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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기자가만난세상] 강렬했던 이웃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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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한 이 시대의 아파트 주민이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고, 서로 피해만 안 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원래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는데 바쁘게 살며 아침에 집을 나섰다 밤에 들어오는 삶을 반복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갇힌 공간 안에서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지키며 사는 아파트라는 주거형태가 이를 강제한 면도 있는 듯하다. 아마 많은 이들이 비슷한 아파트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세계일보

서필웅 문화체육부 기자


그러다, 어느 날 아래층 사람의 얼굴을 알게 됐다. 층간 소음 갈등으로 생긴 사소한 오해가 원인이었다. 쿵쾅거리는 소음에 참다못한 아래층 남자가 우리집 초인종을 눌렀던 것. 나보다 살짝 어린 또래의 키 큰 남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주저주저하더니 아이가 뛰어다니는 소리가 시끄러워 직접 자제를 부탁하러 왔단다. 우리집도 아이가 있다보니 처음에는 오해가 있었지만 대화를 하다보니 소음이 난 곳은 다른 집이었다. 서로 민망해진 상황에 쭈뼛거리며 헤어졌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이사 온 지 3년여 만에 처음 아래층 사람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인간의 감각이란 게 참 묘하다. 이후 엘리베이터나 아파트 단지 길에서 그가 자주 눈에 띈다. 이전에는 엘리베이터나 길에서 마주쳐도 존재조차 인식을 못했을 텐데 이제는 얼굴을 알기에 신경이 쓰인다. 아마 상대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서로 눈치를 보며, 마치 모르는 사람인 듯 스쳐간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좋지 않은 감정으로 첫 만남을 했기 때문이다. 그 어색함이 아직도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이 글을 쓰고 있다. 아마 내일이나 모레 다시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치더라도 여전히 어색하게 모른 척하고 지나칠 가능성이 크다. 무려 아랫집이라는 정말 가까운 이웃임에도 어찌하다 보니 이렇게 불편한 관계가 됐다.

만약 이런 좋지 않은 일로 첫 만남을 한 것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 처음 이사 갔던 날은 아직도 기억난다. 한여름 골목 사람들이 골목길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음식을 나눠 먹으며 웃고 있었고, 이사 온 우리 가족은 수박 한 통을 사들고 끼어들어 어울렸다. 웃으며 시작한 첫 만남이었다. 그 골목에 10년쯤 살았는데 오래 살다 보니 얼굴 붉힐 일도 있었지만 갈등은 금세 풀어졌고, 무엇보다도 불편함이나 어색함 따위는 전혀 없었다. 처음 만날 때 웃으며 만났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아래층의 그와도 웃으며 처음 만났다면 좀 달라졌을 것이다. 사소한 오해도 금방 풀렸을 것이고, 어쩌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책도 찾았을지 모른다. 장막을 치고 사는 이 시대의 삶에 너무 익숙해져 이웃과의 대면을 주저하다보니 결국 좋지 않은 일이 터졌을 때에야 처음 얼굴을 맞대게 됐고 이 지경까지 왔다. 이제는 내 삶의 공간에서 마주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어색하지만 인사를 좀 해야 할 듯하다. 제아무리 서로 장막을 치며 살아가는 것이 요즘 세태라지만 적어도 첫 인사만큼은 웃으면서 하는 것이 좋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다음에 만나면 아래층의 그에게도 불편하지만 목례라도 해야겠다. 용기를 좀 내야 할 듯하다.

서필웅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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