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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태평로] 법무장관의 작별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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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퇴임사 속 '국민 여러분!'… 그 느낌표와 흑백 영상, '프사' 변경

조국스러운 낯 뜨거운 연출… 검찰 출두해 진짜 불쏘시개 되길

조선일보

한현우 논설위원


지난 주말 지하철을 탔는데 어느 역에서 두 중년 남자가 올라타더니 그중 한 사람이 임신부 배려석에 덜컥 앉았다. 다른 사람이 "야, 거기 임신부 자리야" 하고 타박하니까 앉은 사람이 대꾸했다. "야, 조국이 장관인데 임신부 자리에 좀 앉으면 안 되냐?" 그 소리에 열차 안 사람들과 함께 키득거렸는데 뒷맛이 썼다. 국민은 노약자 보호석에 앉는 것조차 죄의식을 느끼면서 사는데 권력자들은 어떻게 하면 더 가질까, 내놓지 않을까만 궁리하는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퇴임사에서 유독 거슬리는 것은 "국민 여러분!"이라고 느낌표를 써가며 세 번이나 국민을 외쳐 부른 것이었다. "팬 여러분!"이라고 했다면 모를까, 그는 국민을 향해 그렇게 비장하게 연설할 처지가 아니었다. 느낌표를 표창처럼 날리며 퇴장하려는 그의 의도는, 그간 지겹도록 봐온 낯 뜨거운 연출들을 생각해 보면 참 '조국스럽다'고 할 수밖에 없다. '국민 여러분' 뒤에 마침표가 아니라 느낌표를 찍으면 비장하고도 쓸쓸하게 보이겠지… 가만있자, 퇴임하면 프로필 사진으로 뭘 쓸까, 이런 궁리를 하고 있었을 사람이다. 그의 표현대로 "온 가족이 만신창이"가 됐는데 가장인 그만 멀쩡해 보인다. 쓸쓸한 흑백 영상까지 알뜰하게 남기고 퇴임 직후 서울대에 칼같이 복직 신청, 페이스북에 바로 법무부 장관 경력을 써넣는 걸 보면 말이다.

그는 "검찰 개혁이 궤도에 올랐다"며 그건 자신이 "필생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자화자찬했다. 국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노숙 농성을 하고 너도나도 이민 가겠다고 하고 이러다가 필시 암에 걸릴 것 같다고 아우성치는데, 그 어려운 검찰 개혁을 궤도에 올리느라고 미안하지만 물러나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 정도 대단한 개혁이라면 검찰총장직을 없애고 검사들은 검찰청 아니라 법무부에서 경찰이 보내온 수사 자료에 결재하는 수준의 엄청난 일을 벌이려는 줄 알았다. 그런데 눈에 띄는 개혁안이란 게 특수부 축소하고 심야 조사 금지, 하루 12시간 이상 조사 금지 정도다. 이미 검찰에서 하겠다고 발표한 것들이다. 그런 개혁안을 만드느라고 온 국민의 욕을 두 달 동안 먹어가며 그 자리를 지켰다는 얘기다. 게다가 검찰개혁추진단장은 "조국을 지켜라"라고 외쳐온 인물이다. 온통 자기편만 데려다 놓고 하겠다는 개혁의 요체가 뭔지 국민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는 서초동의 '조국 수호' 집회를 언급하며 "국민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견제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광화문에 모인 '선출된 권력에 대한 분노와 저항'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선출된 권력이 검찰총장을 임명했는데 검찰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고 칭하는 건 말장난일 뿐이다. 설령 그 말이 맞는다고 해도, 권력이 또 다른 권력을 개혁하겠다는 것은 말 잘 듣는 충견으로 만들겠다는 것임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멀리 돌아볼 것도 없이 이 정권 들어 방송 권력을 '개혁'했더니 지상파 TV가 헬기 띄우고 크레인 올려서 서초동 집회를 실시간 생중계하지 않았나.

조씨는 모든 것이 검찰 개혁 때문이었고 자신은 불쏘시개에 불과했으며 이제 역할을 다했으니 물러난다고 했다. 검찰이 조씨를 소환해 그간 제기된 모든 의혹을 명백히 조사하고 사법처리까지 마친다면 국민은 검찰이 달라졌구나 하고 느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국민이 생각하는 검찰 개혁이다. 조씨에겐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 검찰에 출두해 개혁의 진짜 불쏘시개가 되는 것이다.

[한현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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