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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현장에선] 고수익에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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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P(개인 간) 대출의 춘추전국시대를 꼽으라면 2년 전쯤일 게다. P2P 대출이 핀테크(금융+기술)의 대표주자로 국내 시장에 소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온라인 플랫폼으로 투자금을 모아 필요한 이에게 빌려주기 때문에 빌리는 사람은 낮은 금리로, 빌려주는 사람은 은행 예·적금보다 높은 이자를 받고 거래할 수 있어 이상적이었다. 온라인으로 쇼핑하듯이 간단하게 상품을 고르고 투자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2017년 말 한국P2P금융협회 회원사의 누적대출액은 전년도에 비해 4배 가까이 증가했다. 폭발적 성장이었다.

세계일보

백소용 경제부 차장


단순한 신용대출과 부동산담보대출에서 출발했지만 시장이 커지면서 기상천외한 상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신용도를 알 수 없는 채권을 쪼개 재결합해놓고 ‘안전한 분산투자’라고 포장한 구조화상품이 나오더니, 골드바를 담보로 연 10% 넘는 금리로 돈을 빌리겠다는 상품, 비트코인을 담보로 연 20% 금리로 돈을 빌리겠다는 상품까지 나왔다. 상식에 맞지 않았다. 돈이 필요하다면 골드바는 그냥 팔면 될 것이고, 비트코인은 가격이 올라간다고 확신하고 담보로 내준다 치더라도 이자가 너무 비쌌다. 굳이 비교하자면 주식을 담보로 받는 주식담보대출의 금리는 연 10% 안팎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플랫폼이 생겨나던 확장의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일부 플랫폼이 대출을 연체하기 시작하더니 소리소문 없이 문을 닫았다. 골드바는 가짜였고, 비트코인 담보대출은 가상화폐의 가격 폭락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허위 대출과 자금 ‘돌려막기’, 투자금 횡령 등의 피해가 잇따랐다. 비상식적으로 보였던 상품을 내놨던 플랫폼 관계자들은 결국 대부분 사기 등의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그렇게 P2P 업계는 한바탕 몸살을 앓고 수많은 피해자를 남긴 뒤 이제야 제도권 안착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애초에 금융업과 같은 엄격한 규제를 받지 않던 P2P업계와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금융권에서 춘추전국시대를 맞은 분야가 사모펀드 시장이다. 2015년 정부가 사모펀드 운용사 진입요건과 투자 최소금액을 낮춘 뒤 사모펀드는 공모펀드를 누르고 2배 가까이 성장했다. 전문사모집합투자업자(사모운용사)도 규제 완화 전보다 3배 가까이 급증했다.

고수익을 추구하며 고액 자산가에게만 열려 있던 사모펀드는 마법의 상품으로 여겨졌다. 공모펀드보다 정보가 제한적이고 폐쇄적인 비밀스러움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부 사모펀드의 고수익이 알려지면서 투자 문턱까지 낮아지자 투자금이 대거 몰려들었다.

하지만 고수익에는 그에 상응하는 위험이 따른다는 점은 간과됐다.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의 대규모 손실 사태, 1위 사모펀드 운용사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환매중단 사태는 시작일지 모른다. 두 사건이 일어난 배경과 양상은 다르지만 원인은 비슷하다. 당장의 판매를 위해 수익률만 강조하고 위험은 관리하지 못한 것이다. 운용사는 고객보다는 ‘밥줄’을 쥔 판매사 눈치를 보고 이들의 입맛에 맞게 상품을 개발했다. 이 관행을 끊는 것이 사모펀드 시장 전체를 살리는 길이다.

백소용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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