 서울중앙지법은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이뤄지지 않는 간접공정도 불법파견으로 인정하면서, 기아차 공장에서 이뤄지는 대부분 사내하도급이 불법파견으로 인정된 셈이다. 그러나 현대·기아차는 소송을 낸 원고만 직접고용하거나, 근속과 임금 차액이 인정되지 않는 방식으로 ‘특별채용’을 해왔다.

고용부가 기아차에 직접고용 시정지시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투쟁이 시작된 지 15년 만이자, 서울고법이 근로자지위확인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지 2년7개월 만인 지난 9월30일, 기아차 화성공장 협력업체 160곳의 노동자 860명을 직접고용하라고 기아차에 시정지시했다. 문제는 이 기준이 그동안의 법원 판결보다 매우 축소된 ‘직접공정’에 한정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직접고용 대상자 대부분이 이미 특별채용돼, 직접고용 지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이들은 150여 명에 불과하다. 고용부는 “검찰이 직접공정만 파견법 위반으로 기소했기 때문에 이 기준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고용부의 그동안의 방침과 대비된다. 2018년 7월 고용부는 검찰에 파견법 위반 수사 결과를 송치하던 시점에서 한국지엠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불법파견으로 판정하고 직접고용 시정지시 했다. 검찰은 아직도 한국지엠 파견법 위반을 수사하고 있다. 기아차에는 ‘검찰 기준’, 한국지엠에는 ‘고용부 기준’으로 시정지시를 한 것이다. 파리바게뜨나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에 시정지시를 할 때는 검찰 기소도, 법원 판결도 없이 고용부가 직접 판단해 결정을 내렸다.

무엇보다 고용부는 2018년 10월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고용부의 중재 노력을 소개하는 보도자료를 내면서 “법원 판결 기준에 따라 당사자 확정을 위한 조사를 토대로 직접고용 명령을 진행해나갈 예정”이라고도 밝혔다. 이 기준에 따르면, 법원이 대부분의 사내하청 공정을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한 이상, 고용부는 해당 공정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라고 시정지시를 하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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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검찰



도로공사에 이 원칙을 적용하면, 톨게이트 수납원 가운데 당사자를 확정해 고용부가 직접고용 시정지시를 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자회사 고용을 고집하던 도로공사는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의 ‘중재’로 한국노총 톨게이트노조와만 합의했는데, 그 내용은 근로자지위확인소송 1심·2심에서 승소한 이들을 직접고용하겠다는 것이었다. 합의에 반대한 민주노총이 “모두를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박홍근 을지로위 위원장은 “단 한 번의 판결도 받지 않은 분들까지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민주노총 요구는 국민의 이해를 받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의 말은 고용부 방침을 없던 일로 만들고, 모두 소송을 내라는 취지에 불과하다. 탁선호 금속노조법률원 변호사는 “고용부의 직접고용 시정지시는 불법파견의 피해자인 노동자들에게 효율적인 수단으로, 법률상 행정지도에 해당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검찰 수사와 관련이 없다”며 “고용부가 소극적으로 나오면서 판결에 수년이 걸리는 소송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무리한’ 수사로 개혁 대상으로 호명되는 검찰은 불법파견 사건에서 ‘소극적’인 수사로 일관하고 있다. 울산지검은 2010년 현대차에 대한 불법파견 관련 첫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5년 만인 2015년, 윤갑한 현대차 당시 대표이사를 파견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인정한 현대차의 ‘상시 도급’은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봐 기소하지 않고 일시·간헐 도급만 기소했다. 이마저 기소된 지 4년이 다 돼가지만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근로자지위확인소송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이유로 재판이 미뤄져, 윤 전 대표이사는 단 한 번도 법정에 서지 않았다.

정권이 바뀐 지금도 검찰은 달라지지 않았다. 수원지검은 7월 기아차 화성공장 불법파견 혐의에 대해 기소했으나, 법원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던 간접공정 노동자들은 빼놓고 기소했다. 반면 검찰은 노조파괴 혐의로 삼성전자서비스를 기소하면서, 고용형태를 불법파견으로 봐 파견법 위반까지 함께 기소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근로자지위확인소송 1심에서 패소했는데, 이를 뒤집었다. 기아차에 대해선 민사소송 판단 기준보다 못한 기준으로 기소하고, 삼성전자서비스에는 민사소송 판단보다 엄격한 수준으로 기소했다.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또 그 시기가 언제냐에 따라, 검찰이 수사와 공소권을 남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충분히 가능하다.

고용부·검찰 손놓은 새 노동자 해고 위협



심지어 검찰 내부에선 불법파견을 ‘비범죄화’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불법파견을 판단하기 어려운데 형사처벌까지 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경영계 논리와 흡사하다. 5월24일 대검찰청과 노동법이론실무학회 주관으로 열린 ‘사내도급 및 파견의 법적 쟁점’ 토론회 자료집을 보면, 박선민 광주지검 검사는 “형사책임은 강력한 수단인 만큼 훨씬 강화된 기준에 의해 인정돼야 한다”며 “민·상사법 영역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곧바로 형벌 부과라는 수단을 꺼내드는 것은 성급한 결단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주장에 김기덕 법률사무소 새날 변호사의 반박은 이렇다. “2010년 7월 현대차 불법파견에 대한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검찰은 파견법 위반으로 수사해 기소하지 않았다. 수많은 사업장이 불법파견으로 방치돼왔는데,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했다면 근절할 수 있었다. 법이 부여한 소임을 다하지 않은 채 비범죄화를 말한다면 법 집행 의지만 의심받을 수 있다.”

형사처벌에 소극적인 검찰로 인해 기업들은 불법파견을 시정할 이유가 없고, 고용부가 검찰 기준을 따라 직접고용에 소극적으로 나선다면, 노동자 처지에선 수년이 걸리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 말고는 권리를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 노조를 만들어 원청과 교섭해 해결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막혀 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가입한 금속노조가 지난해부터 지난 4월까지 원청업체인 현대·기아차, 현대제철 등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청하고, 이에 응하지 않자 중앙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했으나, 중노위는 6월 원청업체들이 “노조법의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실상 각하했다. 탁선호 변호사는 “2017년 현대·기아차 불법파견에 대한 항소심 판결 이후, 고용부가 행정 권한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시정지시를 하고, 하청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교섭할 수 있도록 중노위가 적극적으로 인정해줘야 했다. 정책 방향이 그렇게 돼야 불법파견 문제가 사회적 갈등과 비용, 시간을 최소화하며 해결될 수 있었다. 그러나 고용부는 대기업 눈치를 보고, 검찰이 정치를 하면서 최악의 상황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사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해고 위협에 시달린다. “불법파견이라고 판정이 난 공정은 정규직화해야 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그 자리에 정규직을 배치하고 있다. 고용부가 손놓고, 검찰이 늑장 수사를 하면서 비정규직만 잘리는 꼴이다. 문 대통령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한다고 했고, 법원에서도 이겨 많이 기대했는데 문제 해결이 장기화되고 있다.” 황호인 금속노조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 지회장의 말이다. 지금 상황이라면 고공농성이 또 해를 넘길 가능성이 커 보인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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