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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설왕설래] 백마 탄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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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어제 조간 신문에 실린 사진들 중 가장 눈에 띈 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오른 모습이었다. 북한 매체가 공개한 사진에는 두꺼운 코트 차림의 김정은 뒤로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과 현송월 선전선동부 부부장 겸 삼지연관현악단장 등 수행원이 말을 타고 따르는 장면이 담겼다. 김정은이 눈 덮인 백두산 정상을 달리는 모습과 소나무가 우거진 오솔길에서 홀로 생각에 잠긴 사진도 있었다.

백마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백두혈통의 상징이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항일 빨치산 시절에 백마를 타고 전장을 누볐다고 선전해 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생전에 백마에 오른 모습을 자주 연출했다. 김정은도 마찬가지다. 3대 세습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다. 백마를 타는 특권은 김씨 일가도 누릴 수 있다. 김정은의 고모 김경희와 김여정이 나란히 백마를 타는 모습이 북한 조선중앙TV에 보도된 적이 있다.

김정은은 중요한 정치적 결단을 앞두고 ‘혁명의 성지(聖地)’ 백두산을 찾곤 했다. 2013년 2월 백두산에 오른 뒤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했고, 2017년 12월 이곳을 방문한 직후에는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 대화에 나섰다. 이번에는 백마까지 등장했으니 뭔가 큰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는다. 김정은은 현지에서 “미국 등 반공화국 적대세력이 강요해온 고통은 인민의 분노로 변했다”고 했다. 노동신문은 “최고영도자 동지(김정은)께서 백두산에 오르실 때마다 세상을 놀래우는 사변들이 일어났다”, “우리 혁명이 한 걸음 전진될 웅대한 작전이 펼쳐질 것”이라고 전했다.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은 ‘11월 대사변’을 언급했다. 김정은이 2017년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 발사 직후 백두산을 등정한 일을 가리킨 것이다.

김정은이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대화와 관련해 ‘모종의 결심’을 한 것일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새로운 계산법’을 내놓으라고 압박하는 것인가. 탄핵 정국에서 허우적거리는 트럼프가 당장 답을 내놓을 것 같지는 않다. 김정은이 미국과의 협상 시한으로 정한 연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

원재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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