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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집값 저격한다면서 대포 쏘나…민간 상한제 '핀셋 규제'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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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과열지구 등은 시·군·구 단위 지정

민간택지 상한제 동별 지정 계획

"공급 위축 부작용 해소" 기대하지만

되레 공급 부족 불안 더 키울 수도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중앙일보

국내에서 집값이 가장 비싸고 재건축이 활발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일대. 정부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시행하면 상한제 지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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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 등 공공택지 이외 지역에서 분양가를 건설 원가 수준으로 제한하는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범위를 줄이고 효과는 극대화하는 ‘핀셋 규제’의 진수를 보여줄까. 정부는 타깃을 최소화해 규제의 정밀도를 높인다는 계획이지만 후폭풍 우려도 크다.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민간택지 상한제 새 기준이 지난 11일 규제개혁위원회를 정부 안대로 통과했다.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를 거쳐 이달 말 시행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본다.

이번 민간택지 상한제는 상한제 적용 지역 단위를 줄인다는 점에서 앞선 주요 주택시장 규제와 차별화한다.

정부는 지난 8월 입법예고한 민간택지 상한제 기준의 보완방안을 발표하면서 “동(洞) 단위의 핀셋 지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른 주택시장 규제와 마찬가지로 상한제도 기초자치단체인 시·군·구 단위로 지정될 게 당연시됐었다.

정부는 “공급 위축 등 부작용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서 많이 지적했으나 정부는 부인하던 민간택지 상한제의 공급 위축 가능성을 일부 받아들인 셈이다. 상한제 지역 크기를 줄이면 그만큼 공급 위축 지역이 감소한다.

규제 탄력성을 높일 수 있는 이점도 있다. 빠르게 타깃을 조정할 수 있다.

적을수록 좋다는 규제 철학에도 맞다. 주택시장 규제 지역인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모두 관련 법에 ‘지정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범위로 한다’고 돼 있다.

‘최소한의 범위’라는 법률 명시에도 시·군·구 단위로 지정된 것은 1983년 처음 도입된 투기과열지구의 지정 기준을 따라서다. 투기과열지구 지정 권한이 시장·군수(당시 자치구가 생기기 전)에게 있었다.

2002년 만들어진 투기지역제도도 지역 단위를 시·군·구로 명시했다.

동별 지정은 다른 규제지역에도 훈풍을 가져올 수 있다. 시·군·구 단위로 시행 중인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투기지역에서 자치단체들이 그동안 요구해온 동별 지정 요구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것이다. 같은 시·군·구 내에서도 주택시장 편차가 크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의 동별 평균 아파트값 자료를 보면 서울 강남구 내 14개 동 가격이 3.3㎡당 3233만원에서 8026만원까지 최고 1.5배가량 차이 난다. 지난 6월 대비 가격 상승률이 동에 따라 0.6%에서 8.7%로 10배 넘게 편차가 크다. 2015년 이후 4년이 돼가도록 강남구에서 절반인 7개 동에서만 일반분양 물량이 나왔다.



조정대상지역 동별 지정 법안 발의



동별 지정을 담은 주택법 개정안도 국회에 올라가 있다. 조정대상지역의 하나인 경기도 남양주가 지역구인 김한정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조정대상지역 지정 단위를 시·군·구 아래인 읍·면·동으로 명시하는 주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투기과열지구 등 규제지역 기준을 동별로 바꾸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다. 현재 규제지역 지정의 공통 요건이 집값 상승률 통계다. 한국감정원이 현재 최소 시·군·구 단위로 주간·월간 가격 동향을 조사하고 있다. 조사지역이 아파트의 경우 전국 203개 시·군·구, 연립주택과 단독주택은 212개 시·군·구다. 전체 시·군·구는 226곳이다.

읍·면·동으로 지정하려면 읍·면·동별로 조사 표본을 대폭 추가해야 한다. 전국 읍·면·동이 3510곳이다. 한국감정원이 조사하는 표본을 현재 2만7502가구(아파트 1만6480가구 등)에서 6만가구가량으로 두배로 늘려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사 시스템을 다시 구축해야 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

한국감정원의 주택가격 동향 조사 시스템과 무관하게 민간택지 상한제는 동별 지정이 가능하다. 정부는 시·군·구 단위로 우선 상한제 ‘검토지역’을 고른 뒤 검토지역 내에서 정비사업 이슈가 있고 일반사업물량이 확인되는 동을 지정한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이런 동별 지정이 주택공급 불안을 더욱 부채질할 수 있다. 대출·청약자격·전매제한 등 수요억제 대책은 선별적이고 탄력적인 핀셋 규제가 효과를 볼 수 있으나 상한제와 같은 가격 정책은 수요보다 공급을 좌우하기 때문에 뜻밖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중앙일보

자료: 주택산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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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공급은 토지 확보에서 분양까지 5년 이상 걸린다. 재건축·재개발도 사업 추진에서 일반분양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정비사업 이슈가 생기고 일반분양이 나온다고 상한제 지역으로 지정하면 주택 사업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주택 수요를 억제하고 집값을 누르기 위한 단기 대책으로 상한제를 운용하면 사업성의 불확실성만 커진다. 상한제는 저격용 총보다 타격 범위가 넓은 대포에 가까운 셈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가 2007년 민간택지 상한제를 도입할 때 적용 지역을 전국으로 한 것도 이런 이유다. 상한제 지역으로 정해져 있으면 그에 맞춰 사업할 수 있지만 언제든 상한제 지역으로 지정될지 모르는 상황에선 주택사업을 하기가 불안하다.

상한제를 신경 쓰지 않고 사업하다가 사업이 무르익을 무렵 상한제 지역으로 지정되면 사업자는 날벼락을 맞게 된다. 안전진단 통과나 조합 설립 등의 호재로 재건축 추진 단지의 가격이 뛴다고 해당 동을 상한제 지역으로 지정하면 재건축 사업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상한제 지역으로 지정된 동에서는 사업이 중단되고 상한제 지역인 아닌 곳은 상한제 지정 불안에 사업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된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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