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30 (화)

[오늘의시선] ‘설리의 비극’ 막으려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사회 폭력성의 발산 통로로 오용 / 댓글 선별적 활용하는 지혜 필요

또 한 명의 청춘이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특별한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불치의 병에 걸린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을 쳐다보는 차가운 시선, 자신에게 쏟아지는 가시가 돋친 말을 견디지 못하고 안타까운 선택을 하고 만 것이다. 가수이자 배우인 설리의 사망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비폭력의 폭력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건이다.

세계일보

김중백 경희대 교수 사회학


설리와 같은 연예인이 대중의 과도한 관심을 받는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설리의 죽음이 악성 댓글과 루머와 밀접한 연계성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우리 사회에 던지는 경종은 여느 연예인의 죽음과는 다소 다른 의미를 가진다. 설리를 죽음으로 몰고 간 악성 댓글을 올린 사람은 괴물도 아니고, 범죄자도 아니다. 아마도 일상생활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평범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며, 그렇게 모진 댓글을 달게 된 이유가 설리 개인에 대한 악감정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하고, 자신에게 피해도 주지 않는 연예인에 대해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인가.

악성 댓글 문화는 우리 사회 전반에서 발견되는 폭력성과 구분될 수 없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저서 ‘수용소’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현상은 단순히 그 사람의 품격이나 성격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와 수요에 의해 만들어진 구체적 환경의 결과”라고 주장한 바 있다. 사회가 분화되면서 나와 다른 의견이나 생활방식을 가지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문화적 전환기를 맞으며 개인의 권리 주장과 사회적 통합과 관용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개성을 혐오로 인식하는 사람이 점차 늘면서 악성 댓글은 물론 혐오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즉 일종의 아노미(무규범) 현상의 단면을 보이고 있기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렇듯 악성 댓글은 우리 사회 분노와 무질서의 배출구인 동시에 진영을 나누고, 편을 가르는 주요 사회적 기제가 되고 있기에 그 의미를 재고해 봐야 한다. 본디 댓글은 정보기술(IT) 문화가 급성장하던 2000년대 초 포털사이트 다음(Daum)의 ‘아고라’가 온라인 광장 역할을 하면서 확산하기 시작했다.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댓글은 시민의 사회 참여의식을 높이고, 각종 이슈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는 통로로 작용했다. 하지만 2019년 1월 ‘아고라’의 종료로 상징되듯 댓글은 온라인 공론장으로 작동하기보다는 점차 포털에 사람을 머무르게 하는 도구, 사회의 폭력성을 무비판적으로 발산하는 통로로 오용되고 있다. 실질적으로 댓글을 통한 합리적 의사소통과 토론을 기대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댓글이 가지는 부정적 측면을 깊이 깨달아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먼저 인터넷의 경우 댓글 기능이 활성화된 기사나 게시판을 운영하더라도 불필요한 논란을 가져오고 인격살인을 자행할 댓글 기능은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설리 기사에 달린 댓글이 시민의식을 고양하는 공론의 장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가이다. 특히 포털 중심으로 인터넷 문화가 형성된 우리 사회에서 포털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의 측면에서 댓글 기능은 꼭 필요한 기사나 게시물에 한정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기사나 게시물의 당사자가 원치 않는 경우 댓글 기능을 제한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이어 날로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악성 댓글이 작성되는 시점부터 적극 방지하는 기능을 도입하고, 악성 댓글을 남긴 사람에게는 포털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하는 권리를 박탈하는 지침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존중돼야 한다. 그렇다고 잘못된 행동을 방조해 평범한 사람까지 선동되도록 내버려둘 수만은 없다. 한 사람의 무책임한 댓글 한 줄이 타인의 인생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면 이는 더 이상 보호받을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모쪼록 댓글 본래의 의미와 역할을 고려해 선별적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 사회학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