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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東語西話] 좋아하면 필히 찾게 된다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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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원철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경전을 읽다 보면 수많은 이상형 인물을 만나게 된다. 불가에서는 보통 보살(菩薩)이라고 부른다.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대중의 인기가 몰리는 스타급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개인적으로는 '지혜로움'이라는 이미지로 가득한 문수보살을 가장 좋아한다. 조선시대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를 비롯해 많은 이가 자손들에게 문수라는 이름을 아낌없이 지어줄 정도로 팬층이 두껍다. '알면 좋아하게 되고 좋아하면 반드시 찾게 된다(知之必好之 好之必求之)'고 했던가.

문수보살을 좋아하는 20여명과 함께 가을의 길목인 9월 하순 중국 산시성(山西省)에 있는 오대산(五臺山) 문수 성지를 찾았다. 신라의 자장율사가 638년 다녀간 곳이다. 그뿐만 아니라 북위(北魏) 시대부터 황제가 즉위하면 오대산을 순례하는 것이 관례가 되다시피 한 북방 지역의 대표적 성소이기도 하다. 오고 가는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목적지에 도착한 후 산 이름처럼 다섯 봉우리만 한 바퀴 도는 것도 1박2일이 소요될 만큼 먼 거리다. 게다가 해발 3000m를 웃도는 높이 때문에 날씨는 수시로 변덕을 부렸다. 바람 혹은 눈비 때문에 예정된 순례 일정을 무사히 소화한다는 것 자체가 천운이 따라줘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날씨가 황제라고 봐줄 리는 만무하다. 청나라 건륭제(乾隆帝)도 즉위하면서 왕실의 관례에 따라 오대산을 찾았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폭설 때문에 순례를 결국 포기했다. 이듬해 다시 찾았으나 비바람 때문에 또 무위에 그쳤다. 3년 후 다시 올 테니 꼭 순례를 마칠 수 있도록 도력이 높은 스님께서 힘(?) 좀 써 달라는 청탁까지 남겼다. 천자(天子)의 청탁은 부탁이 아니라 내용은 어명이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날씨 때문에 고민이 깊어진 주름살 파인 노스님 앞에 천진난만한 동자승이 나타났다. 다섯 봉우리에 각각 머물고 있는 문수보살을 한자리에 모은다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옳거니 하고 무릎을 쳤다.

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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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스토리텔링을 안고 있는 오대산 입구의 대라정(大螺頂)은 글자 그대로 인산인해(人山人海)다. 암자의 작은 마당에는 건륭 황제가 직접 썼다는 비석이 우뚝하다. 여기만 다녀가면 오대산 다섯 봉우리를 모두 순례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황제의 보증서는 그 영험을 증명하고도 남을 만큼 당당하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황제도 걸어갔던 가파른 계단 길을 마다한 채 리프트를 타고 올라와 다섯 문수보살을 한자리에 모신 오방문수전(五方文殊殿)을 참배하고 있었다.

나랏일을 하건 생업에 종사하건 이유는 다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평민은 평민대로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역대의 황제들도 날씨도 날씨지만 갑자기 수도에서 온 급한 전갈을 받고 순례 도중 궁궐로 되돌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했을 것이다. 그런 일상의 분주함 속에서 성지순례까지 마치려는 지혜로움을 동시에 읽을 수 있는 여행길이었다.

올라올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내려갈 때도 여느 관광객처럼 삭도(索道)를 이용했다. 2인용 리프트카에 앉아 멀리 오대산의 다섯 봉우리를 두 눈으로 조망했다. 눈길은 이내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을 친견했다는 북대(北臺) 방향을 향한다. 율사의 흔적 따라 북대에서 중대(中臺)로 내려오는 길에 있는 태화지(太和池)까지 걸어갔던 15년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때는 두 발로 직접 다녀온 곳이다. 이제 내 일정도 세상 사람들만큼 덩달아 바빠졌나 보다.

[원철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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