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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기고]남북 분단 민족사의 마지막 남은 과제 ‘여순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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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두 달 후인 10월19일부터 27일까지 전남 여수·순천에서 피비린내 나는 학살극이 벌어졌다. 오는 19일은 그 비극이 일어난 지 71주년이 되는 날이다.

경향신문

수많은 민간인이 아무런 재판도 없이 초등학교 운동장이나 해안 절벽, 산기슭에서 처형됐다. 모두 ‘빨갱이’로 몰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누가 죽었는지, 누가 죽였는지, 왜 죽어야만 했는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진실’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심지어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여수·순천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눈총을 이 지역 사람들은 대놓고 받아야 했다.

이 같은 특정 지역 따돌림은 ‘사회적 천형’으로 남아 아직도 아픈 생채기를 남기고 있다. 그래도 그날의 행적들이 이제 ‘여순항쟁’으로 재평가되고 있어 다행스럽다. 여순항쟁은 ‘대구 10월’(1946년)과 ‘제주 4·3’(1948년), 4·19혁명, 부마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등과 역사적 고리로 이어져 있다.

여순항쟁은 제주 4·3과 더불어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 무력봉기이자 대중운동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제주 4·3이 없었으면, 여순항쟁도 없었다. 여수 주둔 14연대가 이승만 정부의 제주도 진압명령에 반기를 들지 않고 그대로 제주로 건너가 학살명령을 실행했다면, 정부군의 대규모 초토화 작전에 따른 그 아픈 ‘여순항쟁’은 없었을 것이다. 또 14연대의 단독선거·단독정부, 분단거부운동을 지역사회가 수용하지 않았더라면, 14연대가 지역사회와 결합하지 않고 지리산으로 바로 입산했더라면 단연코 ‘여순항쟁’은 없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제주 4·3의 주장이 정당한 것이라면 여순항쟁도 정당한 것이며, 5·18의 진압이 부당한 것이라면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여순항쟁은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여순항쟁의 진실을 외면하다 ‘동포 학살’이라는 국가 공권력의 일탈을 다시 보게 됐다. 여순항쟁 발발 32년 후인 1980년, 광주시민을 학살하라는 부당한 명령에 복종한 군대가 광주를 처참히 유린했다. 바로잡지 못한 역사가 반복된 것이다.

‘그날의 여순’을 언제까지 놔둘 것인가. <이충무공전서>를 보면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란 말이 있다.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는 뜻이다. 임진왜란 당시 여수·순천은 이충무공과 더불어 왜적에 포위된 채 병기, 병참, 병력 일체를 자급자족하며 임진왜란 7년을 죽기살기로 싸운 ‘구국의 성지’다. 그때 이곳 목을 지키지 못하였다면, 오늘의 대한민국 존재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여수·순천은 그런 자부심과 애국심으로 여순항쟁에 참여했다. 그런 시민들을 ‘킬링필드’나 ‘동티모르 학살’처럼 야만적으로 학살했다. 무려 1만1131명(1949년 집계)이 희생됐다. 당시 미 군사고문단 한 명은 “여순 진압은 약탈과 강간이었으며, 의심할 것도 없이 이 과정은 가장 난폭한 꿈이 이루어지듯이 진행됐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여순사건특별법은 16·18·19대에 이어 20대 국회에 4번째 상정됐다. 2019년 1월3일 현재, 5개 법안이 139명의 의원 동의로 발의됐다. 그러나 최초 발의에서부터 2년6개월째 행안위에서 잠자고 있는 중이다. 71년 통한의 세월 동안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조차도 애써 외면하는 것은 나라의 도리가 아니다.

이제 남북 분단의 마지막 남은 민족사의 금기요, 과제가 여순항쟁이다. 제주 4·3은 2000년 특별법이 제정되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되는데, 왜 여순항쟁은 특별법 제정이 안되는가. 여순은 제주 4·3의 연장선에서 발생한 역사인데도 말이다. 민족공동체가 여순을 제대로 기억하고 기념했더라면 이렇게 사회적 천형처럼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족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 첫걸음을 여순사건특별법 제정에서 출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영일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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