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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세상읽기] 드립 커피의 잡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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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집안일을 잘 안 하는 필자지만 독점으로 담당한 일이 하나 있다. 아침 식사 후 커피 내리기다. 로스팅된 커피를 전동 그라인더에 넣어 입자가 굵은 분말로 갈아낸다. 종이 필터를 장착한 드리퍼에 커피 분말을 채워 95도 정도의 물로 뜸을 들인다. 잠시 후 주둥이 긴 주전자로 천천히 물을 부으며 내린다. 커피를 내리는 이 시간이 하루 중 리듬이 가장 느긋한 시간이다. 필자에게 커피 드립은 아침 반신욕과 함께 하루를 준비하는 의식처럼 되었다. 커피는 가끔 심장을 불규칙적으로 뛰게 하고 부정맥의 기운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런 것을 피하기 위해 커피가 주는 위안을 희생하고 싶지는 않다.

커피 필터는 섬유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대부분 종이 필터를 쓴다. 그런데 이 종이 필터에 커피 없이 물만 조금 부어 내려보면 종이 잡내가 난다. 어떨 때는 거슬릴 정도로 강하다. 이 잡내를 확인하고 난 이후로 절차가 하나 추가되었다. 커피 분말을 채우기 전에 필터에 뜨거운 물을 조금 통과시킨 다음 버린다. 잡내를 완화시키는 과정이다.

필자는 음식물에 방부제로 들어간 안식향산나트륨의 맛을 느낄 정도로 미각이 예민하다. 캔 음료에서도 안식향산나트륨을 느끼고, 샤부샤부 체인점의 우동 면에서도 감지한다. 이렇게 미각이 예민하지만 종이 필터의 잡내를 제거하지 않고 바로 커피를 내려도 잡내가 섞여 있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강한 커피향이 종이 필터의 잡내를 압도해버린다. 그래도 머릿속에 각인된 이미지 때문에 계속 잡내를 없애는 과정을 거친다. 굳이 필자처럼 커피를 채우기 전에 잡내를 없애는 유난을 떨 필요가 있을까. 커피집에서 드립 커피를 주문하고 드립을 하는 모습을 넌지시 지켜보곤 하는데, 지금까지 필자처럼 먼저 물을 부어 잡내를 제거하는 경우를 딱 한 번 보았다.

이런 게 드립 커피뿐이겠는가. 우리도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모두 종이 필터 같은 잡내를 안고 살아간다. 문명 시대를 살고 있지만 우리 신체는 수렵채집 시대에 어울리는 상태에서 크게 변하지 못했다. 우리가 고등 포유류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가 가진 잡내를 다소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성인 반열에 든 인물들은 대개 타인의 잡내에 대해 관대했다. 그들의 관대함은 아마도 자신 속에 존재하는 잡내에 대한 예민한 자각으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우리 몸에는 암세포가 쉴 새 없이 만들어지고 염증이 수시로 발생한다. 장속에는 유익균과 유해균이 공존한다. 유해균을 완전히 박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암세포는 정상 세포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고, 유해균은 유익균의 가치를 돋보이게 한다. 그들과 더불어 부대끼면서 인체의 항상성은 더 강화된다. 다양한 구성요소가 만드는 네트워크와 균형이 우리가 사는 복잡계를 더 강건한 시스템으로 만든다.

요즘 어떤 분의 잡내에 관한 이야기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그의 잡내 자체에 대해 한마디를 더하고 싶지는 않다. 옹호할 생각도 없다. 이해하기 힘든 건 그가 자신과 같은 부류의 잡내를 가진 다른 이들에 대해 오랜 기간 그토록 집요하고 가혹하게 비판해왔다는 사실이다. 그의 상품가치 상당 부분이 그런 과정에 힘입은 것이라 가치를 반납하는 과정이 더 혹독한 것 같다.

자신에 대한 관대함은 진화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형성된 인류의 불가피한 특성이다. 다만 이것이 타인에 대한 엄격함과 반드시 연결될 필요는 없다. 이 부분에 대한 지나침은 어리석음의 징후일 수도 있다. 버크셔해서웨이의 주주총회 무대에서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가 대화를 나눈다. 버핏: 유머 감각은 나보다 찰리가 더 좋습니다. 찰리는 유머 감각을 어디에서 얻는지 들어봅시다. 멍거: 세상을 정확하게 바라보면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터무니없으니까요.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주)옵투스자산운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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